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 칼럼] 관광산업의 격 세울 '진짜 전문가'가 필요하다

기수정 문화부장
기수정 문화부장
긴 시간이 흘렀다. 지난해 1월 김장실 전 한국관광공사 사장이 총선 출마로 물러난 뒤 한국관광공사는 무려 1년 10개월 동안 사장 없이 직무대행 체제로 힘든 항해를 해왔다. 일은 멈추지 않았지만 한국 관광의 무게를 온전히 책임질 이름은 끝내 돌아오지 않았다. 그리고 이제 공사는 새로운 리더를 기다리는 자리에서 다시 사장 공모의 문을 연다.

임원추천위원회는 11월 14일 세 번째 사장 공모 공고를 내고 다시 후임 찾기에 나섰다.

지난해 8월과 올해 2월 두 차례 공모가 연달아 결실을 맺지 못한 사이 ‘낙하산·알박기’ 내정설은 반복됐고 사장 자리에 대한 여론의 신뢰는 크게 흔들렸다. 업계가 이번에도 “또 다른 낙하산이 아닌가”를 우려하는 이유다.

그러나 지금 필요한 질문은 “누가 올까”가 아니다. “이 자리에 반드시 필요한 자격과 책임은 무엇인가”다.

한국 관광산업은 전환기 한가운데에 서 있다. 정부는 외래관광객 2000만명 유치와 관광수입 확대를 목표로 내걸고 K-관광과 지방소멸 시대의 지역관광, 콘텐츠 기반 고부가가치 관광상품, 유니버설 관광, 의료·웰니스·스포츠 관광 등 복합 전략을 추진하고 있다. 팬데믹 이후 여행 수요는 살아났지만 국적·지역별 회복 속도는 여전히 상이하고, 항공 수용력·비자 제도·환율·지정학적인 리스크까지 시장의 변동성을 키우고 있다. 여기에 K-관광 혁신 TF는 방한시장 확대, 관광수용태세 개선, 지역관광 혁신, 산업 경쟁력 강화라는 숙제를 이미 테이블 위에 올려놓았다.

출국납부금 인하로 관광진흥개발기금 재원이 급감한 가운데 제도 복원과 ‘현실화’를 둘러싼 논쟁도 계속되고 있다. 지역 관광인력 부족, 산업의 데이터·인공지능(AI) 기반 전환, 관광수용태세 개선 등 현장에는 매일 과제가 쌓인다. 이 모든 난제의 최전선에 한국관광공사가 있다.

한국관광공사는 한국 관광산업을 설계하고 실행하는 정책·산업 플랫폼 기관이다. 관광공사 사장 역시 단순한 기관장이 아니다. 정부 관광정책과 산업 생태계를 잇는 국가 컨트롤타워다.

그렇기에 우리는 누적된 실망을 기억해야 한다. 역대 사장 중 다수는 관광정책·산업 경험이 부족한 상태에서 낙하산 논란 속에 취임했고 “여행을 좋아한다” “여행을 많이 다녔다”는 취향을 자격의 증명처럼 소모한 이도 있었다. 취미는 산업 역량을 대신하지 못한다.

공모 자격요건은 최고경영자로서 리더십과 관광 분야 경험, 조직혁신 능력, 청렴성과 도덕성 등을 제시하고 있지만 지금은 그보다 더 냉정한 잣대를 가져야 할 때다. 정권과 코드가 맞는 인물이 아니라 한국 관광산업의 구조와 데이터를 이해하고, 세계 시장을 분석해 정책 언어를 산업 전략으로 번역할 수 있는 사람이어야 한다. 일본·동남아와 경쟁하고 미국·유럽·중동과 협력하는 시대의 관광공사 사장은 국내 행정 논리에 갇힌 리더가 아니라 글로벌 전략가여야 한다.

관광 정책은 정권의 시간이 아니라 산업의 시간으로 움직여야 한다. 정권이 바뀔 때마다 기관장이 교체되고 전략이 초기화되는 구조로는 세계 관광시장과의 경쟁에서 살아남을 수 없다. 이미 충분히 많은 불확실성을 견뎌온 관광업계에 필요한 것은 또 한 번의 낙하산이 아니라 일정한 전략의 방향성을 유지해 줄 지속 가능한 리더십이다. 산업은 멈춰 있지 않고 기다려주지도 않는다.

관광을 좋아하는 사람을 넘어 관광을 아는 사람. 그리고 사람과 지역의 시간을 함께 책임질 수 있는 사람. 한국관광공사의 다음 사장은 그런 인물이어야 한다. 그것이 한국이 단순한 ‘방한객 2000만명 시대’를 넘어 진정한 관광대국으로 나아가기 위한 가장 단단한 출발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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