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미국 연방 국제통상법원이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월권' 상호관세 발효에 제동을 건 가운데 트럼프 행정부의 관세 정책이 '사법 리스크'에 직면하게 됐다.
28일(현지시간) 로이터통신 등 외신들에 따르면 미국 맨해튼에 위치한 연방 국제통상법원은 트럼프 대통령의 상호관세 부과 행정명령이 그의 권한 범위를 벗어난다며 상호관세 발효 무효 결정을 내렸다. 3명의 판사로 이루어진 이 재판부는 미국 헌법상 다른 국가와의 무역을 조정할 수 있는 배타적 권리는 미국 의회에게 있고, 이는 대통령이 미국 경제를 보호하기 위해 내리는 긴급 권한에 예속되지 않는다며 상호관세 발효 무효 결정 이유를 설명했다.
재판부는 결정문에서 "(트럼프 대통령의) 전 세계적이고 보복적인 관세 명령은 대통령에게 주어진 권한을 초과한다"고 언급했다. 이어 "법원은 대통령이 관세를 지렛대로 사용하는 것이 현명한지 혹은 효과적인지를 판단하지 않는다"며 "그 (관세) 사용이 허용되지 않는 이유는 그것이 현명하지 않거나 효과가 없기 때문이 아니라, 연방법이 그것을 허용하지 않기 때문"이라고 부연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미국 해방의 날'로 명명한 지난 달 2일 국제비상경제권한법(IEEPA)을 근거로 각국에 대한 상호관세를 발표하고 이를 같은 달 9일부터 시행하기로 했다. IEEPA는 국외 비상 사태로 인해 대통령이 공식적으로 '국가 비상 사태' 선언시 수출입 통제, 자산 동결, 법적 제한 및 경제 제재 등을 부여한 법이다.
하지만 지난달 9일 상호관세 시행 직후 금융시장 혼란이 증폭되면서 트럼프 대통령은 13시간 만에 이를 유예하기로 결정했다. 이에 상호관세는 7월 8일까지 90일간 유예된 가운데 트럼프 행정부는 해당 기간 중 주요국들과 협상을 통해 개별적으로 관세를 결정하기로 하고, 현재 협상을 진행 중이다.
이에 트럼프 행정부는 국제통상법원에 관세 부과 이유는 미국의 무역 적자 및 마약류 밀수 등을 막기 위해 타국을 압박하려는 불가피한 조치라고 주장했지만 재판부는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재판부는 "(트럼프) 행정부의 '압박' 주장은 국가별 (상호) 관세의 직접적 효과가 단순히 그들이 겨냥하는 국가들에게 부담을 지우려는 한다는 것을 인정한다는 것"이라고 판단했다.
이번 결정은 미국의 비영리 공익 법률 기관인 자유정의센터(Liberty Justice Center)가 트럼프 행정부 상호관세의 타깃이 된 국가들로부터 상품을 수입하는 5개 미국 소기업을 대표해 제소한 것에 대한 것이다. 또한 오리건주 등 12개 주도 지난달 말 같은 내용으로 연방국제통상법원에 소장을 제출했다. 이에 국제통상법원은 사안이 비슷한 2건의 제소건에 대해서 심리를 진행했다.
오리건주를 대표해 트럼프 행정부의 관세 정책에 대한 제소를 이끌고 있는 댄 레이필드 오레곤주 검찰총장은 성명을 통해 "이번 결정은 우리의 법률이 중요하다는 것과, 무역 결정이 대통령의 기분에 따라 결정되서는 안된다는 것을 재확인시켜줬다"고 밝혔다.
이번 결정으로 트럼프 행정부가 야심차게 추진하고 있는 관세 정책이 중대한 도전에 직면하게 됐다고 외신들은 짚었다.
사법 리스크
백악관과 법무부는 법원의 이같은 결정에 곧바로 항소했다. 백악관은 쿠시 데사이 부대변인 명의로 성명을 내고 "해외 각국의 미국에 대한 비상호적 조치는 미국의 역사적이고 지속적인 무역 적자를 가속화시켰다"며 "이 적자는 미국 사회를 훼손하고 우리 근로자들을 소외시키며 우리의 방위 산업 기반을 약화시켰다. 이는 법원이 다루지 않은 사실들이다"고 밝혔다.
이어 "국가 비상 사태에 어떻게 적절히 대처해야 할 지를 결정하는 것은 비선출직인 판사들이 할 일이 아니다"며 "트럼프 대통령은 '아메리카 퍼스트(미국제일주의)'를 약속했고, 트럼프 행정부는 이 위기에 대처하고 '미국의 위대함'을 회복하기 위해 모든 행정력을 동원할 준비가 돼 있다"고 덧붙였다.
또한 스티븐 밀러 백악관 정책 담당 부비서실장은 28일(현지시간) 소셜미디어 엑스(옛 트위터)에 "사법 쿠데타가 통제를 벗어나 날뛰고 있다"고 적었다.
항소심은 워싱턴DC에 있는 미국 연방 순회 항소법원에서 진행되고, 당사자들이 항소심 판결에 불복할 경우 최종적으로는 미국 연방 대법원이 판결을 진행한다.
한편 트럼프 행정부는 이 사건 외에도 관세와 관련해 최소한 5건의 사건이 진행 중이라고 로이터는 전했다. 해당 사건들 역시 국제통상법원이 맡게 될 예정으로, 이번 판결을 계기로 트럼프 행정부의 관세 정책에 대한 사법 리스크가 한층 확대될 전망이다.
미국 정치전문매체 폴리티코는 미국 법무부가 유리한 판결을 기대하며 모든 사건을 국제통상법원으로 이첩하기 위해 노력해 왔으나, 이번 판결로 인해 그러한 기대가 사라져버렸다고 평했다.
아울러 법원의 이번 결정이 확정되면 트럼프 행정부는 지금까지 징수한 관세를 환불해야 할 가능성도 제기된다. 소기업들의 소송을 지원한 일랴 소민 조지메이슨대 법학 교수는 "지금까지 관세를 내야 했던 사람이 있으면 누구든 그것을 환불받을 수 있을 것"이라고 전했다.
그러나 트럼프 1기 당시 상무부에서 근무했던 나자크 니카타르 변호사는 트럼프 대통령이 법원 판결로 자신의 관세 정책이 무력화될 경우, 다른 법안을 통해서라도 관세를 추진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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