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초대석] 정성춘 KIEP 부원장 "한국, 日 '잃어버린 30년' 전철 밟을수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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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예지 기자
입력 2023-06-15 0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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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정성춘 KIEP 부원장 인터뷰

  • 내수 약화, 자산 거품 붕괴, 인구 변화 때문

  • 한·일 관계 개선 위해 과거 굴레 먼저 벗어야

  • 日 여전히 저성장, 경제 반등 판단 시기상조

  • 尹 정부 "中 배제 아냐" 설득·설명 노력 필요

정성춘 대외경제정책연구원(KIEP) 부원장 [사진=아주경제]

"한국은 일본보다 더 고통스러운 저성장의 터널을 지나갈 수도 있다."

정성춘 대외경제정책연구원(KIEP) 부원장은 14일 아주경제신문과의 인터뷰에서 한국이 '잃어버린 30년'으로 불리는 일본의 전철을 밟을 가능성이 매우 높다며 이같이 말했다. 

저출산·고령화와 부동산 시장 침체 등 오늘날 우리나라가 직면한 사회·경제적 문제들은 일본의 지난 30년 상황과 매우 유사하다. 두 차례의 한·일 정상회담을 통해 양국 관계가 급진전을 보이고 있지만 일본 실패를 반복하지 않으려면 원인과 사례를 철저히 분석하고 지금이라도 이를 악물고 허리띠를 바짝 졸라맬 때라고 정 부원장은 거듭 강조했다.
 
"韓, 日처럼 장기 침체 빠질수도...허리띠 졸라매야"
정 부원장은 우리 경제가 일본과 같은 장기 침체를 겪을 가능성이 크다고 짚었다. 우리나라 내수 기반이 약화된 데다, 자산시장의 거품이 많이 꺼지면서 사람들이 지갑 열기를 주저하고 있다는 이유에서다.

인구 구조가 많이 바뀌면서 갈수록 생산 가능 인구도 줄고 고령화가 심화하고 있다는 점도 이 같은 주장에 설득력을 더한다.

한국과 일본 두 나라 모두 빠른 인구학적 변화를 겪고 있으나 현재는 한국이 당시 일본보다 열악한 상황이다. 최근 유엔(UN)이 세계 인구전망보고서를 통해 한국의 노인부양률 급등을 우려하고 나설 정도다. 노인부양률은 경제 활동에 참여하는 15~64세 생산가능인구 대비 65세 이상 노인 인구 비율을 뜻한다.

UN에 따르면 한국의 노인부양률은 지난해 기준 24.7%로 일본(51.2%)이나 이탈리아(37.9%), 스페인(30.7%), 미국(33.8%)보다 낮은 수준이며 중국(19.9%)과 비슷하다.

다만 고령화 속도가 다른 국가들에 비해 훨씬 빠르다. 이에 따라 2050년 기준 한국의 노인부양률은 75.2%로 일본(73%), 이탈리아(71.8%), 스페인(70.2%), 미국(51.9%), 중국(51.5%)을 앞지를 것으로 예상된다.

아울러 정 부원장은 우리나라 가계 소비와 기업 투자에 거품이 잔뜩 끼어 있다며 조만간 이 거품이 터지면 성장률이 저하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또 이를 마냥 부정적으로만 볼 게 아니라 경제주체의 경제활동 정상화로 인식할 필요가 있다며 저성장은 정상화 단계로 가는 수순이라고 부연했다.  

그는 우리나라 대외 기반이 약화하고 있는 점도 악재로 꼽았다. 앞으로도 미·중 갈등을 비롯해 중국 시장 이탈, 공급망 리스크, 글로벌 인플레이션 등 다양한 변수들이 한국 경제를 위협할 수 있다는 의미다. 
 
정 부원장은 "(우리는) 글로벌 인플레이션과 과다한 부채 등 이중고를 안고 어두운 터널에 들어와 있다"며 "이를 악물고 허리띠를 바짝 졸라매야 할 때"라고 전했다. 
한·일 관계 개선 위해 과거 굴레서 벗어나야 
지난달 한·일 정상회담을 통해 빠른 속도로 개선되고 있는 양국 관계에 대해서도 언급했다. 최근 한·일 정상 간 셔틀외교가 12년 만에 복원되고 후속 조치로 양국 재무장관 만남도 이뤄지는 등 해빙 분위기가 완연하다. 정부는 '가깝고도 먼 나라' 일본과의 경제 관계를 복원함으로써 새로운 경제 도약의 발판을 마련한다는 계획이다.

정 부원장은 한·일 양국이 향후 윈윈(win-win) 관계가 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했다. 한국 입장에서 보면 일본 관광, 부품·소재 기업의 대(對)한국 투자와 수출 확대, 우리 기업의 대일 수출 증가 등 이득이 있을 것으로 봤다. 일본도 한국 관광객이 크게 늘어 관광 산업 활성화 효과를 누릴 수 있다.  

한국경제연구원이 최근 발표한 '방한 일본인 관광객 증가의 국내 경제 파급효과'에 따르면 한·일 외교관계 복원으로 한국을 찾는 일본인 관광객이 10년 전인 2012년 수준(342만3000명)으로 늘어나면 국내 경제에 총 5조2000억원의 생산 유발 효과가 발생한다.

또 2만9000명 규모의 취업 유발 효과도 기대할 수 있다. 일본인의 한국 관광 확대가 국내 일자리 창출에 도움이 된다는 얘기다. 

정 부원장은 한·일 양국이 앞으로 더 밀착하려면 과거의 굴레에서 벗어나는 것이 무엇보다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그는 "한·일 관계를 개선하기 위해서는 결국 어느 한쪽은 바뀌어야 한다"며 "정부는 우리가 어떻게 변화해야 할지 내부적으로 고민하고 논의해 국민적 합의를 이끌어 내려는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고 조언했다. 모든 관계가 그렇듯 스스로 변하는 것이 관계를 개선하는 데 효과적이라는 이유를 들었다.

정 부원장은 "지나친 반일 교육과 국수주의적 역사관이 확산하는 경향이 있다"며 "일본을 무조건 배척하는 관성이 한국 사회에 있는 건 아닌지 돌아보고 고치려고 노력해야 한다"고 언급했다. 

윤석열 정부의 대일 외교 기조와 관련해서는 "과거의 굴레를 끊고자 하면 당연히 국민적인 저항이나 비판을 피할 수 없지만 이를 알면서도 과감하게 한·일 관계 개선을 위해 조치를 취하는 것을 긍정적으로 평가한다"고 했다. 
 

정성춘 대외경제정책연구원(KIEP) 부원장 [사진=아주경제]

日 여전히 저성장...경제 반등 판단 시기상조
최근 성장세를 보이고 있는 일본 경제에 대해선 유보적인 입장을 보였다. 

일본의 올해 1분기 국내총생산(GDP)은 3개 분기 만에 플러스 성장으로 돌아섰다. 잠정치가 전 분기 대비 0.7%, 연이율로는 2.7% 각각 증가해 5월 속보치인 전 분기 대비 0.4%, 연이율 1.6% 증가에서 크게 개선됐다. 한국은 1분기에 0.3% 성장하는 데 그쳤다.

이에 대해 정 부원장은 "일본 경제는 아직 코로나19 이전 수준으로 완전히 복귀하지 않았다"며 "지난해 호조세였던 수출, 특히 대중 수출이 악화하고 있기 때문에 일본 경제의 회복세가 계속 이어질지 아직은 예측하기 어렵다"고 전했다. 현 시점에서 일본의 실물경제가 살아나고 있다고 판단하는 것은 시기상조라는 얘기다.

실제 KIEP에 따르면 지난해 일본의 실질 GDP는 545조8000억엔(약 4959조원)으로 집계됐다. 이는 코로나19 발생 직전이던 2019년(552조5000억엔)보다 여전히 낮은 수준이다. 

물가 상승률도 명목임금 상승률을 계속 웃돌면서 2월 기준 실질임금이 11개월 연속 감소하고 있다. 일본의 무역수지는 2021년 하반기부터 적자가 시작돼 올해까지 지속되고 있는 양상이다. 경상수지는 2022년 11조5466억엔으로, 지난 2019년(19조2513억엔) 수준을 하회했다. 올해 1월 경상수지는 1조9893억엔 적자, 2월엔 약 2조엔 흑자를 기록했다. 

일본 주가지수가 최근 33년 만에 최고치를 기록한 것에 대해서는 금융적 현상이라며 앞으로 일본 증시가 더 상승하려면 경제 성장의 연속성과 통화 정책 불확실성이 해소돼야 한다고 지적했다. 지난 13일 닛케이지수는 장중 3만3000선을 넘어서면서 거품 경제 시기인 1990년 7월 이후 가장 높게 치솟았다. 
 
尹 정부 '가치 외교', 中 배제 아냐...설득 과정 필요 
정 부원장은 윤 정부의 대외 정책 근간인 '가치 외교'와 관련해 강대국 사이에서 한국은 어느 한쪽으로 지나치게 치우치는 것을 피해야 한다고 평가했다. 이어 정부는 우리 외교 기조가 중국을 배제하는 것이 아니라는 점을 설명하고 설득하는 데 주력해야 한다고 짚었다.

중국이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를 인정하는 한 중국을 배척하고 경계할 필요는 없기에 이러한 원칙에 따라 대중 관계를 설정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정 부원장은 "한국은 경제 교류, 세계화 시대의 자유 무역과 투자를 보장해줄 수 있는 세계 경제 환경을 조성하는 데 있어서 얼마든지 중국과 협력의 여지가 있다는 것을 보여줘야 한다"고 전했다.  

그러면서도 중국이 세계적인 과학기술 강국을 목표로 '쌍순환'(국내 내수시장과 국제시장 간의 유기적 결합) 전략을 통해 자립을 시도하고 있는 만큼 한국의 대중 의존도는 계속 낮아질 수밖에 없다고 봤다. 정 부원장은 대중 의존도가 낮아지는 과정에서 한국 경제에 미치는 영향을 최소화할 수 있도록 정부의 노력이 필요하다고 제언했다.  

◆정성춘 KIEP 부원장 프로필
△서울대 경제학과 △히토쓰바시대학(一橋大學) 경제학연구과 경제학 박사 △대외경제정책연구원 부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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