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호균 칼럼] '일자리 중심'으로 노·장·청 통합을

김호균 명지대 경영정보학과 명예교수
[김호균 명지대 경영정보학과 명예교수]
 
2013년 1월 흥사단 투명사회운동본부가 초·중·고교생 각각 2000명을 대상으로 윤리의식에 대해 실시한 설문 조사 결과가 사회적 파장을 일으킨 적이 있다. 당시 고등학생 44%는 ‘10억원을 벌 수 있다면 범죄를 저지르고 1년 정도 감옥에 갈 수 있다’고 대답했다. 중학생은 28%, 초등학생도 12%가 같은 대답을 했다. 2025년 10월 15일 베트남과 캄보디아 국경지대에서 한국인 남성이 숨진 채 발견되었다. 이를 수사하던 캄보디아 경찰이 취업사기 범죄조직을 추적했다. 캄보디아 경찰에 의해 인도되어 수갑을 차고 인천공항을 통해 입국하는 63명의 한국 청년 중에는 입국을 거부하던 청년도 있었다. 이들은 모두 강제로 수용되어 보이스 피싱, 로맨스 스캠 등의 범죄에 가담한 혐의를 받고 있다. 이들은 ‘취업사기 감금의 피해자’이면서 동시에 ‘취업 사기 피의자’이기도 하다. 이들에게 던져진 미끼는 ‘손쉽게 월 500만원 이상을 벌 수 있는 알바’였다. 이들과 유사한 범행으로 최근 1년간 법정에 선 청년들은 ‘속아서’ 범죄에 가담했음을 강조했지만 법원은 이들의 ‘죄책’이 가볍지 않다고 판단해 징역 2~7년을 선고한 바 있다. 1000~2000명(국정원 추정)의 한국 청년들이 캄보디아에서 ‘고액 알바’를 빌미로 범죄 활동에 동참하는 현상과, 1년 감옥생활의 경제적 가치를 10억으로 평가하던 의식 사이에는 연결점이 없지 않을 것이다. 이를 불식시키기 위한 유일한 대안이 ‘괜찮은 국내 일자리 창출’이라는 사실에는 이의가 없을 것이다.

한·미 관세협상의 ‘팩트시트’가 확정되면서 이제 한국 경제에서는 불확실성 하나가 거두어졌다. 이제 국내투자의 확대, 나아가 국내 일자리 창출에 초점을 맞춘 정책에 역량을 집중할 때이다. ‘주권자’인 국민의 실생활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치는 것은 수출규모가 아니라 취업과 노동소득이기 때문이다. 작금의 노동시장에서 심화되고 있는 양극화 상황은 일자리를 매개로 세대통합을 위한 새로운 구도를 설계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 청년에게는 일자리 창출을, 장년에게는 일자리 유지(고용안정)과 정의로운 전환을, 노년에게는 취업 기반 노후안정을 보장함으로써 “노·장·청 통합”(김대중 전 대통령)을 이루는 비전이 필요하다.

지난 9월 기준 60세 이상의 고용률은 역대 최고치를 기록한 반면에 청년층(15~29세) 고용률은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최장기간 하락세에 놓여 있다. 60세 이상 취업자가 1년 전보다 38만1000명 늘어나는 사이에 청년 취업자는 14만6000명 줄었다. 양적으로만 본다면 노인고용 문제는 개선되는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노인들이 실제로 71세까지 일한다는 사실과 2023년 66세 이상 노인빈곤율이 39.8%로 압도적인 세계 1위인 점을 같이 고려한다면 외견상의 개선으로 만족할 상황은 아니다. 71세 퇴직 후 평균수명 83.5세까지 노동 없는 삶을 대비할 수 있는 여력을 갖추는 것도 중요하다. 이를 메우기 위한 주택연금은 지방과 수도권의 자산가격 격차로 인해 오히려 ‘금융복지 불균형’을 초래하고 있다. 더욱이 주택연금 대상이 되는 부동산은 결국 주택연금을 이용하지 않는 고액 자산가에게 매각될 것이므로 자산집중을 심화시키는 부작용을 수반할 것이다. 그러므로 주택연금을 이용하지 않고 자력으로 노후대책을 보강하려면 은퇴 이전의 소득을 보강해야 할 것이다. 국민연금 수급연령이 65세로 상향되면서 법정 정년 60세와 5년의 간극이 발생하고 있다. 이를 메우기 위해 정년 연장에 관한 논의가 일고 있다. 기업 측에서는 비용부담을 이유로 일단 퇴직했다가 다시 입사하는 ‘재고용’을 대안으로 제시하고 있다. 이러한 논의는 청년실업 해소와 정책우선순위를 두고 경합하지 않을 수 없으므로 사회적 합의가 필요하겠지만 그동안 청년일자리가 소홀히 다루어졌음은 분명하다.

노령층과는 반대로 청년 노동시장에서는 ‘한파’가 이어지고 있다. 지난 10월 청년층(15~29세) 고용률은 45.1%로 1년 전보다 0.7%포인트 낮아졌다. 지난해 5월부터 17개월 연속 하락세이다. 이는 글로벌 금융위기였던 2009년 이후 약 16년 만에 최장 기록이다. 청년 일자리 창출을 위해서는 먼저 국내기업이 예정하고 있는 해외투자를 국내로 돌리도록 ‘설득’할 필요가 있다. 최근 한류의 세계화와 함께 ‘Made in Korea’가 경쟁력이 되고 있는 현실은 국내투자로 전환할 동기가 될 수 있다. 이재명 정부가 수출유망산업으로 육성하고 있는 K방산에서 마치 법칙처럼 굳어지고 있는 ‘제품·기업 병행수출’을 조절할 필요가 있다. 한국이 대미 방산협력에서 미국 군함을 국내조선소에서도 건조할 수 있도록 협상한 것은 원자력잠수함 건조를 양해받은 것보다 더 큰 경제적 파급효과를 가져다 줄 것이다. 아울러 ‘한미조선협력’은 조선노동력을 외국인노동력으로 쉽게 대체할 수 있는 저임금노동으로 전락시키기보다 고임금 숙련노동으로 업그레이드하는 기회로 활용할 수 있다. 그밖에 청년 일자리 창출을 방해하는 요인으로 거론되는 경력직 채용의 악습을 차단할 필요가 있다. 2009년 17.3%이던 경력직 채용이 2021년에는 37.6%로 두 배 이상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러한 경향으로 인해 청년들의 평균 취업연령이 상승해서 취업기간이 2년 단축됨에 따라 예상생애소득이 3억9000만원에서 3억4000만원으로 13.4% 감소할 우려마저 있다.

청년을 위한 신규 일자리 창출은 신규투자를 통해 이루어지는 것이 가장 바람직하다. ‘팩트시트’가 발표된 직후 11월 16일 이 대통령이 간담회에서 “청년 고용 문제 해결을 위한 기업의 노력”을 촉구하자 재벌기업들의 호응이 이어졌다. 삼성이 향후 5년간 국내에서 매년 6만명씩 신규 채용할 계획을 약속했고, SK는 현재 매년 8000명 수준의 신규 채용을 반도체 팹이 하나씩 증가할 때마다 2000명씩 추가할 계획임을 밝혔다. 현대차는 2025년 7200명을 새로 뽑고 내년에는 1만명까지 확대할 것으로 약속했다. 다른 자리에서 한화는 5600명, 포스코그룹도 올해 3000명의 신규채용을 확대하기로 약속했다. 모두 AI 데이터센터, 로봇산업, 그린에너지, 연구개발, 전기차공장 신설 등 구체적인 프로젝트에 대한 투자에 따른 고용임을 밝혔다. 내년으로 예정된 150조 ‘국민성장펀드’의 성과 측정도 당연히 청년고용의 관점을 포함해야 할 것이다. 이제는 산업정책에서도 ‘주권자’의 관점이 필요하다.

장년 일자리에서는 우선 고용안정이 가장 필요한 가치이다. 기업의 구조조정과 거의 등치되고 있는 ‘정리해고’는 최소화할 필요가 있다. 노동시간 단축을 포함하는 유연노동시간제를 활성화하는 방안이 훨씬 사회통합적인 대안이 될 수 있을 것이다. 나아가 에너지전환, 디지털전환, 인구구조 변동으로 인해 제품, 공정, 기술 등에서 이루어지는 혁신에 수반되는 전환비용(실업, 전직 등)을 특정지역이나 노동자, 농민에게 일방적으로 전가하지 않는 ‘정의로운 전환’에 대한 요구에 부응할 필요가 있다. 2021년에 제정된 ‘기후위기 대응을 위한 탄소중립·녹색성장기본법’에 따라서 ‘탄소중립 사회로 이행하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부담을 사회적으로 분담’하기 위한 전략의 수립 역시 금전적 보상보다는 일자리 중심으로 방향을 설정할 필요가 있다.

AI 비전은 한국 경제에 기회이자 도전이다. 최근 뉴욕타임스 보도에 따르면 세계 최대 전자상거래기업인 아마존은 2030년까지 로봇과 AI를 통해 사업운영의 75%를 자동화하여 최대 60만명의 일자리를 인간-로봇 협업인 ‘코봇(cobot)’으로 대체할 계획이다. 작년 노벨상 수상자 아제모을루 교수는 “계획이 성공하면 아마존이 일자리 창출자가 아닌 일자리 파괴자가 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그래도 아마존은 일자리 축소를 향해 나아갈 것이다. 인간을 대체하는 로봇이 아니라 “로봇과 인간의 협력”으로 정의되는 독일의 AI 기반 ‘5차산업혁명’이 비로소 노·장·청 통합(연대)의 기술적 기반이 될 수 있을 것이다. 노·장·청은 상이한 시간대를 살고 있는 한 사람이나 마찬가지이다.
  
김호균 필자 주요 이력

▷서울대 경제학과 ▷독일 브레멘대 경제학 박사 ▷명지대 경영정보학과 교수 ▷경실련 경제정의연구소 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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