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엉이 바위에 부엉이가 사나? 담배 있나?”
자신에 닥친 운명의 짓궂은 장난을 한탄한 것일까. 노무현 전 대통령은 수수께끼 같은 선문답(善問答)만 남긴 채 사저 뒷산에서 몸을 던졌다.
투신한 부엉이 바위는 그가 유년시절, 바위를 타고 흙장난을 했던 곳이다. 낙하 중 마지막으로 본 풍경은 당시의 애틋한 추억이었을 지도 모를 일이다.
그렇게 63세를 일기로 파란만장한 인생을 마친 노 전 대통령. 그는 현실정치라는 ‘풍차’에 특유의 ‘소신과 원칙’이라는 창으로 맞서 온 ‘돈키호테’였다.
변호사 시절 내내 소외받는 노동자와 학생들의 편에서 군사정권에 저항하던 그가 세상에 알려진 것은 지난 87년 9월.
당시 정부가 발포한 최루탄에 맞아 사망한 대우조선 노동자 이석규씨 사인 규명에 나섰다가 구속되기도 했다.
정계 입문 직후인 88년 5공 청문회 때는 정연한 논리와 송곳 질문으로 정주영 회장 등 증인들을 쩔쩔매게 했다. 당시를 지켜본 국민들의 노 전 대통령에 대한 이미지는 현재도 ‘간 큰 초선의원’이다.
이후 그는 지역주의라는 벽에 막혀 총선 등에서 10년간이나 쓴잔을 마셔야 했다. 그러나 그는 끝까지 ‘현실정치 타파’라는 자신의 원칙을 지키면서 도전장을 내민 끝에 2002년 대통령에 당선됐다.
오죽했으면 한 국가의 원수임에도 ‘바보 노무현’이라는 별명이 붙었을까.
재임 시에도 탄핵소추안이 의결되고 야당에 대연정을 제안한 헌정사상 첫 대통령 등 그의 정치역정은 그야말로 파격과 기록, 그 자체였다.
결국 퇴임 후 불거진 ‘박연차게이트’는 평생 구호였던 ‘깨끗한 정치’에 부메랑으로 돌아와 그를 ‘사지’로 몰고 간 계기가 됐다.
이처럼 민주화를 위해 평생 외길을 걸으며 국민의 가슴에 불을 당기곤 했던 그는 이제는 세상에 없다.
영화 같은 삶을 살았던 그의 영전에 담배 한 개피를 바친다.
안광석 기자 novus@aj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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