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어의 특성에는 역사성과 사회성이 동시에 있다. 한 시대, 한 지역에서는 변하지 않는 서로 약속된 규약이 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 언어도 변화한다. 과거 7·80년대 TV 연속극에 등장하는 인물들 중 사장님은 대부분 경상도 사투리를 썼다. 그리고 노동자, 가정부와 깡패는 주로 전라도 사투리를 썼다. 그러다가 90년대부터 전라도 사투리를 쓰는 사장님과 경상도 사투리를 쓰는 노동자, 가정부 그리고 깡패도 등장하기 시작했다. 반전이 되었다. 요즘에는 다 골고루 섞여서 나온다. 이처럼 언어는 살아 있는 생물이다.
지난 80년대와 90년대, 독일의 유명한 가수 니콜(Nicole)이 부른 ‘der alte Mann und das Meer’라는 노래가 있는데, ‘노인과 바다’라는 뜻이다. ‘노인과 바다의’라는 의미는 ‘des alten Mannes und des Meers’, ‘노인과 바다에게’라는 의미는 ‘dem alten Mann und dem alten Meer’, ‘노인과 바다를’이라는 의미는 ‘den alten Mann und das Meer’이다. 독일어에는 이렇게 복잡한 정관사와 형용사 어미변화의 규칙이 있는데, 어떻게 독일어 화자들은 자연스럽게 변화형을 잘 활용하는가 라는 의문이 들었다. 이러한 의문점은 경상도 사투리에 있는 의문사로 시작하는 의문문과 예/아니오 의문문(Yes-No Question)에 따른 의문형 어미의 활용을 생각해 내고는 풀렸다. 예를 들어, “언제 가노?”, “와 카노?”, “우짜노?”, “누가 오노?”, “어데 가노?”, “뭐라 카노?”와 같이 문장 앞에 의문사가 오면, 문장의 마지막 의문형 어미는 ‘노’가 온다. 그러나 “가나? 안 가나?” “묵나? 안 묵나?” “하나? 안 하나?” 등 선택의문문의 뒤에는 여지 없이 의문형 어미 ‘나’를 붙인다. 서울 사람들은 이러한 언어규칙을 잘 모른다. 그래서 TV 드라마에서 경상도 사투리를 흉내 내는 등장인물이 “누가 뭐라 카나?”와 같은 실수를 하는 것을 종종 본다. 그래서 필자는 경상도 화자가 규칙적으로 의문형 어미, ‘노’, ‘나’를 구별해서 사용하듯이 독일어 화자들도 규칙적으로 정관사와 형용사 어미변화, 그리고 명사의 어미변화를 사용한다는 나름의 결론을 내렸다. 그래서 사투리도 충분히 정교한 언어인 것이다.
인류학자인 에드워드 홀은 <문화를 넘어서>라는 책에서 '고맥락 문화(high context culture)'와 '저맥락 문화(low context culture)'를 소개하였다. 저맥락 문화에서는 당연 저맥락 언어가 근간을 이루고, 고맥락 문화에서는 고맥락 언어가 근간이 된다. 저맥락 언어란 의사소통에 맥락이 그다지 관여하지 않은 언어이고, 고맥락 언어는 의사소통이 맥락에 의존하는 언어이다. 영어를 비롯한 유럽의 언어들은 대체로 저맥락 언어이고 한국이나 일본과 같이 동아시아의 언어들은 고맥락 언어이다. 한국어가 고맥락 언어임을 입증해 주는 말이 ‘염화시중’, ‘염화미소’, ‘척 하면 삼천리’, ‘눈치’ 등이다. 즉 말로 하지 않더라도 맥락으로, 상황으로 알 수 있다는 말이다. “내 마음을 모르나, 꼭 말로 해야 하느냐?”라는 말이 잘 대변해 준다.
지난 4월 총선에서 조국 대표가 고향인 부산에 가서 “이제 고마 치아라, 마!”라고 외치면서 부산 사투리를 연설에 사용했다. 조국 대표의 부산 사투리에 대해 어느 앵커가 일본어냐고 물은 것을 두고 지역 비하 발언이라는 비판을 받고 사과했다고 한다. 경상도 출신이 아닌 사람들에게는 일본어처럼 들릴 수도 있다. 부산 사투리와 대구 사투리는 단어 간 강세와 고저가 조금 다를 뿐 서로 쉽게 알아듣는다. 우스갯소리인지 실화인지 들은 이야기를 하나 전한다. 서울의 지하철에서 경상도 사람들이 시끄럽게 떠들고 있어 서울 사람이 다가가서 좀 조용히 해달라고 하니, 경상도 사투리로 “이기 니끼가?”라고 답했다. 이 말이 무슨 말인지 알아듣지 못하고 자기 자리로 돌아오니 일행이 뭐라고 하더냐고 묻자, “몰라, 일본 사람들인가봐!”라고 말했다고 한다. 그런데 정말 경상도 사투리를 글로 쓰고 보니, 경상도 토박이인 필자가 봐도 일본말 같기도 하다.
또 조국 대표는 어느 인터뷰에서 표준어로 말하면 어감이 살지 않을 것 같아서 부산 사투리로 한마디 한다면서 “느그들 쫄았제?”라고 멘트를 날렸다. 이 말을 표준어로 옮기면, 딱 떠오르는 대사가 바로 1990년 SBS 드라마 모래시계에서 카리스마 일색이던 극 중의 태수가 사형장에서 떨리는 심정을 드러내면서 “나 지금 떨고 있니?”의 ‘떨고 있니’이다. 그러나 ‘쫄았다’의 어감은 ‘떨다’의 어감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의 맛과 힘을 지닌다. 이것이 바로 사투리인 것이다.
서울·경기 지역에 절반 이상의 사람들이 살고 있다. 우리나라는 인구가 줄어들고 지방이 소멸되어 간다. 수도권 쏠림 현상에 사투리 사용 비율도 줄어들고 있다. 젊은 층일수록 표준어 사용 비율이 훨씬 높다고 한다. 당연히 그럴 것이다. 지금의 MZ세대들은 태어나면서 컴퓨터, 노트북, 스마트 폰에 익숙한 디지털 네이티브(digital native)들이어서 어릴 때부터 쉽게 표준어를 접하면서 성장하였을 것이다.
국어기본법 제4조(국가와 지방자치단체의 책무)에는 ‘국가와 지방자치단체는 변화하는 언어사용환경에 능동적으로 대응하고, 국민의 국어능력의 향상과 지역어의 보전 등 국어의 발전과 보전을 위하여 노력하여야 한다’고 명시되어 있다. 각 지방자치단체와 교육기관 등에서도 사투리를 보존하기 위한 노력을 기울이고, 지역민들의 사투리에 대한 인식도 바뀌어야 할 것으로 본다. 과거 필자는 서울 소재 모 대학의 경상도 캠퍼스에서 근무한 적이 있다. 이 학교의 절대다수가 수도권 출신의 학생들이었다. 학기 말 강의 평가에 교수님이 사투리를 써서 수업 내용을 알아듣기가 힘들다는 평을 보고 충격을 받고서 며칠간 서울말을 흉내 내다가 중도에 포기했다. 지금도 지상파나 종편에 출연해서 정감 어린 각종 사투리로 거리낌 없이 설을 푸는 여러 패널들을 보면 그들의 당당함이 사뭇 부럽다.
필자 주요 이력
△부산대 번역학박사 △미국 University of Dayton School of Law 졸업 △대구가톨릭대 영어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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