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법재판소가 3일 마은혁 헌법재판관 후보자 임명 보류 사건에 대한 권한쟁의심판 선고를 당일 연기하면서 '9인 체제' 구성 여부가 안갯속에 빠졌다. 최근 여권에서 제기한 '정치적 편향성' 의혹을 의식한 헌재가 쉽사리 결론을 내리지 못하는 가운데 2월 임시국회에서도 이를 둘러싼 정치권 법리 공방이 한층 거세질 전망이다.
헌재는 이날 오전 평의를 열고 재판관들의 논의를 거쳐 낮 12시께 마 후보자 임명 보류 사건 선고를 연기하기로 결정했다. 앞서 헌재는 최상목 대통령 권한대행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을 상대로 우원식 국회의장이 낸 권한쟁의심판과 김정환 변호사가 제기한 헌법소원 사건을 이날 오후 2시에 선고한다고 예고했으나, 당일 2시간 전에 뒤집은 것이다. 이에 따라 권한쟁의심판 변론기일은 오는 10일 오후 2시로 정해졌고, 헌법소원 사건 선고는 무기한 연기됐다.
당초 여권 인사들의 집중 공격을 받던 문형배 헌재소장 권한대행을 중심으로 헌재가 최 대행의 임명 보류 결정에 대해 '위헌' 판단을 내릴 것이란 관측이 우세했으나, 사안의 중요성을 감안해 선택을 보류한 것으로 보인다. 앞서 천재현 헌재 공보관은 이날 오전 기자단 브리핑에서 "오늘 선고가 나지 않을 가능성도 있다"면서도 구체적인 연기 사유를 밝히지 않았다. 윤석열 대통령 탄핵안 인용을 위해선 헌법재판관 6인 이상의 동의가 필요한 만큼 9인 체제 복귀의 마지막 열쇠인 마 후보자 임명건에 시간을 두려는 의도로도 해석된다.
여당인 국민의힘은 △우 의장의 독단적 심판 청구 △무리한 졸속 심리 △일부 헌법재판관의 정치적 편향성 등을 문제 삼고 '절차적 흠결'이 상당하다며 심판 기각 필요성을 강조했다. 김대식 원내수석대변인은 오후 입장문을 통해 "국회의장이 국회 의결 절차를 생략하고 독단적으로 국민의 대의기구인 국회를 참칭한 이번 권한쟁의심판은 당연히 각하시켜야 마땅하다"고 말했다. 이어 "헌재가 9건의 탄핵소추와 한덕수 대통령 권한대행 탄핵정족수 권한쟁의심판을 놔두고서 마 후보자 임명 관련 권한쟁의심판에만 유독 속도를 내는 것은 그 의도와 공정성을 의심케 한다"고 비판했다.
국민의힘 법률자문위원장인 주진우 의원은 이날 선고 연기를 두고 소수 의견을 보인 재판관을 설득하려는 헌재의 의도가 담겼다고 분석했다. 주 의원은 "변론을 재개했다는 것은 만장일치 결론을 유도하는 데 걸리는 시간을 버는 효과가 있다"며 "민주당의 편을 들어준 아주 편향적인 행위다. 헌재가 민주당이 (최 대행을) 탄핵소추하면 바로 인용하겠다고 사인을 준 것"이라고 지적했다.
반면 더불어민주당은 최 대행이 마 후보자 임명을 미룰 경우 '비상한 결단'을 내리겠다며 탄핵을 시사하기도 했다. 박찬대 원내대표는 오전 최고위원회의에서 "헌법상 의무인 헌법재판관 후보자 임명을 선택적으로 거부했고, 법률상 의무인 내란 상설특검 후보자 추천 의뢰를 하지 않은 행위만으로도 탄핵 사유"라고 압박했다.
전현희 최고위원도 "헌재 결정마저 거부한다면 민주공화국 정부 수반을 대행할 자격이 없다. 반드시 그에 따른 책임을 묻겠다"고 엄포를 놨다.
정치권은 최 대행이 추가 결단을 내릴 시점에 주목하고 있다. 다만 여당 측 반대 입장이 워낙 강경하기 때문에 최 대행이 기존 입장을 바꾸면서까지 마 후보자에 대한 임명을 강행할 가능성은 낮을 것으로 보인다. 또한 윤 대통령과 한덕수 대통령 권한대행 국무총리를 잇따라 탄핵한 민주당이 최근 민생 안정에 방점을 찍은 행보를 보이고 있어 추가 탄핵 시도는 사실상 어려울 것이란 시각이 많다.
또한 현행법상 헌재 심판 후 결정을 내려야 할 기한이 명문화되지 않은 상태라 보다 첨예한 법리 다툼이 전개될 여지도 크다. 야당은 헌법재판소법 67조 1항이 '헌법재판소의 권한쟁의심판의 결정은 모든 국가기관과 지방자치단체를 기속(羇束)한다'고 규정한 것을 근거로 위헌 판결 시 구속력이 생긴다고 보고 있다. 반면 여당은 헌재 결정에 따른 기한을 명시한 조항이 없다며 지연 전략을 검토할 수 있다는 입장이다.
한편 헌재는 최 대행이 해당 문제에 대한 헌재의 결정을 따르지 않는 것은 '위헌·위법'이라고 주장했다. 천 공보관은 "권한쟁의나 헌법소원이 인용됐는데, 이를 따르지 않으면 헌법과 법률을 위반하는 것"이라며 "헌재 결정에 강제적인 집행력은 없지만, 이를 따르지 않아도 된다는 것은 아니다"라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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