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눈] 금융정책에 F의 언어만 넘친다

  • 고신용자 고금리·저신용자 저금리 발언부터 백내장 실손 재검토 등

  • 이성(T) 원리로 설계하는 금융정책 필요

이서영 증명사진 사진이서영 기자
이서영 증명사진. [사진=이서영 기자]
이재명 대통령은 최근 "고신용자에게는 금리를 낮추고, 저신용자에게는 더 낮춰야 한다"고 말했다. 취지는 이해되지만 금융권 반응은 냉담하다. 금리는 위험을 가격으로 매기는 장치다. 신용등급 1등급의 연체 확률은 0.10%에 불과하지만 저신용자를 포함한 전체 구간 평균은 1.27%로 13배가량 높다. 이 차이를 무시하면 금융회사는 고위험 대출을 기피하거나 다른 부문에서 비용을 떠넘길 수밖에 없다. 금융을 MBTI의 F(Feeling) 언어로 설계하면서 T(Thinking)의 계산 원리를 뒤로 미뤘을 때 나타나는 전형적 왜곡이다.

이런 '감정 우선' 흐름은 최근 금융정책 전반에서도 나타난다. 생산적 금융, 소비자 보호 강화 등 정책 방향 자체는 타당하지만 설명이 감정·당위 중심으로 흐르면 금융의 본질인 위험·자본·지속 가능성이라는 T의 원리는 작동하기 어렵다.

백내장 실손보험 문제는 F와 T가 충돌한 대표 사례다. 2022년 대법원은 백내장 수술에 대한 고액 보험금 지급 관행을 바로잡고 입원이 아닌 통원 치료로 봐야 한다는 기준을 제시했다. 사법부가 정리한 사안임에도 금융감독원 앞에서는 여전히 백내장 실손 가입자들이 시위를 이어가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이찬진 금감원장이 최근 "백내장 실손을 다시 살펴보겠다"고 언급하자 업계가 즉각 민감하게 반응했다. 이미 정리된 사안을 소비자 불만이라는 F의 언어에 맞춰 다시 열어버리면 손해율·재무건전성·시장 지속 가능성이라는 T의 원칙이 밀려난다는 우려 때문이다.

도서·산간 지역 자동차보험 긴급출동 서비스도 맥락은 같다. 똑같은 보험료를 내는데 도서 지역은 동일 서비스를 받지 못한다는 국정감사 지적 이후 손해보험사들은 내년부터 도서 지역까지 서비스를 확대하기로 했다. 하지만 현실은 단순하지 않다. 도서 지역 긴출은 선박을 이용해야 해 비용 부담이 급증한다. 이를 보험료에 반영하면 육지 가입자의 부담이 커지고, 반영하지 않으면 손해율만 악화된다. 전국 일률 서비스 요구는 F의 감정 논리에 가깝고 시장의 T 원리와는 충돌한다.

소비자 보호는 당연히 필요하다. 그러나 모든 요구를 수용하는 것이 금융정책은 아니다. 금융시스템이 흔들리면 보호장치도 무력해진다. 그 비용은 결국 정부도, 금융회사도 아닌 소비자가 떠안는다. 금융정책이 F의 명분으로만 채워지면 T의 현실은 균열된다. 지금 필요한 것은 공감(F)으로 목표를 세우되 이성(T)으로 설계하는 정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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