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경제 윤세미 기자 = 말레이시아에서 수도 쿠알라룸푸르 거리가 시민들의 노란 물결로 뒤덮였다. 현지시간 19일 말레이시아 수도 쿠알라룸푸르에서는 수 만 명의 국민들이 부패 스캔들에 연루된 나지브 라자크 총리의 퇴진을 요구하며 가두시위를 벌였다고 월스트리트저널(WSJ) 등 외신들이 보도했다.
일제히 노란색 티셔츠를 맞춰 입은 시민들은 나지브 총재를 악마나 광대로 묘사한 그림을 흔들며 소리 높여 퇴진을 외쳤다. 현재 나지브 총리는 경제 개발 명목으로 국영펀드 말레이시아개발유한공사(1MDB)를 설립한 뒤 기금을 개인 자산처럼 유용했다는 혐의를 받고 있다.
1MDB는 지난 2009년 발전소 건설이나 부동산 개발 등을 통해 차익을 도모하고 말레이시아 경제 개발을 이끈다는 목적으로 설립됐다. 그러나 2015년 이 기금 중 일부가 나지브 총리와 측근의 계좌로 흘러들어간 정황이 포착됐다. 미국 법무부는 라작 총리 측근들이 최소 35억 달러(약 4조원)를 빼돌린 것으로 보고 있다.
대형 스캔들이 터지면서 말레이시아에서는 이를 수사하기 위한 1MDB 특별조사위원회가 구성됐다. 그러나 조사의 독립성과 투명성에 대한 의구심이 짙어지면서 의혹이 해소되지 않고 있는 상황이다.
나지브 총리는 혐의를 계속해서 부인하고 있다. 대신 그는 자신에 비판적인 내각 2인자인 무히딘 야신 부총리를 해임했다. 말레이시아 수사당국은 민간 뉴스 웹사이트들을 폐쇄하고 1MDB 스캔들은 보도한 기자들을 기소했으며, 지난 14일에는 말레이시아 법원이 야당의 라피지 람디 의원이 1MDB의 기밀문서 일부 내용을 언론에 폭로했다며 기밀유지법 위반으로 18개월 형을 선고했다.
이번 시위 하루 전에는 경찰이 반부패 운동을 주도하고 있는 말레이시아 시민단체인 베르시(Bersih)의 사무실을 압수수색하고 마리아 치나 압둘라 대표와 만딥 싱 총무를 연행하기도 했다. 말레이시아어로 '깨끗한'이라는 의미를 담은 '베르시 운동'은 처음 선거개혁 캠페인으로 시작됐으나 1MDB 비자금 스캔들이 터진 이후 반부패 시위로 발전했다.
시민운동가이자 변호사인 앰비가 스리네바산은 트위터에 “마리아가 공안에 연행됐다는 소식에 충격을 받았다. 엄연한 권력남용”이라고 비난했다.
시위에 참가한 모보험 설계사 무하매드는 “우리는 선치와 투명한 선거를 요구한다. 정부는 말레이시아 국민들의 세금을 유용했다. 역사상 최악의 스캔들”이라고 말했다.
이날 시위에서는 노란 옷을 입은 베르시 시위대와 빨간 옷을 입은 친정부 시위대와의 충돌 우려가 커졌으나 충돌은 보고되지 않았다. 반부패 시위는 축제와 같은 분위기에서 진행됐다고 파이낸셜타임즈(FT)는 전했다.
현재 APEC 정상회의에 참석하기 위해 페루에 있는 나지브 총리는 이번 시위를 “야당의 술수”라고 못 박았다. 총리실 대변인은 “야당 지도자들이 사회의 안녕을 추구하는 게 아니라 사사로운 정치적 이익을 위해서 베르시 뒤에 숨어서 시위를 조종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현재 1MDB에 대한 수사는 5개국 이상에서 진행되고 있다. 스위스 수사당국은 40억 달러 정도가 유용된 것으로 보인다고 밝혔고, 미국 법무부는 1MDB에서 횡령된 자금이 미국의 고급 부동산과 미술품 등 구입에 쓰였다며 관련 자산을 압수하기 위한 민사 소송을 제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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