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만금 세계스카우트잼버리(8월 1~12일)가 열린 지난주, 중국 쓰촨(四川)에 있었다. 쓰촨성 청두(成都)는 제31회 하계유니버시아드대회(7월 28~ 8월 8일)가 한창이다. 자연스럽게 새만금 잼버리와 청두 유니버시아드대회를 비교하게 됐다. 두 나라에서 열리는 국제 행사는 여러 면에서 공통점을 지닌다. 우선 코로나 이후 3년 만에 열린 첫 국제 행사다. 개최 시기(8월)와 개최 일자(12일), 참가 연령(청소년과 대학생), 참가국(158개국, 113개국) 또한 공교롭게 겹친다. 이뿐 아니다. 양국 정상이 개막식과 개영식에 참석한 것도 닮았다. 시진핑 주석과 윤석열 대통령은 각각 자국에서 열리는 국제 규모 행사에 참석함으로써 주목도를 높였다.
한국 부안과 중국 청두에서 열리는 국제 행사의 유사성은 여기까지다. 행사 준비와 진행 과정은 판이하다. 한쪽은 엉성한 진행으로 국제적인 망신을 산 반면 다른 한쪽은 성공적인 대회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우리는 줄곧 사회주의 중국의 경직성을 조롱하며 우리 체제를 과신해왔다. 중앙집권적 통제는 창의력을 말살하고 무능력을 초래한다며 비웃었다. 그러나 현지에서 접한 사회주의 중국은 우리가 얕볼 만큼 간단치 않다. 오히려 많은 부분에서 우리가 거꾸로 배워야 하는 게 아닌가 싶을 정도였다.
중국은 청두 유니버시아드대회를 치르기 위해 중앙정부와 지방정부가 함께 행정력을 집중했다. 파란 청두 하늘은 상징적이다. 평소 청두는 대기 오염이 심각하다. 베이징에 비해 오염원은 적지만 분지라서 대기 흐름이 원활치 않다. 중국 정부는 대회를 앞두고 오염원을 줄이는 데만 500억원을 쏟아 부었다. 보조금을 지급함으로써 공장 가동을 단축하고 차량 5부제를 시행하고 있다. 이 때문에 주경기장이 위치한 청두는 물론이고 인접 도시는 가을 하늘을 연상케 했다. 또 수영과 수상스포츠 경기가 열리는 룽취안(龍泉) 주변 도로 역시 빠른 시일 내 정비했다. 획일적 통제 때문이라고 폄하할 일은 아니다. 중앙과 지방정부가 합심하고 불편을 감수하려는 시민들의 의지가 어우러진 결과다.
새만금 세계스카우트잼버리는 어떠한가. 대회 유치 이후 6년이란 시간이 있었다. 또 1000억원이 넘는 적지 않은 예산을 투입했다. 전북도와 잼버리조직위 인사들은 성공적인 대회 개최를 핑계로 그동안 99차례에 걸쳐 해외출장을 다녀왔다. 그럼에도 성적표는 참담하다. 폭염과 날씨를 탓할 게 아니다. 이미 태풍과 폭염, 폭우 대비책을 촉구하는 목소리는 허다했다. 국정감사는 물론이고 필자가 참여하는 총리실 산하 새만금위원회에서도 여러 차례 폭염 대비책을 촉구했다. 그러나 특별법을 제정하고, 장관급 공동위원장만 3명 참가했음에도 컨트롤 타워 부재로 이어졌다. 무엇보다 부실한 운영(안전, 위생 등)은 변명할 여지가 없다.
8일자 포브스지에서 미국 보이스카우트 최고경영자인 로저 모스비(Roger Mosby)는 미국 파견단 철수 결정은 폭염이나 폭우가 아닌 위생 상태였다고 강조했다. 보이스카우트연맹(BSA) 국제 커미셔너인 루 폴슨(Lou Paulson) 또한 “이 결정은 가볍게 내려진 것이 아니다. 다른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고 했다. 미국 파견단 의료 책임자 제프 마이어스 박사의 지적은 심각하다. 그는 “깨끗하지 않은 화장실과 배설물이 있는 샤워장은 끔찍하고 개탄스러웠다. 만일 미국이라면 보건 비상사태로 선포 될 것”이라고 했다. 허술한 청소년 보호와 불충분한 샤워 시설도 문제였다. 그는 청소년과 성인이 샤워 시설을 공유하는 건 BSA 청소년 보호 정책을 위반한 것이라고 했다. 전북연맹이 조기 퇴영하면서 거론한 성범죄 부실 대응이 과장만은 아닌 셈이다.
상황이 이런데도 정치권 공방은 한심하다. 국민의힘은 “문재인 정부와 민주당 전‧현직 전북지사가 후안무치한 작태를 보이고 있다”고 비난했다. 신원식 의원은 전북연맹 조기 퇴영 결정에 야당이 개입된 게 아니냐며 정치문제로 비화시켰다. 이에 대해 더불어민주당은 “현 정부 실정을 이전 정부 탓으로 돌린다”며 맞불을 놓았다. 또 국민의힘 지지층 일부에서는 총리와 행안부장관, 전북지사가 모두 전북 출신이라며 지역 색까지 거론하고 있다. 상대를 비난하기에 좋은 프레임일지 모르겠지만 무책임하다. 관건은 책임 떠넘기기가 아니다. 남은 대회를 잘 마무리하는 것이다. 책임 추궁은 이후라도 늦지 않다.
외신 보도가 아니라도 이번 대회는 위생과 식사·숙박에서 총체적 부실을 드러냈다. 대회 준비기간만 6년, 올림픽과 아시안게임을 치른 나라라고 믿기지 않는다. 대회 개최지와 개최 시기를 누가 결정했는지는 반드시 규명할 문제다. 나무 한 그루 없는 간척지에서 8월 폭염 아래 4만명이 넘는 청소년들이 야영을 한다는 건 무리한 발상이다. 치적을 쌓으려는 욕심에서 비롯된 결정은 아닌가 싶다. 전북은 1982년 8월 무주 덕유산국립공원에서 아시아·태평양 지역 잼버리를 개최한 바 있다. 산림이 우거진 덕유산을 제쳐놓고 새만금을 선택한 건 아무리 생각해도 납득하기 어렵다.
이 같은 문제를 해소하는 데 주력해야 하건만 엉뚱한 곳에 주력한 게 아닌가 싶다. 잼버리를 핑계로 인프라 구축과 ‘예산 따내기’에 몰두하고, 외유성 출장을 다녔다는 비판이 제기되는 상황이다. 99차례에 달하는 국외 출장 중 외유성 출장으로 의심되는 사례가 적지 않다는 보도는 이를 뒷받침한다. 조직위에 따르면 158개국에서 청소년 4만3000여 명이 참가했다. 이들은 자신들 나라에서 지도자 역할을 담당할 미래 인재다. 참가자들이 한국에서 좋은 추억을 쌓고 돌아간다면 훌륭한 외교자산이 될 수 있다. 비록 태풍 ‘카눈’으로 전원 조기 철수를 결정했지만 대부분 참가자들은 남은 일정을 한국에서 소화할 계획이다. 이미 영국과 미국 대원들은 수도권 일대에서 한국 체험 프로그램에 참가하고 있다.
이제라도 정부가 중심이 되어 자치단체와 함께 숙소와 대체 프로그램을 마련하는 데 최선을 다해야 한다. 윤석열 대통령이 주재한 ‘컨틴전시 플랜(긴급 대체 플랜)’ 또한 이러한 방향에서 논의되어야 한다. 날씨 때문에 어려움을 겪은 건 새만금 잼버리가 처음은 아니다. 1971년 일본 후지노미야 13회 대회 역시 태풍 올리브 영향으로 참가자 전원이 이틀 동안 대피했다. 포브스지는 “1971년과 마찬가지로 2023년 새만금 참가자들도 위기 속에서 혁신하는 방법을 배우고, 역경 속에서 유대감을 형성하길 기대한다”고 했다. 시행착오는 있었지만 어떻게 마무리하느냐에 따라 새만금 잼버리는 청두 유니버시아드대회 못지않은 자산이 될 수 있다.
임병식 필자 주요 이력
▷국회의장실 부대변인 ▷국가균형발전위원회 위원 ▷한양대 갈등연구소 전문위원 ▷서울시립대 초빙교수 ▷전북대 특임교수
©'5개국어 글로벌 경제신문' 아주경제. 무단전재·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