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30~31일 의원 연찬회를 기점으로 이명박 대통령의 친형 이상득 전 국회부의장 측을 겨냥, 연일 사찰과 인사검증 책임자 문책을 주장했던 정두언 한나라당 최고위원과 남경필·정태근 의원 등 ‘피해자 3인방’은 지난 주말부턴 일제히 이 문제에 대해 입을 닫고 있다. 특히 정 의원의 경우 3박4일 간의 해외출장을 떠나기에 앞서 “원한다면 불법사찰에 대한 새로운 증거를 제시하겠다”고 밝히기까지 했으나 아직 이렇다 할 움직임이 없다.
이에 대해 한 당직자는 “지도부는 물론, 이재오 특임장관 등까지 나서 자제를 요청한 만큼 ‘좀 지켜보겠다’는 게 이들 의원들의 생각인 것 같다”고 전했다. 그러나 다른 일각에선 “이미 ‘정·남·정’ 3인방과 이 전 부의장 측 사이에 청와대를 통해 나름의 중재가 이뤄진 게 아니냐”는 관측이 조심스레 제기되고 있어 주목된다.
7일 여권 고위 관계자에 따르면, 당초 이 대통령은 정 최고위원 등의 주장에 대해 크게 격앙된 반응을 보였다고 한다. 익명의 청와대 관계자로부터 “본인들은 얼마나 깨끗하게 지냈는지 ‘공정 사회’ 차원에서라도 밝히겠다”는 경고성 메시지가 나온 것도 이런 맥락에서였다.
그러나 이후 유명환 외교통상부 장관 딸의 특혜 채용 의혹이란 악재가 터지면서 상황은 급변했다. 그러잖아도 인사 청문 정국의 후폭풍으로 대통령의 국정 지지율이 하향세를 타던 마당에 민주당 등 야당이 대통령의 집권 후반기 국정기조인 ‘공정 사회 구현’에 빗대어 이 두 사안을 대여 공격의 소재로 활용하고 나선 것.
이에 여권 내에서도 “더 이상 ‘자중지란’을 두고만 볼 순 없다”는 인식이 확산되기 시작했다. 추석 연휴 전후의 민심 흐름이 사실상 올 하반기 국정운영의 성패를 가늠한다는 점에서다.
그러던 와중에 상징적인 사건(?)이 일어났다. 이번 사찰 논란과 관련, 이른바 ‘SD(이상득)라인’의 핵심인물로 불리던 김주성 전 국가정보원 기획조정실장이 6일 단행된 국정원 차장(차관급) 인사에서 전격 교체된 것이다.
정부 관계자는 “최근 개각 분위기에 맞춰 2년 가까이 장수했던 인물을 바꾼 것뿐”이라며 확대해석을 경계했으나, “‘오비이락’으로 보기엔 시점이 너무 절묘하다”는 게 정치권 안팎의 중론이다.
이 대통령은 7일 안상수 당 대표를 만나 “당이 적절히 견제하고 정부와 협력하면 국민의 지지를 받는데 도움이 된다”며 “집권 여당의 역할을 잘 해주길 바란다”고 당부했다. 또 그는 “여당 내 분파된 모습은 국민이 좋아하지 않는다”면서 배석한 이 특임장관에게 “수시로 당·정간 소통 역할을 하라”고 지시하기도 했다.
여권 고위 관계자는 “불법사찰의 경우 검찰수사를 통해 사실관계를 밝히고 책임을 물어야겠지만, 대통령의 인사나 '개국공신'들의 대립 등 정치적인 부분은 서로 대화로 풀 수 있다고 본다”며 “그럼에도 긴장관계로 갈 수밖에 없다면 좀 더 건강한 긴장관계로 가야 한다. 그게 대통령의 생각인 것 같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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