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사설│기본·원칙·상식] 젠슨 황이 한국에서 찾은 것, AI 시대의 새로운 국부(國富) HBM

젠슨 황 엔비디아 최고경영자(CEO)가 5일간의 방한 일정을 마치고 돌아갔다. 이번 방한은 단순한 기업인의 출장이나 고객사 방문이 아니었다. 세계 AI 산업의 중심에 선 인물이 직접 한국을 찾아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등을 연이어 만나고 협력 방안을 논의했다는 점에서 국가 산업 경쟁력의 현주소를 보여주는 상징적 장면이었다.

무엇보다 주목해야 할 것은 황 CEO가 한국에서 가장 많이 언급한 단어가 인공지능(AI)도, 데이터센터도 아닌 HBM(고대역폭메모리)이었다는 점이다. 그는 최태원 SK그룹 회장과 만나 "HBM을 더 달라"고 요청했다. 동시에 삼성전자 경영진과도 만나 차세대 HBM과 파운드리 협력을 논의했다. 세계 최고 AI 기업 수장이 한국을 찾아 가장 먼저 확보하려 한 것은 결국 한국의 메모리 기술이었다. 이는 AI 시대 산업 지형이 얼마나 빠르게 바뀌고 있는지를 보여준다.

과거 반도체 산업의 중심은 중앙처리장치(CPU)였다. 이후 스마트폰 시대에는 모바일 AP가 중요해졌다. 그러나 생성형 AI 시대에는 상황이 달라졌다. 엔비디아의 GPU가 AI의 두뇌라면 HBM은 AI가 학습하고 추론하는 데 필요한 데이터를 공급하는 혈관이다. GPU만으로는 AI를 움직일 수 없다. HBM 없이는 AI 산업 자체가 돌아가지 않는다. 세계 시가총액 1위 기업으로 올라선 엔비디아가 한국 기업들과 긴밀한 관계를 유지하려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AI 패권의 핵심은 결국 안정적인 반도체 공급망에 있기 때문이다.

흥미로운 것은 황 CEO가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사이에서 절묘한 균형을 유지했다는 점이다. SK하이닉스를 향해서는 "가장 큰 메모리 파트너"라고 치켜세웠다. 최 회장과는 삼겹살과 치킨을 함께 먹으며 끈끈한 관계를 과시했다. 그러나 동시에 삼성전자 전영현 부회장과 만나 차세대 HBM5와 파운드리 협력을 논의했고, 이재용 회장과의 친분도 공개적으로 언급했다. 공급자에게는 경쟁을 유도하고, 자신은 안정적인 공급망을 확보하는 글로벌 기업의 전형적인 협상 방식이다. 엔비디아가 삼성과 SK 모두를 필요로 한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한국 입장에서 중요한 것은 누가 엔비디아의 더 가까운 파트너인가를 따지는 것이 아니다. 진짜 중요한 것은 AI 시대에도 한국이 세계가 반드시 필요로 하는 기술을 계속 보유할 수 있느냐다.

AI 산업의 승자는 단순히 AI 서비스를 잘 만드는 기업이 아닐 수 있다. AI 산업 전체가 돌아가기 위해 반드시 필요한 핵심 부품과 핵심 기술을 가진 국가가 더 큰 부가가치를 가져갈 가능성이 높다. 한국이 메모리 반도체 분야에서 구축한 기술력은 그런 의미에서 국가 전략 자산이다.

정부와 기업은 HBM 성공에 안주해서는 안 된다. 차세대 메모리, 첨단 패키징, AI 반도체 설계, 파운드리, 전력반도체 등 미래 기술에 대한 투자를 더욱 확대해야 한다. 인재 양성과 연구개발 역시 국가 차원의 전략으로 추진할 필요가 있다.

이번 젠슨 황의 방한은 한국이 AI 시대의 변방이 아니라 핵심 공급망 한가운데 서 있다는 사실을 다시 한번 확인시켜 줬다. 세계 AI 산업을 움직이는 기업의 수장이 서울에서 삼성과 SK를 찾아다니며 협력을 요청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AI 시대의 새로운 석유는 데이터라고 하지만 그 데이터를 움직이는 것은 결국 반도체다. 그리고 그 반도체의 핵심 한 축을 지금 한국이 쥐고 있다. 

젠슨 황 엔비디아 최고경영자CEO가 5일 서울 마포구 홍대 인근 삼겹살 음식점 형님 저요에서 최태원 SK그룹 회장 구광모 LG그룹 회장 이해진 네이버 의장과 삼소삼겹살·소주 회동’을 하기 위해 이동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젠슨 황 엔비디아 최고경영자(CEO)가 5일 서울 마포구 홍대 인근 삼겹살 음식점 '형님 저요'에서 최태원 SK그룹 회장, 구광모 LG그룹 회장, 이해진 네이버 의장과 '삼소(삼겹살·소주) 회동’을 하기 위해 이동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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