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4월 1일, 국민의힘 대구시장 경선 후보들이 한 자리에 모였다. 공정 경선 협약식이었다. 그러나 행사장 분위기는 내부 단합보다 외부 규탄에 가까웠다. 연사마다 더불어민주당 김부겸 후보를 겨냥했고, '철새', '조롱', '오만'이라는 단어가 쏟아졌다. 상대를 이토록 의식한다는 건, 그만큼 두렵다는 뜻 아닐까.
30년 집권의 성적표
그 두려움을 이해하려면, 먼저 30년을 돌아봐야 한다. 국민의힘과 그 전신은 1995년 이래 단 한 번도 대구시장을 내준 적이 없다. 그런데 그 30년의 성적표가 문제다.수치는 냉정하다. 대구의 1인당 GRDP는 1993년 통계 작성 이래 32년 연속 전국 꼴찌다. 해마다 1만 명 안팎의 청년이 도시를 떠나고, 자영업 폐업률은 전국 1위다. 지난 1월 8일 대구를 찾은 조국 조국혁신당 대표는 이를 정면으로 거론했다. "대구는 31년 동안 1인당 GRDP 꼴찌를 하고 있다. 한 세대에 걸친 국민의힘 편애에도 불구하고 이런 지경이 된 건, 공천만 받으면 당선되는 곳이 됐기 때문이다."
최근 역대 최대 국비 확보, TK 신공항 특별법 추진 등 뒤늦은 분발이 이어지고 있는 건 사실이다. 그러나 32년 연속 꼴찌라는 구조적 실패 앞에서, 이는 '30년의 성과'라기보다 '선거를 앞둔 각성'에 가깝다는 시선을 지우기 어렵다. 국민의힘 후보들이 "김부겸이 대구에 해준 게 뭐냐"고 묻는 순간, 그 질문은 총리 임기 2년의 김부겸이 아니라 30년 집권의 자신들을 정확히 겨누는 부메랑이 된다.
두려움의 근거는 숫자에 있다
그 30년의 누적된 불만이 이번 선거에서 숫자로 터져 나오고 있다. 지난 2월 뉴데일리·리서치웰 여론조사에서 이진숙은 김부겸을 7.5%포인트, 추경호는 5.2%포인트 앞섰다. 그런데 3월 말 TBC·리얼미터 조사에서 김부겸의 인물 적합도는 49.5%로 치솟았다. 국민의힘 경선 후보 6명과의 격차는 15.7~34.7%포인트, 모두 오차 범위 밖이었다. 두 달 만에 판세가 완전히 뒤집혔다.물론 대구를 그리 단순하게 읽었다간 낭패다. 여론조사에서 야당이 앞서도 투표함을 열면 달라지는 도시가 대구였다. '보수 텃밭'이라는 말이 괜히 생겨난 게 아니다. 그러나 이번엔 무언가 다르다는 이야기가 끊이지 않는다. "우리가 왜 늘 당을 위해 희생해야 하느냐"는 물음이 대구 곳곳에서 나오고 있다. 그 물음이 말이 아니라 행동으로 번지기 시작했다.
공천 파동이 불씨에 기름을 끼얹었다
지난 3월 22일, 이정현 공관위원장은 여론조사 1·2위를 달리던 주호영 의원(6선)과 이진숙 전 방통위원장을 경선에서 배제했다. "두 분의 역할이 대구시장이라는 단일 직위에 머물기보다 국회와 국가 정치 전반에서 더 크게 쓰이는 것이 맞다"는 이유였다. 대구 시민이 가장 원하는 인물을 정작 대구에서 쓸 수 없다는 논리였다.주호영 의원은 즉각 법원에 효력정지 가처분을 신청했다. 하지만 4월 3일 서울남부지법 민사합의51부는 "다소 불합리하다거나 공정성에 의문이 있다는 사유만으로 공천 결정의 효력을 섣불리 무효라고 판단할 수 없다"는 이유로 기각했다. 주 의원은 "막장 공천을 합법화해준 것에 불과하다"며 강하게 반발했다.
주 의원은 가처분 기각 결정에 대한 항고장을 4월 6일 법원에 제출한 뒤, 오는 8일 대구시장 선거에 대한 자신의 입장을 밝힐 예정이다. 나아가 "한동훈 전 대표를 대구 수성갑으로 불러야 한다는 요구가 많다"며 이른바 '주·한 무소속 연대론'까지 시사했다. 컷오프에 맞선 저항이 단순한 법적 다툼을 넘어 독자 정치 세력화로 향하는 모양새다.
"시민이 직접 선택한다"…이진숙 멈추지 않는 독자 행보
이진숙 전 위원장도 팔짱을 끼고 있지 않았다. 공관위가 재심 청구까지 기각하자, 4월 3일 그는 페이스북에 직접 글을 올렸다. "시민경선을 통해 대구시민의 선택을 받겠다." 사실상의 무소속 출마 선언이었다. "공관위의 이번 결정은 6.3 지방선거를 패배로 이끄는 자폭 결정"이라며, "당심과 민심을 따르지 않는 당대표는 당대표가 아니다"라는 말도 덧붙였다.선언 이후 비가 내리는 가운데도 시민 인사, 팔공산 벚꽃축제를 연달아 찾았다. 독자 선거운동이 이미 시작된 것이다. 한편 장동혁 대표가 이진숙의 국회 입성을 공개 거론한 것은 당 지도부와의 온도차를 드러낸 장면으로 읽힌다. '컷오프'의 명분이 비례대표 영입인지, 아니면 단순한 배제인지에 대한 의구심이 증폭되는 이유다.
김부겸, 보수의 심장 파고들다
4월 3일, 더불어민주당 공관위는 김부겸 전 국무총리를 만장일치로 대구시장 후보 단수공천했다. 경쟁자 없이 단독으로 주어진 공천이었다. 그는 4월 5일 페이스북에 출마 이유를 직접 수치로 풀어놨다. "1인당 GRDP 30년 연속 꼴찌, 2024년 실질 성장률 -0.8%로 특광역시 중 유일한 마이너스, 청년 순유출의 90%가 20대." 그러면서 "왜 이렇게 됐느냐. 국민의힘이 일을 제대로 안 했기 때문"이라고 직격했다. "서울서 공천만 받으면 또 되니까, 시민 눈치를 안 보는 것"이라는 말도 덧붙였다. 그는 "현실성 없는 뻥 공약은 하지 않겠다"며 "대구에 지금 필요한 사람이 김부겸"이라고 스스로를 못 박았다.
보수 심리를 파고드는 행보도 이어졌다. 박근혜 전 대통령 예방 의지를 공개적으로 밝히며 "전직 국가 원로이자 지역사회 어른에게 인사차 방문하는 것은 도리"라고 했다. 대구 엑스코(EXCO) 전시장을 '박정희 컨벤션센터'로 개명하는 공약까지 거론했다. 민주당 지도부는 4월 8일 대구에서 현장 최고위원회의를 열고 지원에 나설 예정이다. 야당이 대구에서 이처럼 적극적으로 움직이는 것 자체가 이미 낯선 풍경이다.
당의 깃발보다 사람을
3월 TBC·리얼미터 조사에서 정당 지지도는 국민의힘 38.7%, 민주당 33.2%로 오차범위 안 접전이다. 그러나 인물 적합도에서는 김부겸이 압도적이다. 이 간극은 무엇을 말하는가. 대구 민심이 '어느 당'이 아니라 '누가 대구를 살릴 사람인가'를 묻기 시작했다는 신호다.이제 4월 8일이 분수령이다. 주호영이 무소속 출마를 선언하면, 국민의힘 후보·김부겸·주호영·이진숙의 4파전 구도가 현실이 된다. '보수 내전'이 현실화하는 순간, 30년 대구 정치 지형이 흔들릴 수 있다.
1500만 관객을 동원한 영화 〈왕과 사는 남자〉는 단종 곁을 끝까지 지킨 충신의 이야기다. 30년 넘게 보수당 곁을 지켜온 대구 시민의 모습과 겹친다. 하지만 영화 속 엄흥도가 왕이 아닌 '사람 단종'을 선택했듯, 대구 시민도 이번엔 당이 아닌 사람을 고르려 하고 있다.
오랫동안 '붉은 깃발'만 나부끼던 도시가 이제 사람을 '선택'하는 중이다.
※여론조사 개요①: 의뢰 뉴데일리 / 조사기관 ㈜리서치웰 / 조사 일시 2026년 2월 5~6일 / 대구광역시 거주 만 18세 이상 남녀 805명 / 무선 가상번호 ARS / 응답률 5.6% / 표본오차 95% 신뢰수준 ±3.5%p
※여론조사 개요②: 의뢰 TBC / 조사기관 ㈜리얼미터 / 조사 일시 2026년 3월 28~29일 / 대구 거주 만 18세 이상 남녀 804명 / 무선전화 ARS / 응답률 6.7% / 표본오차 95% 신뢰수준 ±3.5%p / 자세한 내용은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 참조.
©'5개국어 글로벌 경제신문' 아주경제. 무단전재·재배포 금지


![[르포] 중력 6배에 짓눌려 기절 직전…전투기 조종사 비행환경 적응훈련(영상)](https://image.ajunews.com/content/image/2024/02/29/20240229181518601151_258_161.jpg)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