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뷰] 쌀값 논란, '비축'보다 '순환'에 무게 둬야

송미령 농림축산식품부 장관이 지난 3월 싱가포르에서 퓨전 외식업체를 방문 전통주를 소개하며 기념 촬영하고 있다사진농림축산식품부
송미령 농림축산식품부 장관이 지난 3월 싱가포르에서 퓨전 외식업체를 방문, 전통주를 소개하며 기념 촬영하고 있다.[사진=농림축산식품부]

매년 가을이면 되풀이되는 쌀값 논란은 올해도 ‘현재진행형’이다. 풍년이 들어도 ‘가격 폭락’을 걱정하고, 흉년이 들면 ‘물가 상승’을 우려하는 악순환이 계속된다. 정부는 과잉 생산된 쌀을 시장격리를 이유로 사들여 보관하며 해마다 수천억원의 예산을 투입하고 있다.

문제는 이런 대책이 일시적인 수급 안정에는 도움이 되지만, 구조적 해법은 아니라는 점이다. 쌀을 버리거나 묵혀두는 정책에서 벗어나, ‘쌀을 쓰게 하는 산업’을 키우는 발상의 전환이 필요하다.

국민 1인당 연간 쌀 소비량은 1970년대 130㎏ 수준에서 현재 55㎏ 안팎으로 줄었다. 밥상에서 쌀 소비가 줄어드는 사이, 가공식품과 수입 곡물이 그 자리를 대체했다. 그러나 쌀은 여전히 우리 농업의 핵심 품목이자 농촌경제의 버팀목이다. 이를 안정적으로 소비할 새로운 통로를 마련하는 것이 중요하다.

전통주 산업 육성은 그 해법 중 하나로 꼽힌다. 전통주는 쌀 소비를 늘릴 수 있는 가장 ‘한국적인 산업’이다. 막걸리·청주·약주 등 쌀을 주원료로 한 술은 제조 과정에서 부가가치를 창출하고, 지역 농산물과 관광 산업까지 아우른다. 특히 최근 젊은 세대를 중심으로 수제주(手製酒)와 로컬 브루어리 문화가 확산하면서, 전통주가 단순한 ‘전통’의 영역을 넘어 ‘문화 콘텐츠’로 진화하고 있다.

일본은 2000년대 들어 과잉 쌀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사케 산업’을 국가 전략 산업으로 육성했다. 정부가 ‘사케는 문화상품’이라는 인식 아래 규제를 완화하고 수출을 적극 장려한 결과, 일본 사케 수출액은 20년 만에 10배 이상 늘었다. 우리 역시 쌀을 단순한 식량이 아닌 고부가가치 문화소재로 활용한다면, 농업과 산업이 함께 성장할 수 있다.

정부가 쌀값 안정을 위해 시장격리와 정부 비축을 반복하고 있지만, 이는 근본적인 수급 조절이 아니다. 생산량 조절보다 소비 기반 확대가 필요하다.

전통주 산업은 그 출발점이 될 수 있다. 주무부처인 농림축산식품부가 추진 중인 ‘지역 명품 전통주 육성 사업’과 ‘전통주 수출 허브 구축’ 같은 정책은 쌀 수요 확대와 농가 소득 안정이라는 두 목표를 동시에 달성할 수 있는 기회다.

최근 한류 확산이 더해지며 ‘K-술’의 잠재력도 커지고 있다. 세계 주류 시장은 2023년 기준 약 2조 달러 규모이며, 그중 아시아 시장이 절반을 차지한다. 일본의 사케, 중국의 바이주(白酒)가 이미 세계적인 브랜드로 자리 잡은 반면, 한국 전통주는 아직 해외에서 ‘지역 특산품’ 수준에 머물러 있다.

그러나 전통주의 다양성과 디자인, 스토리텔링이 결합한다면 글로벌 시장 진출 가능성은 충분하다. 한류 콘텐츠와 연계해 ‘K-푸드·K-컬처’의 한 축으로 발전시킬 수 있다는 점에서, 전통주는 농산물 소비를 넘어 문화 수출의 새로운 동력이 될 잠재력이 있다.

지금의 쌀값 문제는 단순한 농산물 가격 문제가 아니다. 생산과 소비가 단절된 구조적 문제다. 쌀을 낭비하지 않고 더 많은 사람이 다양하게 소비할 수 있는 길을 만드는 것이야말로 지속 가능한 농정이다.

전통주 산업은 그중에서도 가장 현실적이고 문화적 잠재력이 큰 분야다. 쌀 수급 정책을 ‘격리’가 아닌 ‘활용’의 관점으로 바꿀 때, 쌀은 지역 경제를 살리는 자원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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