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상철 칼럼] 경제는 진영 논리가 통할 수 없다

  • 저성장 늪에 빠진 한국 경제

김상철 글로벌비지니스연구센터 원장
[김상철 글로벌비지니스연구센터 원장]
새로운 정부가 들어서면서 국익 중심 실용주의 노선을 자주 강조한다. 틀린 말은 아니라고 하더라도 과연 현 집권 세력이 이를 실현해낼 수 있을 것인가에 대해 의구심이 많은 곳도 사실이다. 시시각각으로 달라지고 있는 현실 세계를 보면 손해 보지 않고 이익을 창출해내기가 점점 어려운 구조가 되고 있다. 준비되지 않은 섣부른 잣대로 덤벙대다가는 낭패를 보기 십상이다. 무늬만 변형된 약육강식의 논리가 지배한다. 한동안 글로벌화를 통해 유지되던 평온이 곳곳에서 스트롱맨들이 등장하면서 반목과 균열을 거듭하는 중이다. 줄타기만 잘해도 경제적 이익 추구가 가능하던 적도 있었지만, 이제는 경제가 안보의 프레임에 갇히면서 우리같이 외부 의존도가 높은 국가에 치명적 약점으로 작용하고 있기도 하다.
 
특히 우리처럼 강대국도 아니면서 약소국도 아닌 어정쩡한 위치에 있으면 강자들의 표적이 되어 당혹스러울 때가 잦아진다. 절대강자인 미국과 중국의 대립각은 갈수록 더 첨예해진다. 미국은 빗장을 걸어 잠그고 글로벌 미국 중심의 공급망 재편에 박차를 가한다. 지난 바이든 정권과 현재 트럼프 정권의 노선은 확연히 다르다. 전자가 동맹과의 협력을 통한 중국 압박에 초점을 맞추었던 것과는 상반되게 후자는 동맹도 필요 없고 오로지 미국 중심의 세계 질서 재편에 혈안이 되어 있다. 미·중 갈등 국면에서 반사이익을 노리거나 우회 전술을 구사하는 국가들의 이익을 원천 차단하겠다는 의도이다. 중국은 이 틈새를 노리고 미국 동맹국에 협력의 손을 뻗치고 있지만 그 의도가 잘 먹혀들지 않고 있다.
 
한편으론 우리에게 익숙해진 세계화도 더는 유효하지 않다. 한국 기업은 상대적으로 인건비가 낮은 국가를 골라 이리저리 옮겨 다녔다. 한때 동남아에 둥지를 틀기도 하였지만, 중국과 수교 후에는 우르르 몰려갔다. 이제 중국 내에서 견디기가 어려워지면서 다시 동남아나 인도로 기수를 돌리고 있다. 이에 더해 미국의 거센 압력을 견디지 못하고 대기업을 중심으로 시장이 큰 미국으로 대규모 생산 거점을 구축하는 중이다. 미국은 멕시코나 동남아 국가 생산 제품에 대해서도 고관세를 부과하면서 한국·중국·일본 기업의 우회 수출 통로까지 틀어막고 있다. 이마저도 유효하지 않은 환경이 되고 있다. 인건비보다 수요 즉 시장이 있는 데 거점을 만들어야 하는 새로운 형태의 세계화가 자리를 잡아간다.
 
이러한 추세에 맞추어 영리한 나라들은 기업이나 자금, 그리고 사람을 유치하기 위해 안간힘을 쓴다. 그것이 국익의 원천임을 충분히 자각한다. 자국의 가용 자원이 되도록 밖으로 나가지 못하도록 문단속을 철저하게 한다. 이들이 자국으로 들어오게 하려면 다른 나라보다 경쟁적인 생태계 조성이 필연적이다. 끌어 몰리게 하기 위해서는 당연히 채찍보다 당근 개발에 적극적이다. 반면 한국은 수시 정권 교체를 통해 국민의 민주화 욕구는 채웠을망정 정책의 일관성이나 균형이 무너지고 손바닥 뒤집듯 수시로 바뀐다. 이로 인해 기업과 자금이 해외로 떠나고 최근에는 사람마저 보따리를 싼다. 설 자리를 잃은 두뇌 유출은 실로 치명적이다. 인구 감소보다 해외 유출이 더 빠르다. 희망 없는 나라의 전형적 현상이다.
 
향후 5년 경제 전망 여전히 암울, 또 소 잃고 외양간 고치려나
 
냉엄한 세계 질서 변화 속에서 이렇게 안일하게 살면 우리에게 돌아오는 결과는 바닥으로의 추락뿐이다. 특히 내부의 통합은 고사하고 끝없이 갈라지는 것은 적전 분열이나 다름 아니다. 정부가 마치 선심이나 베풀 듯이 곳간을 풀어 돈을 나눠주는 것은 소비 진작 효과가 그리 크지 않음을 국민 대다수가 수긍한다. 사행심만 키우고 세대 간의 갈등 유발 소지도 크다. 또한 상법 개정이나 노란봉투법 입법화 등 기업의 사기를 떨어뜨리는 규제는 계속 강화되고 있는 반면에 기(氣)를 살려줄 조치는 미동도 하지 않는다. 시중에 자금이 돌아야 하는데 돈을 풀어야 하는데 기업이나 부자는 발목이 잡혀 있고, 두뇌는 서야 할 위치를 찾지 못해 나라 밖으로 나돈다. 이래 가지고서는 절대 국익이 창출되지 않는다.
 
현 정부의 향후 5년 경제 전망도 밝지 않다. 이 시점에 기업 집단인 대한상의는 앞으로 5년 경제 성장 추이가 L자형 저성장이 될 것이라고 발표해 시선을 끈다. 최대 걸림돌은 기업이 투자하지 않는 점이다. 시장 환경이 불투명하고 온갖 채찍뿐인데 투자가 생겨날 리 만무하다. 한편으론 기업의 불안감이 가중한다. 트럼프발(發) 보호무역 발동으로 국가 이기주의가 기승을 부리고, 설상가상으로 중국의 거센 추격은 한국을 최대의 희생양으로 내몬다. 한국 경제의 대외 전략을 전면 수정하지 않으면 국익이 더는 생겨나지 않는 구조로 빠르게 바뀌고 있다. 이익이 있는 곳과 없는 곳에 대한 치밀한 재분석을 통해 시장의 재편과 더불어 주력 제조업의 보완과 전면 조정이 시급한 판이다.
 
이를 위해서는 현재 우리가 가진 가용 자원과 역량 결집이 중요하다. 정치엔 진영이 있을 수 있지만 먹고사는 문제와 직결된 경제에는 편 가르기를 해선 안 된다. 이대로 가다가는 이웃 국가들에게도 덜미를 잡혀 부끄러운 낙제생으로 전락할 수도 있는 위기가 닥쳐도 새삼스럽지 않다. 중국은 기업과 국가가 원팀이 되어 일사불란하게 움직인다. 일본은 재기의 칼끝을 세운다. 대만은 정치 색깔과 무관하게 경제는 일관되게 국익 중심적이다. 미국의 트럼프 정권은 남은 임기 내내 변죽을 울리면서 한국과 같은 나라를 계속 올렸다 내렸다 할 것이다. 유럽은 공존과 개별 국익 사수를 위해 통합과 분열을 거듭할 것이다. 정권 초기 지지율에 취해 실용과 국익이라는 립서비스만 남발하고 실질적 변화를 끌어내지 못하면 하향 대세의 전환은 거의 불가능하다. 또 소 잃고 외양간 고치는 과거를 답습할 것인가.



김상철 필자 주요 이력

△연세대 경제대학원 국제경제학 석사 △Business School Netherlands 경영학 박사 △KOTRA(1983~2014년) 베이징·도쿄·LA 무역관장 △동서울대 중국비즈니스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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