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6월 3일 지방선거는 단순한 지방권력 재편이 아니다. 이번 선거는 이재명 정부 출범 이후 처음 치러진 전국 단위 정치 이벤트이자 향후 대한민국의 정치·경제·산업 질서가 어떤 방향으로 움직일 것인가를 보여준 역사적 분수령이었다. 선거 결과만 놓고 보면 더불어민주당은 광역단체장과 기초단체장, 지방의회 전반에서 우위를 확보하며 사실상 승리했다. 그러나 이번 선거의 진정한 의미는 승패 그 자체가 아니다. 더욱 중요한 것은 권력 구조의 변화다.
대한민국 정치사에서 행정권력과 입법권력, 그리고 지방권력이 상당 부분 같은 정치세력 아래 놓이는 경우는 흔치 않다. 김대중 정부는 여소야대의 한계를 안고 출범했고, 노무현 정부는 탄핵이라는 거대한 정치적 소용돌이를 경험했다. 문재인 정부는 지방선거와 총선에서 큰 승리를 거두었지만 여전히 강력한 야권의 견제를 받았다. 반면 현재의 정치 환경은 과거와 상당히 다르다. 중앙정부와 국회, 그리고 지방정부 상당 부분이 같은 방향을 바라보는 구조가 형성되고 있다.
정치적으로 보면 이는 사실상 ‘이재명 정부 2기’의 시작이라고 볼 수 있다. 비록 대통령 임기는 그대로지만 정치적 기반과 정책 추진력 측면에서는 집권 초기보다 훨씬 강한 동력을 확보한 상태다. 지방선거는 원래 정권의 중간평가 성격을 갖는다. 그런데 이번 선거는 심판보다는 재신임에 가까운 결과를 보여주었다. 국민은 적어도 당분간 현 정부가 추진하는 방향에 기회를 더 주겠다는 선택을 한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이번 지방선거 이후 가장 중요한 변화는 정치의 중심축이 AI와 산업정책으로 이동하고 있다는 점이다. 과거 정치가 민주화와 산업화, 진보와 보수, 복지와 성장이라는 프레임을 중심으로 움직였다면 이제는 국가 경쟁력과 미래 산업이 핵심 의제로 떠오르고 있다. 청년들은 일자리를 이야기했고 기업들은 AI와 반도체를 이야기했다. 지방은 지역소멸과 산업기반 재건을 이야기했다. 선거 과정에서 가장 자주 등장한 단어 가운데 하나가 AI였다는 사실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
AI는 단순한 기술혁명이 아니다. AI는 산업혁명에 버금가는 문명 전환이다. 18세기 영국은 증기기관으로 세계를 지배했고, 20세기 미국은 자동차와 석유, 반도체로 세계 경제를 주도했다. 21세기 중반 이후 세계를 움직이는 핵심 동력 역시 AI가 될 가능성이 높다. 문제는 대한민국이 지금 역사상 가장 위험하면서도 가장 중요한 기회를 맞고 있다는 사실이다.
미국은 엔비디아와 마이크로소프트, 구글과 아마존을 중심으로 AI 생태계를 구축하고 있다. 중국은 국가 총동원 체제를 통해 AI 패권에 도전하고 있다. 일본은 반도체 부활을 국가 과제로 추진하고 있으며 유럽은 AI 규범과 산업정책을 동시에 구축하고 있다. 지금 세계는 총성 없는 AI 전쟁을 치르고 있다.
대한민국은 이 거대한 전쟁의 한복판에 서 있다. 더 이상 선택의 시간이 아니다. 실행의 시간이다. AI를 놓치면 미래 산업을 놓치게 되고 미래 산업을 놓치면 국가 경쟁력을 잃게 된다. 이재명 정부가 AI와 반도체, 첨단산업을 국가 전략의 중심에 두고 있는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다.
따라서 앞으로의 국정 운영은 단순한 경제정책이 아니라 국가 경쟁력 프로젝트가 될 가능성이 높다. 박정희 정부가 중화학공업 육성을 통해 산업국가의 기반을 만들었다면, 김대중 정부는 IT 혁명을 통해 디지털 강국의 토대를 구축했다. 노무현 정부는 혁신도시와 균형발전 정책을 추진했고, 문재인 정부는 디지털 뉴딜을 시도했다. 그리고 지금 이재명 정부가 추진하는 AI 국가전략은 대한민국의 다음 30년을 결정할 국가 프로젝트가 될 가능성이 있다.
그 중심에는 반도체가 있다. AI 혁명의 출발점은 결국 반도체다. AI 모델은 엄청난 연산 능력을 필요로 하고, 이를 가능하게 하는 것이 첨단 반도체다. 대한민국은 메모리 반도체 분야에서 세계 최고 수준의 경쟁력을 보유하고 있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는 이미 글로벌 시장을 주도하고 있다. 그러나 미래는 메모리만으로 결정되지 않는다. AI 전용칩과 시스템 반도체, 첨단 패키징, 전력 반도체, 차세대 컴퓨팅 기술까지 경쟁 영역이 확대되고 있다.
대한민국이 세계 1위 메모리 강국이라는 사실은 중요하다. 그러나 앞으로 더 중요한 것은 AI 시대 전체 가치사슬에서 얼마나 많은 영역을 차지할 수 있느냐다. 정부가 반도체를 국가 전략산업으로 규정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에너지 역시 국가 전략의 핵심 축으로 부상하고 있다. 많은 사람들은 AI를 소프트웨어 산업으로 이해하지만 실제로는 전력산업에 가깝다. 데이터센터 하나가 중소도시 전체 전력 소비량에 맞먹는 시대가 오고 있다. 앞으로의 경쟁은 누가 더 뛰어난 AI 모델을 갖고 있느냐만이 아니라 누가 더 안정적인 전력망을 확보하느냐의 경쟁이 될 가능성이 높다.
따라서 원전과 재생에너지, 수소경제와 전력망 구축은 환경정책이 아니라 산업정책이다. 전력은 AI 시대의 새로운 석유이며 데이터센터는 AI 시대의 새로운 공장이다. 전력망은 AI 시대의 새로운 고속도로다. 대한민국이 AI 강국이 되기 위해서는 반도체만이 아니라 에너지 전략까지 동시에 성공해야 한다.
이번 지방선거가 던진 또 하나의 강력한 메시지는 지방의 부상이다. 대한민국은 오랫동안 수도권 중심 성장 전략을 유지해 왔다. 그 결과 경제 규모는 커졌지만 수도권 과밀과 지방소멸이라는 부작용도 함께 심화되었다. 이제는 국가 발전 모델 자체를 바꾸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이재명 정부가 강조하는 ‘5극 3특’ 전략도 이런 흐름 속에서 이해할 수 있다. 앞으로 국가 예산과 산업 프로젝트의 상당 부분은 지역 성장거점 육성에 투입될 가능성이 높다. 충청은 반도체와 첨단산업벨트의 중심지로 성장하고 있다. 부산은 글로벌 금융과 물류 허브를 꿈꾸고 있다. 울산은 미래 모빌리티 산업의 거점으로 변신을 시도하고 있다. 대구는 로봇산업과 미래 제조업을 육성하고 있다. 광주는 AI와 미래차 산업을 결합하려 한다.
그리고 전북이 있다.
전북은 대한민국 산업화 과정에서 상대적으로 소외된 지역이라는 평가를 받아왔다. 그러나 역설적으로 지금이 가장 큰 기회의 시간이 될 수 있다. AI 혁명 때문이다.
많은 사람들이 AI를 소프트웨어 산업으로 이해한다. 그러나 앞으로의 AI는 현실 세계로 걸어 나올 것이다. 휴머노이드 로봇이 되고 자율주행차가 되고 스마트공장이 될 것이다. 이것이 바로 피지컬 AI다.
피지컬 AI는 넓은 산업용지와 풍부한 전력, 첨단 제조업 기반을 필요로 한다. 새만금은 이러한 조건을 상당 부분 갖추고 있다. 재생에너지 역시 강점이다. 수도권보다 상대적으로 낮은 비용 구조도 경쟁력이다. 만약 국가 AI 전략과 지방균형발전 전략이 결합된다면 전북은 대한민국 피지컬 AI 산업의 실험장이자 전진기지가 될 가능성이 충분하다.
이는 단순히 전북만의 문제가 아니다. 대한민국 산업지도를 다시 그리는 문제다. 과거 산업화 시대의 중심이 경부축이었다면 AI 시대에는 새로운 산업축이 형성될 수 있다. 새만금과 군산, 익산과 전주를 연결하는 전북권이 새로운 국가 성장거점으로 성장할 가능성도 충분하다.
물론 도전도 만만치 않다. 노동과 기업의 새로운 충돌 가능성도 존재한다. 정년 연장과 퇴직연금 의무화, 플랫폼 노동자 보호와 주4.5일제 논의, 노란봉투법과 노동권 확대는 시대적 흐름이다. 그러나 동시에 기업 경쟁력 유지라는 과제도 중요하다. 대한민국 경제는 여전히 수출 중심 국가이며 반도체와 자동차, 조선과 배터리가 국가경제를 떠받치고 있다. 결국 앞으로 한국 사회는 노동과 자본의 새로운 사회적 대타협 모델을 만들어야 하는 과제를 안게 될 가능성이 높다.
정치적으로도 과제가 남아 있다. 국민의힘은 이번 선거를 통해 단순한 패배가 아니라 존재 이유에 대한 질문을 받게 됐다. 탄핵 이후 보수는 어디로 갈 것인가. 새로운 리더십은 누가 맡을 것인가. 오세훈과 한동훈, 안철수와 유승민, 원희룡 등 다양한 인물이 거론되지만 아직 압도적 구심점은 보이지 않는다. 앞으로 2~3년은 보수 재건의 시간이 될 가능성이 높다.
결국 대한민국은 지금 제2의 국가 전환기 앞에 서 있다. 1987년이 민주화의 시대였다면 1997년은 구조개혁의 시대였다. 2000년대는 정보화 혁명의 시대였다. 그리고 2026년 이후는 AI 혁명과 첨단산업, 에너지 전환과 지방 대전환의 시대가 될 가능성이 높다.
6·3 지방선거는 그 거대한 변화의 출발점이었다.
정치는 이미 다음 선거를 준비하고 있다. 그러나 국민은 다음 선거보다 다음 먹거리를 걱정한다. 대한민국은 지금 AI 혁명과 지방 대전환, 산업 패권 경쟁과 에너지 재편이 동시에 진행되는 역사적 변곡점 위에 서 있다.
이번 지방선거는 단순한 정치 이벤트가 아니었다. 그것은 대한민국이 어디로 갈 것인가를 묻는 국가적 질문이었다.
그리고 이제부터 진짜 승부가 시작된다.
이재명 정부가 강한 정치적 기반을 바탕으로 대한민국을 AI 강국으로 이끌 수 있을 것인가. 지방은 새로운 성장동력을 만들 수 있을 것인가. 기업은 세계 경쟁에서 살아남을 수 있을 것인가. 국민의 삶은 실제로 나아질 것인가.
앞으로 4년은 대한민국 현대사에서 매우 중요한 시간이 될 가능성이 높다.
훗날 역사가들은 2026년 6·3 지방선거를 단순한 지방선거가 아니라 대한민국이 AI 국가전략과 지방 대전환을 본격적으로 시작한 정치적 출발점으로 기록할지도 모른다.
그것이 이번 선거가 가진 진정한 역사적 의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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