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고공행진 중인 일본의 쌀 가격을 잡기 위해 새롭게 취임한 고이즈미 신지로 농림수산상(이하 농림상)의 행보가 거침이 없다. 차기 일본 총리 후보로도 손꼽히는 그가 오는 7월 참의원(상원) 선거를 앞두고 떠나간 민심을 잡을 수 있을지, 기대와 불안의 시선이 교차하고 있다.
지난 24일, 취임한 지 3일 만에 홋카이도 삿포로를 찾은 고이즈미 농림상은 강연회에서 “정부 비축미 5㎏당 2000엔(약 1만9000원)에 공급하겠다”고 선언했다. 현재 마트 등 소매점에서 판매되고 있는 비축미 가격의 절반에 해당하는 정도까지 값을 끌어내리겠다는 것이었다.
앞서 이시바 시게루 일본 총리는 21일 “지지자들이 쌀을 주기 때문에 쌀을 사본 적이 없다”는 망언으로 물러난 에토 다쿠 전 농림상을 대신해 작년 10월 자민당 총재 선거에서 자신과 대결한 고이즈미 전 환경상을 후임으로 임명했다. 이시바 총리는 이날 국회에서 “쌀값은 3000엔대가 돼야 한다”며 이를 실현하지 못할 경우 책임을 져야 한다는 말로 쌀값 안정 의지를 드러냈다.
이시바 총리가 5㎏당 3000엔대로 잡은 비축미 가격을 취임 후 2000엔대로 내려 잡더니, 곧이어 2000엔까지 만들겠다고 약속한 것이다.
이같은 자신감에는 입찰을 통한 비축미 판매가 아닌 수의계약 통해 대형 소매자에게 직거래 형태로 판매하면 염가 방출이 가능하다는 계산이 있다. 그는 비축미 운반 비용도 정부가 부담할 것이라고 언급했다.
고이즈미 농림상의 이같은 정책 전환과 빠른 대응에 대해 우선 기대해 볼만하다는 평가도 꽤 나온다. 일본 언론의 정치부 기자를 지낸 정치평론가 다자키 시로는 “(쌀값 급등이) 이시바 정권에겐 타격이지만 (고이즈미의 정책이) ‘기적의 한 방’이 될 수도 있다”고 평가했다. 그러면서 “이시바 정권이 시작해 처음으로 이뤄진 정상적인 인사”라고 말하기도 했다.
반면 고이즈미 농림상이 추진하고자 하는 방안은 쌀값 안정을 위한 근본적 해결책이 아니라는 점을 지적하는 목소리도 높다. 방출을 계획 중인 비축미의 양은 30만t인데, 계획대로 모두 방출하고 나면 남는 양은 30만t 뿐이다. 만일 앞으로 또 다시 유통 구조의 문제로 인해 쌀값이 급등하게 되면 쓸 수 있는 방법이 사실상 없다.
또한 6월 초까지 ‘2000엔’ 만들기 실현을 위해 가격 인하를 서둘러 추진하다 공정성 논란 등에 휩싸일 수 있다. 농가에서는 ‘쌀 반값’ 정책을 강하게 반대하는 목소리가 이어지고 있다.
이에 대해 닛케이는 “단기적으로는 효과가 나오더라도 시장 메커니즘을 무시한 인하 압력은 가격의 심한 변동 등 부작용을 가져올 우려가 있다"고 지적했다. 닛케이는 쌀값 파동의 근본 원인은 일본 정부가 오랫동안 쌀 생산을 억제하는 방향으로 농업 정책을 추진해 왔기 때문이라고 짚었다. 쌀을 대체하는 식품이 늘자 쌀값 하락을 우려한 일본 정부가 1970년대부터 생산을 억제하며 쌀값을 유지해 왔다는 것이다.
한편 야당에서도 고이즈미 농림상의 방침에 대해 비판이 이어졌다. 국민민주당의 다마키 유이치로 대표는 24일 “쌀 농가의 소득 보상을 동시에 실시하지 않으면 생산자가 심각한 피해를 입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또한 비축미를 염가로 방출하면 세금 부담이 발생한다고 지적하면서 “참의원 선거가 가까워졌다고 해서 세금을 써서 선거 대책을 펼치는 것은 문제”라고 지적했다. 입헌민주당의 노다 요시히코 대표 역시 “생산자들이 현장을 떠날 수 있어 대책을 동시에 제시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고이즈미 농림상의 ‘쌀 반값’ 승부수는 이시바 정권의 명운은 물론 자신의 정치적 입지에도 큰 영향을 줄 것으로 보인다. 그의 공언대로 쌀값을 잡게 되면 차기 총리 후보로서의 면모를 각인시킬 수 있다. 지지통신은 “농림상으로 성과를 내는 것이 ‘다음 단계’로의 조건이 될 것”이라고 짚었다. 반면 계획이 실패하거나 부작용이 부각되면 선거는 물론 정치적 생명에도 타격을 가져올 가능성이 높다.
©'5개국어 글로벌 경제신문' 아주경제. 무단전재·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