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3 사태는 우리에게 뼈아픈 질문을 던졌다. 군은 누구를 위해 존재하는가. 권력자를 위해서인가, 아니면 국가와 헌법을 위해서인가. 남북이 여전히 군사적으로 대치하고 있는 엄정한 현실에서 강군은 선택이 아니라 생존의 조건이다. 그러나 강군은 병력 규모나 무기 체계만으로 완성되지 않는다. 강군의 핵심은 사람, 그중에서도 지휘관이다. 결국 군 인사 시스템이 국가안보의 수준을 결정한다.
군 인사의 선진화는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과제다. 객관적이고 전투력 중심이며, 국가와 국민에 대한 충성으로 무장한 지휘관을 길러내는 체계를 확립해야 한다. 특정 학연이나 출신 배경, 네트워크에 기대는 폐쇄적 인사 구조는 전투력을 약화시키고 조직의 사기를 떨어뜨린다. ‘줄을 서면 별을 단다’는 인식이 퍼지는 순간, 강군은 허상에 불과하다.
이번 사태에서 우리는 또 하나의 교훈을 얻었다. 터무니없는 판단과 무모한 시도에 동조하는 군 간부가 단 한 명이라도 존재한다면, 그것은 인사 시스템의 실패다. 군은 정치적 중립을 생명으로 한다. 헌법과 법률에 대한 충성은 선택이 아니라 의무다. 권력자의 개인적 판단이나 정치적 계산에 군이 동원되는 순간 국가는 위기에 빠진다. 다시는 그러한 일이 반복되어서는 안 된다.
이 지점에서 세계 최고 수준의 강군으로 평가받는 미국의 군 인사 시스템을 참고할 필요가 있다.
미국 군대의 핵심은 철저한 문민통제와 전문성의 결합이다. 미 합동참모본부와 각 군은 정치로부터 엄격히 분리돼 있으며, 장성 진급은 다층적 검증 구조를 거친다. 고위 장성은 대통령의 지명 이후 상원 인준을 통과해야 한다. 능력과 도덕성, 지휘 경험, 합동성(jointness) 경험이 종합적으로 평가된다. 특히 1986년 제정된 골드워터-니콜스 법 이후 미군은 합동 작전 능력을 인사의 핵심 기준으로 삼았다. 육·해·공군 간 장벽을 낮추고, 합동 근무 경험을 진급의 필수 요건으로 제도화했다. 현대전이 단일 군종의 전쟁이 아님을 인정한 결과다.
우리 역시 육·해·공 합동 작전 능력을 중시하는 방향으로 인사 구조를 재설계해야 한다. 육사 중심의 폐쇄적 관행을 타파하고, 해군과 공군, 나아가 합동참모 체계에서 다양한 경험을 쌓은 인재들이 공정하게 경쟁하도록 해야 한다. 현대전은 정보·우주·사이버 영역까지 확장됐다. 특정 군종 출신이 자동적으로 우위를 점하는 구조는 시대착오적이다.
인사 과정에 민간 전문가의 참여를 제도화하는 방안도 검토할 필요가 있다. 문민통제는 단순히 장관이 민간인이라는 형식으로 완성되지 않는다. 전략·안보·군사법·조직윤리 전문가가 참여하는 2차 심사위원회를 구성해 이해충돌 여부와 도덕성, 정책적 판단 능력을 점검해야 한다. 다만 민간이 전권을 쥐는 구조 역시 바람직하지 않다. 군의 특수성과 작전 환경을 이해하는 현역 중심의 1차 평가가 전제돼야 하며, 민간은 보완적 검증 역할을 수행하는 것이 합리적이다. 책임 있는 국방부 장관의 최종 제청 구조 또한 명확히 해야 한다. 권한과 책임의 일치가 문민통제의 핵심이다.
이와 관련해 국방부 장관과 외교안보실장을 지낸 신원식 장관의 사례를 떠올릴 수 있다. 헌법 질서를 지키겠다는 분명한 입장을 밝힌 전직 장성의 행보는, 군이 지향해야 할 가치가 무엇인지를 보여준다. 중요한 것은 특정 인물에 의존하는 것이 아니라, 그러한 인물이 자연스럽게 배출되는 구조를 만드는 일이다.
강군은 충성 경쟁으로 만들어지지 않는다. 강군은 실력과 책임, 그리고 명예로 만들어진다. 인사 시스템이 공정하고 예측 가능해야 장교단은 ‘줄’이 아니라 능력으로 경쟁한다. 별은 권력의 상징이 아니라 국가안보의 무게를 지는 표식이어야 한다.
남북 대치의 현실 속에서 군의 정치적 중립은 절대적 가치다. 군이 특정 권력자의 판단에 흔들리지 않고 오직 헌법과 법률에 따라 움직일 때만이 국민은 안심할 수 있다. 승진 심사 과정에서 헌법 수호 의지와 공직 윤리를 명문화된 기준으로 평가하고, 위반 시에는 엄중한 책임을 묻는 체계를 마련해야 한다.
결국 군 인사 선진화는 국가의 품격 문제다. 경제 규모가 커지고 무기 체계가 현대화됐다고 해서 자동으로 선진국이 되는 것은 아니다. 권력이 위기에 직면했을 때 군이 얼마나 냉정하게 헌법의 편에 서는가가 진정한 선진국의 기준이다. 미국이 세계 최강의 군사력을 유지하는 배경에는 정치와 군을 엄격히 분리하는 제도적 장치와 합동성 중심의 인사 체계가 자리하고 있다. 우리는 그 원칙을 참고하되, 우리의 현실에 맞게 정교하게 설계해야 한다.
강군은 우연히 만들어지지 않는다. 공정한 인사, 합동성 중심의 진급 구조, 민간 전문가의 보완적 검증, 헌법 가치에 대한 철저한 교육이 결합될 때 비로소 가능하다. 군은 국가의 최후 보루다. 그 보루를 지키는 사람을 어떻게 선발하고 양성할 것인가가 곧 대한민국의 미래를 좌우한다.
이제는 감정적 구호가 아니라 설계의 시간이다. 군 인사 시스템을 근본부터 재정비해야 한다. 능력과 품성의 교차 검증 위에 서고, 합동성과 전문성을 중시하며, 정치적 중립을 제도화하는 구조를 만들어야 한다. 그것이 강군으로 가는 길이며, 헌법을 지키는 길이다. 대한민국은 더 이상 인맥과 충성 경쟁에 기대는 군을 용납할 수 없다. 국가와 국민에 대한 충성, 그리고 전투력 중심의 객관적 인사만이 우리의 안보를 지킬 수 있다.
©'5개국어 글로벌 경제신문' 아주경제. 무단전재·재배포 금지


![[르포] 중력 6배에 짓눌려 기절 직전…전투기 조종사 비행환경 적응훈련(영상)](https://image.ajunews.com/content/image/2024/02/29/20240229181518601151_258_161.jpg)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