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정자의 이란전쟁 이야기] 호르무즈의 마지막 줄다리기…핵과 문명, 달러와 석유, 그리고 AI 시대의 새로운 세계 질서

호르무즈 해협을 항해하는 선박들 사진로이터·연합뉴스
호르무즈 해협을 항해하는 선박들 [사진=로이터·연합뉴스]
2026년 5월 말의 세계는 다시 중동을 예의주시하고 있다. 호르무즈 해협에서는 폭발음이 이어지고 있고, 미국과 이란은 동시에 협상과 군사 행동을 병행하고 있다. 백악관에서는 “진전이 있다”는 말이 나온다. 그러나 같은 자리에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필요하다면 다시 끝장낼 수도 있다”고 경고한다. 이란은 휴전 유지 의지를 말하면서도 미국의 제한적 공습을 “휴전 위반”이라고 비판한다. 

세계는 지금 이상한 전쟁을 보고 있다. 전면전도 아니고 완전한 평화도 아니다. 휴전도 아니고 종전도 아니다. 협상은 진행되지만 포성은 멈추지 않는다. 이것은 21세기형 회색지대 전쟁(gray zone war)의 전형이다. 그러나 그 본질은 단순한 군사 충돌이 아니다. 그 안에는 핵 문제와 석유, 달러 체제와 미중 패권 경쟁, 이슬람과 유대 문명, AI 시대의 공급망 경쟁까지 모두 얽혀 있다. 지금 호르무즈 해협은 단순한 바다가 아니라 세계 질서 전체의 균열선이 되고 있다.

이번 사태의 가장 큰 특징은 전쟁과 협상이 동시에 움직이고 있다는 점이다. 미국과 이란은 종전을 위한 양해각서(MOU)를 논의하고 있다. 양측 모두 “진전이 있다”는 신호를 보내고 있다. 미국 국무부와 백악관은 협상이 완전히 깨진 것은 아니라는 입장이고, 이란 역시 공식적으로는 외교적 해결 가능성을 닫지 않고 있다. 그러나 동시에 미군은 이틀 만에 다시 호르무즈 해협 인근에서 이란 군사시설을 공습했다. 미국은 “방어적 조치”라고 주장했다. 이란 드론 4대를 격추했고, 다섯 번째 드론 출격을 준비하던 지상관제소를 타격했다는 것이다. 겉으로 보면 제한적 충돌이다. 그러나 세계 금융시장과 국제사회는 그것을 단순한 국지 충돌로 보지 않는다. 왜냐하면 호르무즈 해협은 세계 원유 수송의 심장부이기 때문이다. 세계 해상 원유 물동량의 핵심이 이곳을 통과한다. 한국·중국·일본 같은 제조업 국가들의 에너지 생명선이기도 하다. 만약 이곳이 봉쇄되거나 장기 불안정 상태에 들어가면 국제유가는 급등하고, 글로벌 물류 체계는 흔들리며, 인플레이션은 다시 살아날 가능성이 높다.

미국 역시 이를 누구보다 잘 안다. 트럼프 대통령은 원래 “전쟁을 오래 끌지 않는 대통령” 이미지를 원한다. 그는 대규모 지상전보다는 압박과 협상, 제한적 군사 행동을 통해 상대를 굴복시키는 방식을 선호한다. 그러나 이란은 미국식 시간표대로 움직이지 않는다. 미국은 속도를 원하지만 이란은 시간을 무기로 사용한다. 그것이 페르시아 문명의 오래된 생존 방식이다. 미국은 건국 250년의 젊은 초강대국이다. 반면 이란은 5천 년의 기억을 가진 나라다. 미국은 군사력과 금융으로 세계를 움직여왔지만, 이란은 오랜 역사 속에서 외세와 제국의 압박을 견디며 살아남는 법을 배웠다. 그래서 미국이 군사 압박을 높일수록 이란은 정면 충돌보다는 지연전과 심리전을 택한다. 실제로 이번에도 이란은 즉각적인 대규모 보복 대신 긴장 관리 전략을 병행하고 있다. 왜냐하면 이란 역시 전면전의 위험성을 누구보다 잘 알기 때문이다. 이란 경제는 이미 제재로 피폐해져 있다. 내부적으로는 청년 실업과 물가 상승, 체제 피로감이 누적돼 있다. 반면 미국 역시 완전한 전쟁을 원하지 않는다. 미국 경제는 아직 인플레이션 압박에서 완전히 벗어나지 못했고, 대선을 앞둔 트럼프에게 장기전은 정치적 부담이 될 수 있다. 결국 지금 상황은 서로가 서로를 완전히 공격할 수 없으면서도 동시에 쉽게 물러설 수도 없는 위험한 균형 상태라고 할 수 있다.

현재 미국과 이란 협상의 핵심 쟁점은 크게 네 가지다. 첫째는 핵 문제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란의 핵무기 보유는 절대 용납할 수 없다”고 거듭 강조하고 있다. 미국이 가장 우려하는 것은 이란이 보유한 60% 고농축 우라늄 440㎏이다. 핵 전문가들은 일반적으로 90% 수준이면 무기급 우라늄이라고 본다. 그러나 60%까지 농축된 우라늄은 이미 상당한 위험 단계로 평가된다. 기술적으로는 짧은 시간 안에 추가 농축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미국은 이것을 제거하거나 통제하지 않고는 종전 체제로 갈 수 없다고 본다. 반면 이란 입장에서 핵은 단순한 무기가 아니다. 그것은 체제 생존의 보험이다. 리비아의 카다피 정권이 핵을 포기한 뒤 결국 무너진 사례는 이란 지도부에 깊은 트라우마로 남아 있다.

둘째는 우라늄 처리 방식이다. 미국은 중국과 러시아가 이란의 고농축 우라늄을 가져가는 것에 강한 거부감을 보이고 있다. 이유는 간단하다. 중국과 러시아는 미국의 전략 경쟁국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대안은 무엇인가. 필자는 제3국 관리 방안이 현실적이라고 본다. 특히 파키스탄은 매우 흥미로운 카드다. 파키스탄은 이슬람권 최초의 핵보유국이며, 중국과 전략적 관계를 유지하면서도 미국과 완전히 적대적이지 않다. 사우디아라비아와의 관계 역시 깊다. 만약 국제원자력기구(IAEA)의 감독 아래 파키스탄 내 국제 공동관리 시설에 이란의 고농축 우라늄 일부를 한시적으로 보관한다면 미국은 핵 확산 우려를 줄일 수 있고, 이란 역시 체면을 일정 부분 유지할 수 있다. 외교란 결국 상대가 완전히 패배했다고 느끼지 않도록 출구를 만드는 기술이다.

셋째는 호르무즈 해협이다. 이곳은 단순한 해상 통로가 아니다. 현대 문명의 혈관이다. 세계 경제는 여전히 석유와 LNG 위에서 움직인다. AI 시대가 왔다고 하지만 반도체 공장과 데이터센터 역시 막대한 전력과 에너지 위에서 돌아간다. AI는 엄청난 전력을 먹는다. 데이터센터와 반도체 공장, 클라우드 서버와 초거대 AI 연산 시스템은 상상을 초월하는 에너지를 필요로 한다. 미국의 빅테크 기업들이 원자력과 LNG, 재생에너지 확보 경쟁에 뛰어드는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다. 결국 AI 시대는 “석유 이후 시대”가 아니라 “에너지 패권 재편 시대”에 더 가깝다. 그래서 호르무즈 해협은 앞으로도 오랫동안 세계 경제의 핵심 변수로 남을 가능성이 높다.

특히 중국에게 호르무즈는 생명선이다. 중국은 세계 최대 제조업 국가이자 최대 원유 수입국 가운데 하나다. 중국의 공장과 물류, 도시와 산업단지는 중동 에너지 흐름 위에서 돌아간다. 만약 호르무즈가 장기적으로 흔들리면 중국 경제는 치명적 압박을 받을 수 있다. 미국 역시 이를 너무 잘 알고 있다. 따라서 지금 미국의 전략은 단순히 이란을 압박하는 차원을 넘어선다. 그것은 동시에 중국의 에너지 동맥을 통제하는 전략과도 연결돼 있다. 바로 이 지점에서 중동 문제는 미중 패권 경쟁과 직결된다. 중국은 이란과 전략적 관계를 강화하고 있고 러시아 역시 마찬가지다. 반면 미국은 사우디아라비아와 UAE, 이스라엘 중심의 새로운 중동 질서를 만들려 한다. 결국 중동은 지금 새로운 냉전의 교차점이 되고 있다.

과거 냉전이 자유주의와 공산주의의 충돌이었다면 지금의 충돌은 훨씬 복합적이다. AI 패권과 반도체 공급망, 에너지 통제권과 해상 물류, 달러 체제와 디지털 금융, 종교와 문명이 동시에 얽혀 있다. 특히 달러 체제 문제는 매우 중요하다. 미국은 달러를 통해 세계 경제를 통제해왔다. SWIFT 결제망과 국제 금융 시스템은 사실상 미국 중심 구조다. 이란 제재 역시 결국 달러 시스템을 통한 금융 봉쇄였다. 그러나 최근 중국과 러시아, 일부 중동 국가들은 탈달러 움직임을 확대하고 있다. 위안화 결제 확대와 금 거래, 자국 통화 기반 에너지 거래가 조금씩 늘어나고 있다. 물론 아직 달러 체제를 흔들 정도는 아니다. 그러나 미국 역시 위기의식을 느끼고 있다. 왜냐하면 달러 패권의 핵심 가운데 하나가 바로 중동 석유 결제 체계였기 때문이다. 만약 중동 질서가 미국 중심에서 다극 체제로 이동하면 달러 체제 역시 장기적으로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다.

사실 지금 중동이 겪는 갈등은 단순한 국익 충돌이 아니다. 그 안에는 유대 문명과 이슬람 문명, 시아파와 수니파, 미국 중심 질서와 다극 체제 사이의 충돌이 동시에 들어 있다. 트럼프 시대 이후 중동은 아브라함 협정(Abraham Accords)을 통해 새로운 흐름을 만들기 시작했다. 이스라엘과 UAE, 사우디아라비아를 중심으로 한 현실적 공존 질서가 형성되기 시작한 것이다. 그러나 거기에는 여전히 이란이 빠져 있다. 그래서 앞으로는 아브라함 협정을 넘어 노아 협정(Noah Accords)으로 가야 한다. 유대교·기독교·이슬람은 결국 하나의 뿌리를 공유한다. 노아의 후손 가운데 셈(Shem)의 계열은 오늘날 유대와 아랍, 페르시아 세계의 정신적 기원으로 이어진다. 결국 중동의 진짜 평화는 “상대를 완전히 제거할 수 없다”는 현실 인식에서 시작될 수밖에 없다.

현재 세계 금융시장은 세 개의 거대한 축 위에서 움직이고 있다. 첫째는 AI 혁명이다. 둘째는 미중 패권 경쟁이다. 셋째는 중동 리스크다. 지금까지 세계 증시는 AI 랠리가 주도해왔다. 미국의 AI 반도체 기업과 빅테크는 여전히 시장의 중심이다. 그러나 중동 변수는 이 흐름을 언제든 흔들 수 있는 최대 리스크다. 만약 미국과 이란이 제한적 합의에 성공하고 호르무즈 안정이 유지된다면 글로벌 증시는 다시 AI 중심 상승장을 이어갈 가능성이 높다. 반면 협상이 완전히 붕괴하고 호르무즈 위기가 본격화되면 국제유가는 급등할 수 있고 글로벌 인플레이션은 다시 살아날 수 있다. 미국 연준은 금리를 쉽게 내리지 못하게 되고 세계 경제는 스태그플레이션 위험에 직면할 가능성이 높다. 중국 제조업과 유럽 산업은 큰 타격을 받을 수 있으며 한국 역시 직접적 충격을 받을 수밖에 없다.

한국은 중동과 멀리 떨어져 있지만 결코 안전지대가 아니다. 한국 경제는 수출 중심 경제이며 에너지 수입 의존도가 높다. 호르무즈 해협 불안정은 곧 한국 산업의 비용 상승과 직결된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같은 반도체 기업들도 결국 글로벌 금융 안정과 에너지 안정 위에서 성장하는 기업들이다. 국제유가 급등과 지정학 충돌은 결국 한국 증시 전체에 부담이 될 수밖에 없다. 따라서 한국은 에너지 공급망 다변화와 AI·반도체 중심 산업 경쟁력 강화, 그리고 중동 외교의 균형 전략을 동시에 추진해야 한다.

지금 세계는 군사력만으로 움직이지 않는다. 에너지와 AI, 금융과 공급망, 문명과 지정학이 동시에 움직이는 시대다. 호르무즈 해협은 단순한 바다가 아니다. 그것은 21세기 세계 질서의 축소판이다. 그리고 지금 인류는 그 바다 위에서 새로운 질서를 시험하고 있다. 전쟁의 균형이 아니라 공존의 질서, 핵의 공포가 아니라 신뢰의 관리 체계, 아브라함 협정을 넘어 노아 협정으로 가는 문명적 상상력. 그것이야말로 지금 중동과 세계가 함께 살아남는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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