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백순 칼럼] '한.미동맹'은 오직 한국 방위를 위한 것은 아니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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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백순 법무법인 율촌 고문
입력 2024-08-28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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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백순  법무법인 율촌 고문
[이백순 법무법인 율촌 고문]
 
이승만 대통령이 반공포로 석방 등 온갖 묘수를 동원하고 미국을 압박하여 얻어낸 ‘한·미 상호방위조약’이 체결된 지 70년이 더 지났다. 미국은 이 조약을 처음에는 거부하다가 이 대통령의 끈질긴 강공책에 마지못해 서명하였다. 이 조약으로 인해 한·미 양국은 피로 맺어진 동맹이 되었고 이 동맹은 역사상 가장 수명이 긴 조약 중 하나로 기록되고 있다. 이 조약은 한반도는 물론 동북아 정세가 지난 70년간 안정을 유지할 수 있게 하여 동아시아가 세계 경제의 중심으로 등장하는 데 크게 이바지하였다.
 
그런데 이 조약의 목적과 적용 범위에 대해 우리 내부에서 오해가 존재하고 있다. 많은 국민은 이 조약이 북한의 남침에 맞서 남한을 지키는 것이 그 목적이므로 적용 범위도 한반도에 국한되어야 한다고 믿고 있다. 민변과 같은 법률 전문가집단조차도 이 같은 주장을 펴고 있다. 하지만 이러한 한·미 동맹 조약에 대한 우리의 잘못된 인식은 만약 트럼프가 미국 대통령에 재선된다면 한·미 간 큰 마찰의 소지가 될 수 있다. 그래서 우리는 이 조약의 목적과 적용 범위에 대해 보다 정확한 이해할 필요가 있다.
 
이 조약은 그 이름에서부터 상호방위 조약이다. 따라서 이 조약은 미국이 일방적으로 한국을 방위해 주는 편무적 조약이 아니라 양국이 서로를 방위해 주기로 약속한 쌍무적 조약이다. 사실 모든 조약이나 계약은 쌍무적인 것이 원칙이다. 동맹이면서 한쪽이 다른 쪽을 일방적으로 지원해 주는 그런 형식의 조약은 원칙적으로 존재하지 않는다. 이 조약이 체결되었던 한국전 종전 당시 한·미 양국 간 국력 격차는 엄청났기 때문에 한국이 미국 방위를 도와줄 일이 있으리라고 아무도 상상하지 못했다. 그러나 한·미 동맹의 모델이자 2년 앞서 체결되었던 미·필리핀 동맹조약은 양국 간 엄청난 국력 차이에도 불구하고 미국 관할 태평양 도서, 즉 괌과 하와이에 대한 상호방위 의무를 명기하고 있다. 한·미 동맹 조약은 ‘태평양상 양국 행정 관할지역’이라고만 말하고 있지만 괌과 하와이의 상호방위를 상정하고 있는 것으로 보아야 한다. 그 당시 상황과 국력 차이로 이 조약이 편무적이었을 것이라는 짐작만으로 문구상 쌍무적인 조약의 적용 범위를 한반도만으로 국한할 수는 없는 일이다.
 
이 조약의 전문(Preamble)을 보면 ‘태평양 지역에서 안전, 평화’라는 표현이 3번이나 나온다. 즉 이 조약이 태평양 지역에서 평화와 안전에 기여하는 것을 목적으로 하고 있다고 보아야 한다. 제3조에서는 ‘태평양 지역에서 무력 공격은 자국의 안전을 위태롭게 한다고 인정하고 이를 위해 공동 대응할 것’을 규정하고 있다. 그러니 태평양에서 안전 확보가 이 조약의 목적임은 분명하다. 적용 범위에서도 같은 3조는 ‘타 당사국의 행정 지배하에 있는 영토와 각 당사국이 타 당사국의 행정 지배하에 합법적으로 들어갔다고 인정하는 금후의 영토에 있어서’라고 규정하고 있다. 즉 한반도가 통일되었을 때 북한을 포함한 한반도 전체와 태평양 지역에서 미국이 관할하는 영토가 이 조약의 적용 대상이 된다. 그러므로 서태평양 지역 미국의 행정 관할하에 있는 괌과 하와이는 당연히 한·미 동맹조약의 적용 대상이다. 좀 더 확장 해석을 하면 각국의 군함은 국제법상 그 소속국의 영토로 간주되므로 서태평양 지역에서 미국 군함이 무력 공격을 받았을 때도 이 방위조약은 발동될 수도 있다. 미·필리핀 조약에는 이 점까지 명시되어 있다.
 
상호방위조약의 목적과 적용 범위에 대한 정확한 이해가 이 시점에서 중요한 이유는 변화하는 태평양 정세로 인해 조약의 해석 차이가 한·미 간에 쟁점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점차 미·중 갈등이 첨예화되고 특히 남중국해와 대만해협을 둘러싼 미국과 중국 해군 간 힘겨루기가 가파르게 전개될수록 조약의 정확한 해석이 요구될 것이다. 이미 중국 해군력이 미국 해군력을 수적 측면에서 넘어서고 있고 중국 해군력은 남중국해와 대만해협 일대에 집중 배치되어 있어 지리적으로도 미국 해군에 비해 유리한 고지를 점하고 있다. 미국은 중국 해군에 대응하는 데 미국 해군 독자 역량으로는 이미 한계에 다다랐다는 점을 느끼고 있다. 그래서 미국은 이 지역에서 동맹의 협조가 필요하고 여태까지 ‘바퀴 축과 바큇살’ 형태였던 동맹구조를 ‘격자형’ 동맹구조로 변환시키려 하고 있다. 즉 미국과 동맹국 간 1대1 동맹관계에서 미국을 포함하는 격자형 구조들에 여러 동맹국이 함께 참여하기를 원하고 있다. 즉 태평양 지역 방어를 위하여 동맹국 해군력이 절실히 필요한 것이다. 그러니 미국은 이 지역 내 동맹국인 한국, 일본, 호주뿐만 아니라 NATO 동맹인 영국과 프랑스 해군까지 서태평양 방어전선에 동참하기를 바라고 있다.
 
해군력 경쟁을 넘어서 실제로 대만을 둘러싸고 미·중 간에 무력 충돌이 발생할 상황을 상정해 보자. 만약 중국이 대만을 무력으로 통일하고자 한다면 미국은 당연히 전력을 다해 대만 방어에 나설 것이다. 미국이 서태평양에서 방어전력을 동원한다면 그 발진기지는 당연히 괌과 하와이가 될 것이다. 이것을 뻔히 아는 중국군이 괌과 하와이를 가만히 두고 대만 침공을 시도하지 않을 것이다. 당연히 그들은 괌과 하와이를 중거리 미사일이나 전략 폭격기 등으로 먼저 타격하려 할 것이다. 이러면 한·미 동맹조약에 명시된 ‘태평양상 미국 관할하에 있는 영토’에 대한 무력 공격이 발생한 것이고 우리에게는 미국을 도와 참전해야 하는 동맹의무가 발동하게 된다. 이미 주한미군의 전략적 유연성을 우리가 허용했기 때문에 주한미군도 대만 방위에 투입될 수 있다. 이걸 알고 있는 중국은 아마도 유사시 평택 미군기지도 첫 타격 대상에 포함시킬 수 있다. 그러면 우리 영토에 대한 공격이 발생한 것이니 우리는 자동으로 반격에 돌입해야 하고 우리의 참전은 불가피해질 것이다.
 
정말 전쟁이 일어난다면 상황은 이런 식으로 흘러갈 것인데 한·미 동맹의 목적과 적용 범위에 대한 오해로 인해 우리는 이에 대해 대비는커녕 마음의 준비도 전혀 하지 않고 있다. 우리 군도 주적인 북한에 대한 작전계획이 있을 뿐 대만 유사시 일어날 연쇄반응에 대한 대비가 되어 있지 않다. 더 심한 것은 우리 정치권은 이런 개연성에 대해 고심을 하기는커녕 아예 눈을 감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미국 국방부는 대만 유사시 ‘한국, 일본 등 역내 동맹국들과 함께 새로운 접근법을 모색해야 한다'고 여러 전략문서에서 거듭 밝히고 있다. 미국은 한국이 동맹으로서 모종의 역할을 하기를 당연히 기대하고 있다. 특히 트럼프가 재집권하게 되면 그는 대만 문제도 상당히 아시아화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닉슨이 그랬던 것처럼 ‘아시아의 안보는 아시아인의 손에’라는 슬로건으로 남중국해 자유항행으로 인해 가장 많은 혜택을 보는 한국, 일본, 호주 등이 이 문제에 더 적극적으로 나서주길 압박할지도 모른다. 그럴 때 미국이 한반도 안전을 오로지 지켜주는 것이 동맹이라고 우리가 믿고 있다고 답한다면 트럼프는 한국이 동맹으로서 역할을 하지 않는다고 생각하고 우리에 대한 동맹의무를 방기할 수도 있다. 동맹조약은 항상 ‘연루의 위험’과 ‘방기의 위험’ 사이에서 줄타기를 한다. 연루되기 싫다고 버티면 방기되는 것이 동맹의 운명이다. 모든 일이 한반도에 집중되어 돌아간다는 착각에서 벗어나지 않으면 한반도 패싱이 일어날 수 있다. 글로벌 중추국가라면 이에 걸맞은 역할을 짊어질 각오를 해야 한다. 어려운 때가 닥쳐 우왕좌왕하기 전에 어려운 순간에 대한 대비를 미리 해나가야 한다.


이백순 필자 주요 이력 

△서울대 독문학과 △주미얀마 대사 △국회의장 외교 특임대사 △주호주 대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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