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유재혁 칼럼니스트]
이따금 만나 가볍게 세상 돌아가는 이야기를 나누는 친구가 있다. 전문직 종사자로서 여전히 활발하게 일을 하고 있는 친구다. 지난 2월말에 만났을 때다.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던 중 친구가 불쑥 부정선거를 거론하더니 12ㆍ3 계엄사태 때 선관위에서 체포된 중국인들의 신병을 미군이 확보했고 조만간 트럼프가 이를 공식적으로 발표할 거라고 한다. 내가 고개를 갸우뚱하며 "리얼리? 그거 이미 사실 무근이라고 밝혀지지 않았니?" 했더니 곧바로 "너는 유튜브도 안 보냐?"는 면박이 날아든다. 평소와 사뭇 다른 친구의 경직된 모습에서 유튜브의 막강한 영향력이 새삼 피부로 전해졌다.
난세가 아니랄까봐 진위가 불분명한 이야기들이 횡행한다. 그 중심에 유튜브가 있다. 유튜브는 레거시 미디어들이 미처 다루지 못했거나 다루지 않는 사회적 핫이슈들을 신속하게 전달한다. 사람들이 궁금하게 여기는 온갖 지식과 정보를 알기 쉽게 잘 정리해서 입안에 떠넣어 준다. 최근 '대치맘'을 코믹하게 풍자하여 '강남 엄마 교복' 몽클레어 패딩 유행을 종식시킨 개그우먼 이수지의 무기도 유튜브였다. 한국사 일타강사 전한길이 탄핵정국에서 벼락스타로 등극한 것도 유튜브를 통해 쌓은 지명도가 있기에 가능했다.
최근 유튜버가 실어나르는 것들 중 사회적 파급력이 가장 큰 것을 들라면 단연 부정선거 관련 컨텐츠다. 부정선거를 확신하는 사람들이 부쩍 는 데에는 유튜브의 역할이 컸다. 급기야 부정선거에 관한 언급 자체를 꺼리던 레거시 미디어들도 이 문제를 다루기 시작했다. 온라인 매체에 더이상 밀릴 수 없다는 위기감에 더하여 부정선거 음모론이 갈수록 국가 분열의 동인으로 작동하는 것을 더이상 수수방관만 하고 있을 수는 없다는 사명감도 작용했을 것이다. 물론 유튜브와 달리 기사의 방점은 여전히 "부정선거 불가능하다"에 찍혀 있지만 사람들의 가려운 곳을 시원하게 긁어주지는 못한다.
언필칭 '민주주의의 꽃'이라는 선거만 치르면 부정선거 음모론이 터져나온다. 잠시 시간이 지나면 제풀에 사그라들던 전과 달리 2020년 21대 총선 때부터 제기된 부정선거 음모론은 22대 총선을 거쳐 탄핵정국에서 가일층 불타오르고 있다. 21대 총선 이후 일부 유튜버들이 주장하던 부정선거 음모론이 윤석열 대통령에 의해 확대재생산되었기 때문이다. 윤 대통령이 계엄사태를 일으킨 이유 중 하나가 부정선거 의혹이었고 계엄군 일부가 선관위에 간 것도 그 때문이라고 진술한 이후 부정선거 논란은 우리 사회의 가장 뜨거운 감자가 되었다.
사태가 이렇게까지 된 데에는 선거관리위원회의 책임이 가장 크다. 그동안 선관위는 부정선거 의혹을 사실상 수수방관했다. 소극적 부인으로 일관했을 뿐 시연회나 공청회ㆍ설명회 등을 통한 적극적, 실증적 해명을 외면했다. 소쿠리 투표나 편파적 선거 관리 등 공정성 논란은 오히려 의혹을 확산시켰다. 그런 와중에 조직 전체가 한통속이 되어 벌인 일탈과 부패가 만천하에 드러났다. 헌법기관임을 내세워 '그들만의 세상'을 구축한 선관위는 서류를 조작하고 규정을 바꿔 가족을 채용했다. '선관위는 가족회사'라는 망발은 국민들의 분노에 불을 질렀다. 바닥으로 추락한 선관위에 대한 불신이 선거 과정에 대한 불신으로 이어지는 것은 지극히 자연스럽다. 국민의 눈에 선관위는 대수술이 필요한 중증 환자로 비칠 뿐이다.
부정선거 음모론은 사실일까 아닐까? 문제는 사실 여부와 상관없이 음모론을 사실이라고 믿거나 의구심을 갖고 있는 국민들이 너무 많다는 것이다. 팩트보다 힘이 센 게 인식이라고 하지 않던가. 부정선거 논란은 12ㆍ3 비상계엄의 정당성 여부와 무관하지 않고 헌재의 탄핵 심사에도 지대한 영향을 미치는 사안이다. 아니라고 부인한다고 의혹이 해소될 단계도 한참 지났다. 부정선거 논란은 종식되어야 하고 그러기 위해서는 음모론 진위 규명이 필수적이다. 모럴 해저드의 끝판왕 선관위는 이제 콩으로 메주를 쓴다고 한들 믿을 국민이 없고, 과연 누가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까.
세상을 혼란스럽게 하는 건 비단 부정선거 음모론뿐만이 아니다. 어제는 우클릭하고 오늘은 좌클릭하는 이재명 대표의 진심은 어느 쪽인가? 대통령을 탄핵으로 이끈 핵심 증인 곽종근 전 특전사령관의 진술과 홍장원 전 국정원 차장의 메모가 민주당의 회유에 의해 오염되었다는 주장은 사실인가 거짓인가? 정치브로커 명태균이 토해내는 말들은 어디까지가 참이고 어디까지가 거짓인가? 도대체 무엇이 진짜뉴스이고 무엇이 가짜뉴스인가?
물고기 눈알과 진주는 외관상 구별하기 쉽지 않다. 전한(前漢) 사람 한영(韓嬰)이 지은 한시외전(韓詩外傳)에 물고기 눈알을 진주로 알고 있다가 낭패를 본 사람의 이야기가 나온다. 옛날에 만이(滿意)이라는 사람이 남쪽에 일을 보러 갔다가 지름이 한 치나 되는 큰 진주를 샀다. 그의 이웃에 사는 수량(壽量)이라는 사람에게도 마침 조상 대대로 전해오는 큰 진주가 있었다. 어느날 공교롭게도 두 사람은 동시에 같은 병을 앓게 되었다. 의원은 진주를 갈아 그 가루를 약에 넣어 먹어야만 낫을 수 있다고 처방하였다. 이에 만이는 진주에 손상이 가는 게 싫어 약만 먹었고 반면에 수량은 처방대로 진주를 갈아 약에 타 먹었는데도 차도가 없었다. 비로소 수량은 자신의 진주가 사실은 물고기 눈알이었음을 알게 되었다.
이 이야기에서 유래한 성어 '어목혼주(魚目混珠)'는 '물고기 눈알과 진주를 섞는다'는 뜻으로, 가짜를 진짜처럼 속이거나 거짓으로 진실을 은폐함을 비유한다. 어목혼주는 우리에게 진짜와 가짜를 분별하고 속임수에 넘어가지 않도록 경계하라는 교훈을 준다.
물고기 눈알이 진주 행세를 하듯 가짜뉴스가 진짜뉴스의 외피를 입고 돌아다니면 세상이 혼란해진다. 어느 시대, 어느 사회나 가짜뉴스는 있기 마련이다. 그러나 작금의 한국 사회는 가짜뉴스가 국민을 분열시키고 나라를 뒤흔들 정도가 되었다. 병아리 감별사는 병아리가 알에서 깨어난 후 30시간 이내에 암수를 감별한다. 감별이 불가능하면 양계농장은 버티기 힘들다. 뉴스도 병아리 감별하듯 그렇게 다뤄야 하는 시대가 된 것 같다.
유재혁 필자 주요 이력
△연세대 사회학과 졸업 △제일기획 근무(1985~2008) △'한국산문' 등단 (2019)
난세가 아니랄까봐 진위가 불분명한 이야기들이 횡행한다. 그 중심에 유튜브가 있다. 유튜브는 레거시 미디어들이 미처 다루지 못했거나 다루지 않는 사회적 핫이슈들을 신속하게 전달한다. 사람들이 궁금하게 여기는 온갖 지식과 정보를 알기 쉽게 잘 정리해서 입안에 떠넣어 준다. 최근 '대치맘'을 코믹하게 풍자하여 '강남 엄마 교복' 몽클레어 패딩 유행을 종식시킨 개그우먼 이수지의 무기도 유튜브였다. 한국사 일타강사 전한길이 탄핵정국에서 벼락스타로 등극한 것도 유튜브를 통해 쌓은 지명도가 있기에 가능했다.
최근 유튜버가 실어나르는 것들 중 사회적 파급력이 가장 큰 것을 들라면 단연 부정선거 관련 컨텐츠다. 부정선거를 확신하는 사람들이 부쩍 는 데에는 유튜브의 역할이 컸다. 급기야 부정선거에 관한 언급 자체를 꺼리던 레거시 미디어들도 이 문제를 다루기 시작했다. 온라인 매체에 더이상 밀릴 수 없다는 위기감에 더하여 부정선거 음모론이 갈수록 국가 분열의 동인으로 작동하는 것을 더이상 수수방관만 하고 있을 수는 없다는 사명감도 작용했을 것이다. 물론 유튜브와 달리 기사의 방점은 여전히 "부정선거 불가능하다"에 찍혀 있지만 사람들의 가려운 곳을 시원하게 긁어주지는 못한다.
언필칭 '민주주의의 꽃'이라는 선거만 치르면 부정선거 음모론이 터져나온다. 잠시 시간이 지나면 제풀에 사그라들던 전과 달리 2020년 21대 총선 때부터 제기된 부정선거 음모론은 22대 총선을 거쳐 탄핵정국에서 가일층 불타오르고 있다. 21대 총선 이후 일부 유튜버들이 주장하던 부정선거 음모론이 윤석열 대통령에 의해 확대재생산되었기 때문이다. 윤 대통령이 계엄사태를 일으킨 이유 중 하나가 부정선거 의혹이었고 계엄군 일부가 선관위에 간 것도 그 때문이라고 진술한 이후 부정선거 논란은 우리 사회의 가장 뜨거운 감자가 되었다.
부정선거 음모론은 사실일까 아닐까? 문제는 사실 여부와 상관없이 음모론을 사실이라고 믿거나 의구심을 갖고 있는 국민들이 너무 많다는 것이다. 팩트보다 힘이 센 게 인식이라고 하지 않던가. 부정선거 논란은 12ㆍ3 비상계엄의 정당성 여부와 무관하지 않고 헌재의 탄핵 심사에도 지대한 영향을 미치는 사안이다. 아니라고 부인한다고 의혹이 해소될 단계도 한참 지났다. 부정선거 논란은 종식되어야 하고 그러기 위해서는 음모론 진위 규명이 필수적이다. 모럴 해저드의 끝판왕 선관위는 이제 콩으로 메주를 쓴다고 한들 믿을 국민이 없고, 과연 누가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까.
세상을 혼란스럽게 하는 건 비단 부정선거 음모론뿐만이 아니다. 어제는 우클릭하고 오늘은 좌클릭하는 이재명 대표의 진심은 어느 쪽인가? 대통령을 탄핵으로 이끈 핵심 증인 곽종근 전 특전사령관의 진술과 홍장원 전 국정원 차장의 메모가 민주당의 회유에 의해 오염되었다는 주장은 사실인가 거짓인가? 정치브로커 명태균이 토해내는 말들은 어디까지가 참이고 어디까지가 거짓인가? 도대체 무엇이 진짜뉴스이고 무엇이 가짜뉴스인가?
물고기 눈알과 진주는 외관상 구별하기 쉽지 않다. 전한(前漢) 사람 한영(韓嬰)이 지은 한시외전(韓詩外傳)에 물고기 눈알을 진주로 알고 있다가 낭패를 본 사람의 이야기가 나온다. 옛날에 만이(滿意)이라는 사람이 남쪽에 일을 보러 갔다가 지름이 한 치나 되는 큰 진주를 샀다. 그의 이웃에 사는 수량(壽量)이라는 사람에게도 마침 조상 대대로 전해오는 큰 진주가 있었다. 어느날 공교롭게도 두 사람은 동시에 같은 병을 앓게 되었다. 의원은 진주를 갈아 그 가루를 약에 넣어 먹어야만 낫을 수 있다고 처방하였다. 이에 만이는 진주에 손상이 가는 게 싫어 약만 먹었고 반면에 수량은 처방대로 진주를 갈아 약에 타 먹었는데도 차도가 없었다. 비로소 수량은 자신의 진주가 사실은 물고기 눈알이었음을 알게 되었다.
이 이야기에서 유래한 성어 '어목혼주(魚目混珠)'는 '물고기 눈알과 진주를 섞는다'는 뜻으로, 가짜를 진짜처럼 속이거나 거짓으로 진실을 은폐함을 비유한다. 어목혼주는 우리에게 진짜와 가짜를 분별하고 속임수에 넘어가지 않도록 경계하라는 교훈을 준다.
물고기 눈알이 진주 행세를 하듯 가짜뉴스가 진짜뉴스의 외피를 입고 돌아다니면 세상이 혼란해진다. 어느 시대, 어느 사회나 가짜뉴스는 있기 마련이다. 그러나 작금의 한국 사회는 가짜뉴스가 국민을 분열시키고 나라를 뒤흔들 정도가 되었다. 병아리 감별사는 병아리가 알에서 깨어난 후 30시간 이내에 암수를 감별한다. 감별이 불가능하면 양계농장은 버티기 힘들다. 뉴스도 병아리 감별하듯 그렇게 다뤄야 하는 시대가 된 것 같다.
유재혁 필자 주요 이력
△연세대 사회학과 졸업 △제일기획 근무(1985~2008) △'한국산문' 등단 (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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