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의 대선 출사표로 잘 알려진 책이 있다. 제목은 '절름발이 미국(Crippled America)'이다. 미국의 위상이 수세미처럼 구겨져 있고 이젠 한물 간 국가로 전락했다는 내용이다. 미국을 최고의 자리로 되돌릴 것이라는 트럼프의 주체할 수 없는 자신감도 묻어 있다. 하지만 '막말'과 좌충우돌의 이미지에 갇혀 있는 트럼프의 속내가 이책에서 그대로 드러난다. 지난 1년간 트럼프의 마이웨이식 행보로 인해 지구촌 곳곳은 불확실성과 혼란이 가중되었다.
그가 미국의 45대 대통령에 당선된 이유는 단순히 소외된 백인 보수 중하위층의 불만 또는 잃어버린 일자리가 다시 찾아올 것이라는 희망 때문만은 아니었다. 무엇보다도 여기저기 물이 새고 있는 '세계 최강' 미국호(號)의 침몰 부터 막아야 한다는 그의 호소가 표심을 자극했기 때문이다. 문제가 되었던 그의 '막말' 폭풍과 인격적 비호감은 실제 대통령이 되면 차차 개선될 수 있다는 기대감으로 변하면서 미국 유권자들은 '이단아' 트럼프에게 표를 던졌다.
1년이 지났지만 트럼프의 충동적이고 때론 거친 언어와 경멸적 표현에 대한 논란은 끝이 없다. 안타깝지만 그로부터 초강국 미국 대통령다운 품격과 언행을 기대한다는 것은 지나친 욕심일지 모른다. 트럼프에 대한 국정지지도는 40%대로 저조하다. 건강보험부터 이민정책, 무역협정과 환경규제, 세제개편 등 전임 버락 오바마 행정부의 정책을 전면 손질하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한 해를 보냈다. 그의 낮은 지지도는 잘못된 정책 때문이 아니다. 무엇보다도 독설적이며 보복적이며 인종 차별적 언어를 서슴치 않는 그의 캐릭터에 기인한다.
우리는 분열과 경쟁의 트럼프 시대에 살고 있다. 오바마 행정부가 구축했던 국제적 합의에 의한 다자주의 외교의 틀은 급격히 무너지고 있다. 각종 무역 협정들이 파기되고 군사적 충돌에 대한 위험이 냉전시대 이후로 사상 최고조에 이르렀다. 또한 트럼프는 미국 우선주의를 앞세워 동맹국들까지 코너에 몰고 있다.
지난 달 트럼프는 취임 후 첫번째 국가안보전략 문서를 공개하는 자리에서 "안보를 위해 번영을 거래하는 모든 국가들은 안보와 번영 둘 다 상실하게 될 것"이라면서 "허약함은 분쟁으로 가는 가장 확실한 길이며, 경쟁상대가 없을 정도로 독보적인 힘이 가장 분명한 방어수단임을 우리는 알고 있다"고 밝혔다.
미국이 지구상에서 유일하고 가장 강력한 국가로 남겠다는 강력한 의지의 표현이다. 미국이 더 약해지면 그 자체가 세계 평화의 위협이라는 것이다. 이제 동맹국은 미국에 기대지 말고 막강한 미국 건설에 힘을 보태라는 것이다. 트럼프 취임 후 한국을 비롯한 미국의 우방들마저 그가 어디로 튈지 몰라 전전긍긍하고 있다.
트럼프 외교정책의 '키워드'는 힘을 통한 평화다. 그러나 미국이 아닌 다른 국가의 입장에서 보면 그것은 힘을 통한 미국의 이익 방어일 뿐이다. 세계는 자기 중심적이며 오만한 미국을 위대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안토니우 구테흐스 유엔사무총장은 지난 한 해를 돌아보면서 2017년은 평화의 한 해가 될 것을 강조했지만 불행하게도 여러가지 근본적인 면에서 세계는 그와 반대로만 돌아갔다고 회고했다.
©'5개국어 글로벌 경제신문' 아주경제. 무단전재·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