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학도 전 중소벤처기업부 차관/논설고문]
IMF 외환위기, 글로벌 금융위기보다 더 깊은 한숨이 대한민국 경제 곳곳에서 터져 나오고 있다. 특히 800만 중소기업과 750만 소상공인의 경제적 어려움은 임계점을 넘어섰다. 고금리, 고물가, 소비침체의 삼중고 속에 자영업자들은 폐업의 벼랑 끝으로 내몰리고 있다. 지난 2월 중소기업중앙회이 발표한 ‘2025 폐업 소상공인 실태조사’는 소상공인 붕괴의 현실을 적나라하게 보여주고 있다. 생계유지를 위해 창업했지만 수익성 악화와 매출 부진으로 문을 닫는 자영업자들이 속출하고 있다.
자영업 폐업은 고금리, 고물가라는 단기적인 경제 상황 악화뿐만 아니라 코로나19 이후 가속화된 비대면 소비트렌드, 1인 가구 증가, 편의점 중심의 소비 패턴 변화 등 사회문화적 요인과도 깊이 연관되어 있다. 또한 최저임금 상승, 주 52시간 근무제 도입 등 노동 환경 변화 역시 자영업자들에게는 인건비 부담 증가라는 또 다른 어려움으로 작용하고 있다.
코로나19 이후 누적된 자영업자의 부실 위험은 역대 최고치를 경신하고 있다. 1금융권에서 대출받기 어려워 2금융권으로 눈을 돌린 개인사업자들의 금융 비용 부담은 더욱 심각한 수준이다. 자영업자들이 사업 부진을 겪으면서 빚으로 연명하는 악순환에 빠져들고 있으며, 금융 시스템 전반의 불안정성까지 야기할 수 있다는 우려를 낳고 있는 이유다.
첫째, 선택과 집중을 통한 실질적인 구조개선 지원 확대가 절실하다. 모든 소상공인을 대상으로 하는 획일적인 지원은 더 이상 효과를 보기 어렵다. 성장 가능성이 있는 분야로 업종 전환, 디지털 역량 강화, 경영 혁신 등에 집중적으로 투자해야 한다. 사업전환 지원 예산을 대폭 확대하고 대상자들이 보다 쉽고 편리하게 지원받을 수 있도록 제도를 개선해야 한다. 긴급 지원금이나 손실보상금과 같은 단기적인 현금 지원은 근본적인 해결책이 될 수 없다. 중요한 것은 소상공인 스스로 경쟁력을 갖추고 지속 가능한 성장을 할 수 있도록 도와야 한다.
둘째, 폐업 소상공인에 대한 재취업 지원과 신규 시장 진입을 위한 재교육 시스템을 강화해야 한다. 특히 인력난에 시달리는 제조 중소기업과의 연계를 적극적으로 추진해야 한다. 이를 위해 지역별로 ‘범부처 구조개선 지원센터’를 확대 설치하고, 소상공인의 경력과 전문성을 바탕으로 제조업체와 맞춤형 일자리를 연결해주는 시스템을 구축해야 한다. 고용부, 산업부, 중기부의 인력 지원 프로그램을 통합한 ‘인력전환 포탈시스템’을 구축하고, 중소벤체기업진흥공단 등 공공기관 연수원을 활용한 재교육 프로그램을 통해 소상공인들이 새로운 분야에 성공적으로 안착할 수 있도록 지원해야 한다. 이는 자영업 시장의 과잉경쟁을 완화하고, 중소 제조업의 인력난 해소에 기여할 것이다.
셋째, 중소기업의 창업 단계부터 체계적인 지원 시스템을 구축해야 한다. 무분별한 창업을 막고, 성공 가능성을 높이기 위해서는 창업에 대한 컨트롤타워를 마련하고, 명확한 지원 대상을 설정해야 한다. 기존의 폐업 컨설팅이나 철거 지원 등 사후적인 구조조정에서 벗어나 창업 직전 단계부터 충분한 정보 제공, 전문적인 컨설팅, 맞춤형 교육 등을 제공하여 실패율을 낮춰야 한다. 위기 징후를 조기에 감지하고, 사업 전환을 지원하는 사전개입 시스템 구축도 필요하다.
넷째, 자영업자들의 채무 부담을 완화하기 위한 실질적인 대책 마련이 시급하다. 고금리 시대에 자영업자들의 채무 상환 부담은 사업 지속 가능성을 위협하는 가장 큰 요인 중 하나이다. ‘새출발기금’과 같은 채무 조정 지원책이 있지만 기존 대출 연장 방식으로는 근본적인 해결이 어렵다. 사업의 지속 가능성을 평가하여 부가가치가 높은 새로운 분야로 사업 전환을 유도하고, 이에 맞춰 저금리 장기 대출 상품을 확대하는 등 실질적인 채무 부담 완화 정책이 필요하다.
다섯째, 소비 심리 회복을 위한 정부의 보다 적극적인 노력이 필요하다. 선결제 운동과 같은 일시적인 대책으로는 역부족이다. 근본적으로 일자리 창출을 통한 가계소득 증대가 선행되어야 한다. 새 정부는 사치재 특별소비세 인하, 소비공제 확대, 소비억제 규제 완화 등 예산 부담은 줄이면서 소비를 활성화할 수 있는 제도 개선을 적극적으로 검토해야 한다. 명절 연휴 등 특정 시기에 집중된 소비 진작책보다는 장기적으로 지속 가능한 소비 친화적인 환경을 조성하는 것이 중요하다. 이제는 과소비를 죄악시하는 사회적 분위기에서 벗어나 ‘건전한 소비를 경제 활력의 원동력으로’ 인식하는 인식 전환이 필요하다.
여섯째, 임대료, 전기 요금 등 자영업자의 고정비용 부담을 완화할 수 있는 정책적 지원 방안을 모색해야 한다. 소상공인에 대한 경영 혁신 지원도 중요하지만 고정비용 부담은 자영업의 수익 구조를 근본적으로 악화시키는 요인이다. 국가 예산 투입의 효율성과 형평성을 고려하여 임대료 지원, 에너지효율 개선 지원 등 실질적인 고정비용 절감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
새로운 정부는 벼랑 끝에 놓인 자영업자들의 절박한 목소리에 귀 기울여야 한다. 소상공인 경제 회복과 경기 활성화에 국가의 명운이 달려 있다. 단기적인 지원을 넘어 자영업의 근본적인 체질 개선을 위한 구조개혁 정책으로 과감하게 전환해야 한다. 시장경쟁 완화, 사업전환 지원, 소비 진작이라는 세 가지 핵심 축을 중심으로 정부의 모든 역량을 집중할 때 비로소 자영업 생태계는 활력을 되찾고 침체된 지역 경제에도 따뜻한 온기가 돌 수 있을 것이다. 지금이야말로 대한민국의 경제 엔진을 다시 힘차게 가동하기 위한 골든타임이다.
김학도 필자 주요 이력
△미국 서던캘리포니아대학 정치경제학 박사 △전 산업통상자원부 에너지자원실장 △전 중소벤처기업부 차관 △전 중소벤처기업진흥공단 이사장 △현 한국협업진흥협회 회장 △현 한국가스안전공사 100년 위원회 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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