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정부의 과학기술 정책을 주도적으로 수행할 과학기술혁신본부(과기혁신본부)가 표류하고 있다. 출범 초기부터 인선이 꼬이면서 국가 연구개발(R&D) 예산 집행 및 4차 산업혁명을 위한 국가 연구개발 과제 추진동력이 상실됐다는 우려가 높다.
15일 과학기술정보통신부(과기정통부)에 따르면 과기혁신본부는 지난 정부 미래창조과학부의 과학기술전략본부(실장급)에서 현 정부 들어 차관급으로 격상된 조직이다. 특히 20조원에 이르는 국가의 R&D 사업에 대한 예산 심의·조정과 성과 평가까지 맡는 핵심 조직으로 주목을 받았다.
특히 과기혁신본부장은 장관급 이상만 참석하는 국무회의에도 배석, 중요한 국가 정책 결정에 참여할 수 있다. 국가과학기술자문회의가 상정한 안건에 대한 예비검토를 맡는 등 실무도 지원한다. 범 부처 국가 과학기술 정책을 총괄·조율하는 컨트롤타워로써의 역할을 수행하는 셈이다.
이처럼 과기혁신본부에 힘이 실리면서 해당 수장 자리를 둘러싸고 과학계는 물론, 세간의 관심이 자연스레 쏠렸다. 과학기술 정책 및 예산 시스템의 전반을 이해하는 동시에 과학계의 목소리를 귀기울일 수 있는 인사가 와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았다. 하지만 과거 황우석 사태에 연루됐던 박기영 교수가 임명된지 나흘 만인 11일 자진 사퇴하면서 과기혁신본부에 대한 기대감은 실망감으로 바뀌었다.
박 교수는 참여정부 시절 청와대 정보과학기술보좌관을 지내며 황우석 전 서울대 교수를 전폭적으로 지원했던 인물로 꼽힌다. 황 전 교수의 조작 논문에 공저자로 이름을 올리고 2억5000만원의 연구비를 지원받은 사실 등이 드러나면서, 결국 '자진 사퇴'라는 불가피한 선택을 하게 됐다. 이에 과기혁신본부의 정식 출범은 후임 본부장이 정해질 때까지 무기한 연기된 상황이다.
정부는 과기혁신본부의 후임 본부장 인선을 서두르겠다는 입장이지만, 후임자 물색이 쉽지 않을 것이라는 관측이다. 박 교수 사태에 비춰봤을 때 과학기술계의 신망을 동시에 받는 인사를 찾는 작업이 더욱 까다로워질 것이라는 점에서다. 때문에 늦어도 이달 중 후임 인선이 이뤄지긴 어려울 수 있다는 전망에 무게가 실리고 있다.
과기혁신본부의 인선이 꼬이면서 과학기술 거버넌스 구축이 더뎌질 것이라는 우려도 나온다. 현재 과기혁신본부는 국가 R&D 사업에 대한 예산 심의, 조정 등의 실질적인 권한을 부여받지 못한 상태다. 과기혁신본부가 기획재정부에서 R&D 예산 권한을 가져오려면 과학기술기본법 등의 개정이 필요하지만, 본부장이 선임 안된 상황에서 논의조차 이뤄지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정부부처 고위 관계자는 "과기혁신본부장의 가장 큰 과제는 예산권 확보"라며 "과거 문재인 대선캠프에서 신임을 받았던 박 교수가 불명예 퇴진하면서 과기혁신본부가 출범 시작부터 추진력을 잃는 모양새"라고 지적했다.
한편 과기혁신본부장의 공석으로 과기정통부의 과학 분야 실·국장 인사도 당초 8월 중순에서 무기한 연기된 상황이다. 이에 따라 국가과학기술연구회, 한국천문연구원, 한국철도연구원 등 올 상반기 임기가 종료된 과학산하기관장 임명도 덩달아 늦춰질 전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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