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국 대선 국면에서 주요 후보들의 여성 관련 공약이 사실상 외면받고 있다고 미국 일간 뉴욕타임스(NYT)가 26일(현지시간) 지적했다. 이들은 젊은 남성층의 표를 얻기 위해 여성 공약을 소극적으로 밝히거나 논란이 예상되는 사안에는 침묵하고 있다는 것이다.
NYT는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후보가 윤석열 전 대통령의 탄핵에 여성들이 주도적 역할을 했다는 점을 인정하면서도 페미니즘으로 비칠 수 있는 메시지를 꺼리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고 분석했다. 이 후보의 여성 공약으로는 데이트 폭력과 디지털 성범죄 처벌 강화, 상점이나 식당 등 소규모 사업체 운영 여성을 위한 경찰 핫라인 설치 등이 있다. 하지만 여성단체가 우선적으로 요구하는 차별금지법 제정이나 비동의 간음죄 도입 등에 대해서는 침묵하고 있다고 전했다.
김문수 국민의힘 후보도 여성 정책에 대한 언급을 거의 하지 않는다고 전했다. 김 후보는 ‘군 복무에서의 양성평등’을 추진하며 여군 비율 확대와 군 복무 후 남성 대상 가산점 제도를 공약으로 제시했다.
NYT는 한국이 선진국 중에서도 여성 차별이 심각한 국가라며 한국 여성은 평균적으로 남성보다 31% 낮은 임금을 받으며, 국회의원 중 여성 비율은 20%에 미치지 못하고 정부 고위직 29개 중 여성 몫은 3개뿐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한국 여성들이 딥페이크 등 온라인 성범죄에 직면해 있음에도 페미니즘 관련 문제는 한국 정치에서 가장 민감한 주제로 여겨지고 있다고 짚었다. 젊은 남성들은 경기 침체와 취업난 속에서 자신들이 역차별을 받고 있다고 느끼며 정부의 페미니즘 정책에 반감을 드러내고 있다는 것이다. 윤석열 전 대통령과 국민의힘은 이런 정서를 활용해 2022년 대선에서 여성에 대한 구조적 차별이 없다고 주장하며 승리했다고 NYT는 전했다.
동아시아연구소에 따르면 김한나 진주교대 정치학과 교수는 “윤 총장 퇴진을 요구하는 집회에 20대 여성이 주요 세력이었지만 20대 남성들은 대체로 침묵하거나 냉소적이었다”고 분석했다.
NYT는 주요 후보들이 젊은 층의 극심한 성별 갈등 속에서 지지를 얻기 위한 전략적 선택으로 성평등 의제를 후순위로 미루고 있다고 설명했다. 실제로 여론조사에 따르면 이재명 후보는 20대 남성에서, 김문수 후보는 20대 여성에서 지지율이 가장 낮다고 NYT는 덧붙였다.
한국여성정치네트워크는 성명을 통해 “이 후보의 전략은 성평등 의제를 자신의 당선에 걸림돌로 간주하고 이를 외면하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이에 대해 이 후보는 여성들이 구조적 차별에 직면해 있다는 사실을 인정하고 더 많은 일자리 창출을 통해 젊은 세대의 성별 갈등을 완화하겠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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