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하지만 일각에서는 경기가 안 좋고 사회가 어지러울수록 사람들이 점점 더 매운맛을 찾는다는 이야기도 나온다.
지난 7일 서울대 보건대학원이 내놓은 '정신건강 증진과 위기 대비를 위한 일반인 조사' 결과에 따르면 우리 국민의 절반 이상은 '울분 지속으로 어려움을 겪거나 고통받는 장기적 울분 상태'인 것으로 나타났다.
그렇다면 매운 라면을 먹으면 울화가 가라앉을까?
◇ "라면 순한맛도 매워져"

2012년 삼양식품이 '불닭볶음면'을 출시하면서 라면업계의 매운맛 경쟁이 시작됐으며 매운맛에 진심인 소비자들은 라면 제품의 스코빌 지수(SHU) 순위표를 공유하며 점점 더 매운맛을 찾고 있다. 스코빌 지수는 캡사이신(고추 속 식물의 유효성분) 농도를 계량화해 맵기 정도를 나타내는 수치다.
팔도 틈새라면의 스코빌 지수는 9413SHU, 농심 신라면의 스코빌 지수는 3400SHU, 삼양 불닭볶음면은 4404SHU다.
라면이 과거에 비해 매워졌다는 글도 이어지고 있다.
A씨는 한 맘카페를 통해 "아이가 예전에는 진라면 순한맛도 잘 먹었는데, 이제는 매워한다. 예전에는 라면이 매우면 상품에 표시가 났는데 이제는 그런 게 잘 없어서 모르겠다"고 말했다.
한 누리꾼 B씨도 "신라면 정도면 먹을 수 있는 정도였는데, 요즘은 신라면조차도 매워서 못 먹겠다"고 답했다.
스트레스 해소를 위해 매운 음식을 찾아다니며 '맵부심'(맵기+자부심)을 과시하는 이들이 많아 업계에서는 더 매운 라면을 출시하고 있다.
지난 7일 오뚜기는 열라면보다 더 매운 신제품 '라면의 맵쏘디'를 출시한다고 밝혔다.
오뚜기 관계자는 "맵쏘디는 '맵다'와 서사시를 뜻하는 '랩소디'(rhapsody)의 합성어로, 신제품에 매운 라면의 새로운 이야기를 담았다"고 설명했다.
이어 "라면의 맵쏘디는 스코빌 지수가 6000으로, 자사 제품인 열라면(5013)이나 삼양식품의 불닭볶음면(4404)보다 맵다"고 덧붙였다.
또 지난달 4일 열린 2025 대한민국라면박람회에서 삼양식품은 '맵탱 쿨스파이시 비빔면'을 선보였다.
삼양식품 관계자는 연합뉴스를 통해 "최근 몇 년간 매운맛이 트렌드가 되면서 이제는 소수가 즐기는 특별한 맛이 아닌 누구나 즐기고 도전하는 맛으로 자리 잡았다"고 말했다.

SNS에서는 라면이 매워지면서 '매운맛'을 표방했던 신라면의 위상이 '순한맛으로 떨어지고 있다.
직장인 김모씨는 SNS를 통해 "요즘은 식당 가면 순한맛이 신라면 정도의 맵기라고 한다"며 "식당에서도 매운 음식을 잘 먹는 사람이 기준이 되는 경우가 많고 사람들이 점점 매운맛에 둔감해졌는지 입이 얼얼할 정도로 맵지만 그래도 참고 먹는다"고 밝혔다.
20대 후반 이모씨는 "맵찔이(매운 음식 못 먹는 사람)은 라면도 떡볶이도 먹기가 너무 힘들다"며 "순한맛보다 더 순한맛이 나와야 한다"며 "순한맛도 매우니 너무 괴롭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사회가 어지럽고 스트레스 지수가 높을수록 매운 라면을 찾는 사람이 늘어난다는 해석도 나오고 있다.
워킹맘이라고 자신을 소개한 박모씨는 "직장에서 시달리다 집에 와서 아이랑 같이 있다 보면 더 자극적이고 매운 맛의 음식을 찾게 된다"고 말했다.
이어 "너무 매워서 '그만 먹을까'라고 생각할 정도로 힘든데, 다 먹고 나면 스트레스가 풀린다. 매운 음식을 잘 먹고 끌린다기보다는 심리적인 해방감으로 먹고 있는 것 같다"고 덧붙였다.
라면업계 관계자들도 경기가 좋지 않을수록 매운 음식은 더 잘 팔린다는 속설이 있다고 입을 모았다.
곽금주 서울대 심리학과 교수는 연합뉴스를 통해 "한여름에 무서운 영화를 보며 더위를 잊듯이 매운 음식을 먹고 온 신경을 집중시켜 스트레스와 고통을 잠깐 잊게 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사회가 불안정하고 경제적으로 힘들면 집단 불안감이 늘어나는데 매운 음식은 여러 회피 도구 중 하나"라면서 "살아가면서 성취 욕구를 느낄 게 없는 현실에서 매운 음식 경쟁은 성취 욕구를 자극한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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