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주혜의 C] 피에르 위그 '리미널'…바짝 '경계' 세우고 존재를 탐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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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주혜 기자
입력 2025-02-25 2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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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존재는 계속된다

리미널 2025 전시전경 리움미술관 제공 사진 LESS 레스jpg
리미널. 2025, 전시전경, 리움미술관 제공, 사진 LESS 레스.


“안개 속에 뭔가 있어요!”
 
미국 영화 ‘미스트’(2008)는 기이한 안개가 몰려오면서, 그 안에 도사린 정체불명의 괴생명체에 두려움을 갖는 인간들의 모습을 그린다. 등장인물들은 짙은 안개로 인해서 괴생명체의 실체조차 파악할 수 없다. 이들은 마트를 안전지대로 삼고, 짙은 안개 속을 향해 나아가길 주저한다.


25일 찾은 리움미술관 올해 첫 전시 피에르 위그의 ‘리미널(liminal)’은 안개로 뒤덮인 새까만 어둠, 알 수 없는 무언가가 기다리는 미지의 세계로 걸어가는 듯했다. 전시장에 들어서는 순간 몰려오는 불안감은 마치 영화 '미스트' 속 인물들이 안개 속으로 발을 디딜 때의 두려움에 가깝다. 본능적으로 경계를 세웠다.

리미널의 어원은 라틴어 ‘limen(경계)’이다. 이를 통해 짐작할 수 있듯, 피에르 위그는 이번 전시를 통해 ‘생각지도 못한 무언가가 출현할 수 있는 과도기적 상태’를 보여준다. 생명체는 변화한 환경에 적응하며 진화하기 마련. 관람객들은 전시장을 서서히 걸으며 점차 그 어둠에 익숙해진다.

하지만 전시를 다 본 뒤에는 픽사 애니메이션 '월-E'가 떠오른다고 할까. 월-E가 텅 빈 지구에 홀로 남아 수백 년간 ‘폐기물 수거 처리용 로봇’이라는 본연의 역할에 충실했듯, 인간이든 투구게·원숭이·로봇 등 비인간이든 모든 존재는 변화하는 환경과 상호반응하며 복잡한 세상을 형성한다. 세상은 인류 이전부터 있었고, 또 인류 이후에도 계속될 것이란 만고불변의 진리다. 
 
여기에 인간이 있(었)다
리미널 2024
리미널, 2024


전시장에서 가장 처음 만나는 작품, ‘에스텔라리움(Estelarium)’은 새로운 세계의 탄생을 알린다. 약 45억년 전 지구가 형성될 때 가장 먼저 생긴 암석, 화산암(현무암)으로 만들어진 이 작품에는 출산 직전 임산부의 배가 남긴 흔적이 있다.
 
피에르 위그가 만든 이 새로운 세계에서는 비인간 존재들이 인간(관람객)을 포함한 외부 환경과 상호작용한다.

작품 ‘리미널(Liminal)’에는 얼굴과 머리가 뻥 뚫린 알몸의 여성이 무한한 표면을 헤맨다. 인간인 듯 아닌 이 존재는 외부에서 오는 자극에 영향을 받아 매번 다른 장면을 보여준다고 한다. 리움은 ‘인간이 아닌 이 존재는 공간이자 경계적 환경(liminal milieu)으로 제시된다’라고 설명했다. 이 ‘경계적 환경’은 또 다른 공간인 ‘작품 밖 세계’ 즉 전시장 속 인간의 흔적을 감각에 아로새기는 걸까.
 
휴먼마스크 2014
휴먼마스크 2014

 
‘휴먼 마스크’ 속 원숭이 역시 경계적 존재다. 후쿠시마 원전 사태로 인간이 모두 사라진 공간, 버려진 식당에서 사는 원숭이는 냉장고를 열거나 닫고, 테이블에 물수건을 갖다 놓는 등 인간에게 배운 동작을 끝없이 반복한다. 소녀 마스크를 쓴 이 원숭이는 긴 머리카락을 꼬거나 매만지기도 하는데, 이럴 때는 영락없는 인간의 모습이다. 오지 않을 손님을 기다리는 듯한 원숭이는 이 구역에 인간이란 존재가 있었다는 것을 보여주는 유일한 매개자다.
 
카마타 2024
카마타, 2024.

 
칠레 고원에서 기계가 인간의 유해를 정리하는 장례의식을 담은 ‘카마타’(Camata)를 통해서도 관람객과 비인간은 상호작용한다. 이 작품 역시 외부 환경과 교류하며 실시간으로 영상을 편집하고 송출한다. 천장에 달린 황금색 센서는 온도, 습도, 소음, 열기 등을 리얼타임으로 수집하고, 또 리얼타임으로 송출 이미지를 바꾼다고 한다. 그러나 이러한 생명이 사라지고 남은 뼈와의 상호작용은 ‘경계’의 끝을 지나 인류가 없는 완전히 새로운 세계로의 진입같았다. 
 
존재는 계속된다
캄브리아기 대폭발 16 2018
캄브리아기 대폭발 16, 2018


전시장에서는 세 개의 수족관을 볼 수 있다. 전시장에 놓인 세 수족관 ‘주드람 4(Zoodram 4)’(2011), ‘주기적 딜레마(Circadien Dilema (El Dia del Ojo))’(2017), ‘캄브리아기 대폭발 16(Cambrian Explosion 16)’(2018)은 불확실한 세계다. 이 수족관들은 자연적 생태계를 그대로 재현한 것도, 완벽한 세트장도 아니다. 조건은 정해져 있지만, 그 안에서 어떤 일이 일어날지는 알 수 없는 세계라고 한다. 그럼에도 생명체들은 이 짙은 안개로 뒤덮인 듯한 세계에서 제 나름대로 살아간다.
 
특히 5억4000만년 전 캄브리아기 대폭발 당시 출현한 화살게, 투구게, 말미잘 등이 살고 있는 ‘캄브리아기 대폭발 16’은 인류 이전, 혹은 이후에도 존재는 계속된다는 사실을 보여주는 듯하다.
 
피에르 위그가 아시아에서 개인전을 연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그는 이번 전시는 ‘질문’이라고 말했다. “내 작업은 인간 존재론에 대한 보편적이고 기본적인 질문이고 그 원형에 대한 탐구다. 나는 전시가 이것에 관한 질문을 던지는 것이라 생각한다.”

전시는 7월 6일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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