
'모든 작용에는 그에 상응하는 크기와 반대 방향의 반작용이 있다'는 뉴턴의 물리 법칙은 드라마 내에서 폭력이 또 다른 폭력으로 이어지는 악순환을 거듭하며 피해자도 결국 가해자가 되는 씁쓸한 현실을 드러낸다.
작중에서 선한 의도로 한 행동조차도 예상치 못한 부작용을 낳는다. 친구를 지키기 위한 행동이 친구를 더 큰 위험에 빠뜨리는 결과로 이어지기도 한다. 이 같은 '의도와 결과의 괴리'는 우리 주위에서도 흔하게 볼 수 있는데 '작용'의 기제가 '선'이더라도 반드시 긍정적인 '반작용'으로 돌아오진 않는다는 메시지를 담고 있다.
대선이 한 달도 채 남지 않은 상황에서 연쇄적인 작용-반작용에 정국이 요동치고 있다. 지난해 12월 윤석열 전 대통령의 계엄 선포로 시작된 '작용'은 급기야 이주호 대통령 권한대행 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이 국정 운영을 책임지면서 미국과 관세 협상에까지 나서야 하는 '반작용'에 이르렀다.
사실상 국정 공백 상황이다. 국정 운영의 공백은 단순히 행정부 기능의 ‘일시 정지’가 아니다. 경제 불안정성 확대, 외교 신뢰 약화, 행정 마비라는 형태로 나타난다. 국제사회는 정부의 대응력과 리더십을 신뢰할 수 없을 때 투자를 주저하고, 금융시장은 혼란을 반영해 불안정한 변동성을 보인다. 그 틈을 타는 것은 언제나 민생 위기와 외부 위협이다.
가해자에 대한 피해자의 복수로 정의가 실현되는 드라마와 달리 정치권이 벌이는 소모적인 작용-반작용 게임의 피해자는 오로지 국민이다. 대통령 궐위 상황에서 한·미 통상 협의를 주도해온 최 전 부총리의 사퇴 유도가 국민 편익 증진에 큰 도움이 될 리 없다는 사실은 불 보듯 뻔하다.
더 우려스러운 것은 이 사태가 정치의 장기화된 내전 속에서 발생하고 있다는 점이다. 정쟁이 정당화될 수는 있으나 국민경제는 그 대가를 감당할 여유가 없다. 야당의 공세가 ‘견제’를 넘어 ‘마비’로 이어지면 그 피해는 민생에 돌아온다. 경제는 정치보다 빠르게 무너지고 느리게 회복된다.
과거의 정책 실패, 권력의 오용, 국민 불신과 같은 정치적 '업'은 오늘날의 불안정한 사회를 만들었다. 하지만 현 정치 역시도 그 업을 성찰하고 단절하기는커녕 오히려 새로운 업을 쌓으면서 국민에 등을 돌리는 모양새다.
불교에서는 업을 끊기 위해 ‘지혜’와 ‘실천’을 강조한다. 무지를 깨닫고 올바른 길을 실천할 때 비로소 업은 소멸된다. 마찬가지로 정치도 과거의 과오를 직시하고 반복을 멈추는 지혜와 결단이 필요하다. 단지 정책을 바꾸는 것을 넘어 정치의 ‘의도’를 바꾸는 것이다. 사익이 아닌 공익, 집착이 아닌 자비, 권력이 아닌 책임의 정신이 바탕이 돼야 한다.
지금 우리나라에 필요한 것은 업을 계승하는 정치가 아닌 업을 끊는 정치다. 세습과 재생산의 고리를 끊고 새로운 윤리를 정치에 심어야 한다. 국민에게는 ‘정치적 해탈’의 경지에 오른 지도자가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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