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과 미국의 자유무역협정(FTA) 개정 협상이 현실화됨에 따라 우리 산업계의 경쟁력 약화가 우려된다. 가뜩이나 한국경제에 암울한 소식이 이어지는 가운데 '한·미 FTA 개정'이라는 커다란 암초를 만난 것이다.
특히 한·미 FTA 개정협상으로 직접적 타격이 예상되는 자동차와 철강업종은 최악의 경우 대미(對美) 수출물량에 대한 관세와 상계관세 부과 등 직격탄을 맞을 위기에 놓였다. 또 미국이 관세 철폐를 요구하는 농업분야도 불안하긴 마찬가지다.
문제는 FTA 개정이 '줄 건 주고 받을 건 받는' 방향으로 흘러가야 하는데, 우리 정부는 그간 적극적인 대처보다 '현상유지'에 초점을 맞춰왔기 때문에 협상과정에서 불리할 수밖에 없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정부는 이에 대해 한·미 FTA의 상호 호혜성과 미 무역적자와의 관계 등을 중심으로 하는 FTA 효과 분석 내용을 미국과 공유했으며, 개정협상 개시에 필요한 제반 절차를 착실히 진행할 계획이라는 설명이다.
한·미 양국은 지난 4일(현지시간) 미국 워싱턴에서 제2차 한·미 FTA 공동위원회 특별회기를 열고 개정협상 절차에 사실상 착수하기로 합의했다. 이날 합의로 한·미 양국은 각각 국내법에 따라 협상 개시를 위한 국내 절차에 착수한다.
한·미 FTA 개정협상과 관련, 자동차와 철강 업종은 불안감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그간 미국이 무역적자 주범으로 이 두 업종을 지목해왔기 때문이다.
미국은 FTA에 따라 한국 자동차 관세(2.5%)를 2012년 협정 발효 후 2015년까지 4년간 유지하다 2016년 폐지, 현재 한국에서 미국으로 수출되는 자동차는 무관세다. 일본·유럽산 자동차(2.5% 관세율)보다 관세 측면에서 우위를 점하고 있다.
하지만 FTA 개정협상 과정에서 관세가 부활하면, 미국 수출용 한국차의 가격경쟁력은 약화될 수밖에 없다.
가뜩이나 최근 국내 완성차업체의 수출이 부진한 상황에서 이 같은 악재까지 겹치면 재기 자체가 어려워질 것이라는 암울한 전망도 나온다.
현대·기아차의 미국 판매량 가운데 50%가량이 미국 현지 생산이 아니라, 국내에서 생산돼 미국으로 건너가는 물량인 만큼 관세 부활 시 수출 면에서 고전을 면치 못한다는 것이다. 현대·기아차의 전체 수출 가운데 미국 시장의 비중은 올해 상반기 기준 '3분의1'에 달한다.
세계무역기구(WTO)의 무관세 협정에 따라 한·미 FTA 발효 이전인 2004년부터 미국에 무관세로 수출되는 철강 분야는 전반적인 통상환경 악화가 우려스럽다.
한·미 FTA 개정협상을 계기로 미국이 한국산 철강에 대한 반덤핑·상계관세를 엄격하게 부과할 가능성이 있다. 현재 미국에 수출하는 한국산 철강의 약 81%가 이미 반덤핑이나 상계관세를 적용받고 있다.
농업계도 개정협상 결과가 큰 영향을 미친다. 무역전문지 '인사이드 US 트레이드'에 따르면 미국은 지난 8월 22일 한·미 FTA 공동위에서 농산물에 대한 시장개방을 요구했다. 한국의 미국산 농산물에 대한 관세 즉시 철폐를 요구한 것이다.
한국 정부는 한·미 FTA 체결 당시, 쌀을 비롯한 민감 품목 16개를 양허 대상에서 제외했다. 578개 품목은 발효 즉시 관세를 철폐했지만, 나머지 1499개 품목은 짧게는 2년에서 길게는 20년에 걸쳐 단계적으로 철폐하기로 했다.
한·미 FTA 발효 5년이 지난 지금 아직 관세가 남은 농산물은 545개 품목으로 추정된다.
그간 정부는 쌀을 포함한 농업 분야는 양보하지 않겠다는 입장을 지켜왔기 때문에 농산물 시장 추가 개방 여부가 개정협상 테이블에 올라올 경우 상당한 파장이 예상된다.
우리가 얻어내야 할 것은 적자를 보는 서비스교역 개선이다. 미국의 서비스 무역흑자는 한·미 FTA 발효로 지식재산권·법률·금융·여행시장 등이 개방되며 2011년 69억 달러에서 2016년 101억 달러로 증가했다.
미국이 최근 한국기업 등을 상대로 한 반덤핑 관세와 세이프가드 조사 등 무역구제도 개선이 필요한 부분이다.
학계 관계자는 "협상은 내줄 것은 내주고 받을 것은 받으며 이익의 균형을 맞추는 것이지만, 한·미 FTA 개정은 미국이 얻을 이익이 더 클 것으로 보인다"며 "그간 정부의 입장대로 개정 협정을 최소화하는 협상전략을 펴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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