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뷰] 사법 독립, 정치와 거리두기부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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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연합뉴스]

대법원이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 후보의 공직선거법 위반 사건을 유죄 취지로 파기환송한 이후 사법부에 대한 정치권의 압박이 거세지고 있다. 조희대 대법원장을 겨냥한 특검과 탄핵 카드를 꺼내더니 14명의 대법관을 100명으로 늘리는 법안을 발의하고, 법왜곡죄 신설과 재판소원제 도입까지 사법제도 전반을 흔드는 제도 개혁이 일제히 추진되고 있다.

민주당에선 ‘사법개혁’을 내세우지만, 법조계 일각에선 ‘사법부 길들이기’라는 목소리도 적지 않다. 입법부 주도의 사법개혁이라는 명분에도, 당사자 사건의 판결 직후 몰아치면서 정치적 대응이라는 평가를 피하기 어렵다. 특히, 그 대상이 대법원의 판단과 사법부의 구조라면, 단순한 갈등을 넘어 판결 견제는 물론 헌법상 삼권분립에 대한 위협으로까지 읽힌다.

사전작업 없이 깜짝 등장한 대법관 증원은 실제로 필요해서인지, 현 대법관들에 대한 반감이 남았는지 헷갈릴 정도다. 대법관은 14명으로 연간 4000건의 사건을 부담해 분명 세계적으로도 높은 수준이다. 하지만 한국은 전원합의체 중심의 법률심 구조를 갖고 있으며, 단순히 숫자를 늘리는 방식이 곧 재판의 질이나 사법 효율성 향상으로 이어진다고 보기는 어렵다. 

오히려 심리 지연, 판례 통일성 훼손, 상고심 기능 마비 등의 역효과가 우려된다. 상고심사제 도입, 상고법원 설치 등 사법시스템 전반에 대한 구조적 논의가 병행돼야 실효성을 담보할 수 있다. 단기간에 14명을 100명으로 늘린다면 도리어 신규 대법관들의 정치적 편향성이 문제될 수 있다. 

법왜곡죄 역시 신중한 접근이 필요하다. ‘판·검사가 고의로 법을 왜곡하면 처벌한다’는 이 제도는 독일에서 과거 나치를 청산하는 수단으로 사용되던 것이다. 법률 해석마다 고의성 여부를 따져 형사책임을 묻는다면, 사법권 독립은 위축되고 판결은 정치적 영향에서 자유롭기 어려워진다.

법은 우리의 삶을 결정하는 살아있는 규범으로, 공감과 정당한 다양성을 기반으로 적용돼야 한다. 천편일률적인 적용을 원한다면 AI나 로봇에게 맡기는 것이 낫다. 의사에게 오진 시 죄를 묻는다면 과잉진료만 양산하는 것처럼, 판·검사에게 정답만을 강요한다면 안전 제일주의만 퍼질 것이다.
 
재판소원은 헌법의 골격을 뒤흔드는 구조 변경에 해당한다. 헌법재판소가 하급심의 확정판결까지 심사한다면 사실상 4심제 도입으로 볼 수 있다. 대법원이 가진 최종심 기능은 실질적으로 약화되고 하나의 통과기관에 불과하게 된다. 확정 판결의 안정성이 흔들리면, 전체 사법체계의 신뢰 기반도 위협받게 된다. 사회적 합의와 정교한 입법적 설계가 선행돼야 한다.

사법부 또한 내부의 성찰이 필요하다. 일부 법관의 비위는 재판 자체의 신뢰를 떨어뜨리고, 어떤 판결들은 로또 1등보다 예측하기 어렵다. 법원의 조직 문화는 어느 곳보다 폐쇄적이다. 그러나 개혁은 정치의 언어가 아니라 내부의 성찰과 사회적 공감에서 출발해 충분한 논의라는 숙성 과정을 거쳐야 한다. 외부의 정치적 압박이 아니라 법원 스스로가 자정의 주체로 나설 때 국민의 신뢰도 회복될 수 있다.

오는 26일 예정된 전국법관대표회의는 사법부 내부의 대응을 볼 수 있는 가늠자가 될 전망이다. 최종 안건은 ‘재판의 독립’으로 확정되었다. 최종 안건의 배경에는 법관 사회 내부의 위기의식이 깔려 있다. 법원 내부에서조차 “외부 압력에 침묵하면, 일선 재판의 권위까지 흔들린다”는 우려가 제기되고 있다.

법원은 지금, 단지 방어적 위치에 설 것이 아니라 헌법이 부여한 역할에 따라 절제된 결기를 보여줄 필요가 있다. 법관 개개인의 입장이 다를 수는 있지만, 재판의 독립은 헌법적 가치이자 직업적 책무다. 삼권분립은 균형과 견제를 기반으로 한 헌법의 장치로, 입법이 사법을 압도하는 지금의 흐름은, 그 장치를 흔들고 있다. 

대한민국이 두 번이나 대통령 탄핵을 이뤄낸 나라가 된 것은 선두에 나선 입법부의 결의도, 국민들의 지지도 있지만, 어수선한 시기에도 흔들리지 않았던 사법부의 판결이 마침표를 찍었음을 잊으면 안 된다. 재판은 정치적 결과에 따라 좌우되어서는 안 된다. 사법 독립은 정치와 거리두기부터 시작된다.
 
박용준 사회팀 팀장
박용준 사회팀 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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