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수완의 월드비전] 섬을 노리다, 동맹을 잃다

  • 그린란드 탐내다 레드라인 넘은 트럼프 …美 중심 80년 질서가 휘청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그린란드 병합 정책에 반대하는 사람들이 그린란드 누크에 모여 시위하고 있다 사진AP·연합뉴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그린란드 병합 정책에 반대하는 사람들이 그린란드 누크에 모여 시위하고 있다. [사진=AP·연합뉴스]



트럼프의 그린란드 야심과 혼란의 한 주 

트럼프 대통령이 덴마크령 그린란드에 대해 '소유권'을 요구하며 촉발된 미국-유럽 간 대서양 동맹의 심각한 균열 위기가 일단 숨 고르기에 들어갔다.  1월 21일(현지시간) 스위스 다보스에서 열린 세계경제포럼에 참석 중인 트럼프 대통령은 북대서양조약기구(NATO) 사무총장 마르크 뤼터와 회담을 통해 그린란드와 북극 지역에 대한 '향후 합의를 위한 틀'을 마련했다며 다음 달 1일부터 시행될 예정이던 유럽 8개국에 대한 관세 부과 계획을 중단한다고 밝혔다. 불과 며칠 전까지만 해도 덴마크를 포함한 NATO 동맹국들에 10~25%의 징벌적 관세를 예고하며 군사력 사용 가능성까지 시사했던 대통령의 깜짝 반전이다. 

그러나 트럼프가 회담 후 밝힌 합의(framework)의 실체는 공식화된 문건도 존재하지 않고 모호하기 그지없다. 일단 덴마크와 유럽 국가들이 결코 양보할 수 없는 '레드 라인'으로 삼고 있는 그린란드의 주권 문제에 대해서조차 특별한 언급이 없다. 케이틀란 콜린스 CNN 기자가 21일 미국이 그린란드를 소유하게 되느냐고 묻자 트럼프는 긴 침묵 끝에 "궁극적이고 장기적인 거래"라며 얼버무렸다. 22일 폭스 비즈니스와 인터뷰하면서는 그린란드 영토 획득을 추구하느냐는 질문에 "그럴 수도 있다(It could be). 가능하다는 뜻이고, 무엇이든 가능하다는 말"이라고 답했다. 유럽 측 관계자들 역시 구체적 내용에 대해서는 말을 아끼고 북극의 안보를 강화하는 방향으로 할 것이라는 등 모호한 말을 되풀이하고 있다. 결론적으로 회담 후 실제로 명확해진 사항이 거의 없고 불확실성이 여전해 그린란드 문제를 둘러싼  지난 며칠간의 대혼란이 가까운 장래에 다시 재연될 우려가 있다. 

이번 사태는 미국 대통령사에서 당혹스러운 외교적 실패 사례의 하나로 기록될 것으로 보인다. 트럼프의 강압적 태도에 미국에 대한 대규모 무역보복 가능성까지 제기하며  반기를 든 유럽 8개국의 강력한 맞대응에 타코(TACO·트럼프는 언제나 겁먹고 물러선다)의 순간을 세계는 이번에 다시 한번 목격했다. 안타까운 점은 병적으로 자기중심적이고 변덕이 심한 대통령의 심리와 감정에 좌우되는 미국의 외교 정책이 수십 년간 쌓아온 동맹국들의 신뢰를 한순간에 무너뜨리고 있다는 사실이다. 유럽은 이번 사태를 통해 트럼프에 맞서 단결함으로써 그를 뒤로 물러서게 만들었다는 값진 경험을 얻을 수 있었다.  

19세기 제국주의 유령의 부활

트럼프의 그린란드 집착은 2018년 그의 첫 임기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국가안보보좌관 존 볼턴에게 "그린란드를 사야 하지 않겠느냐"고 물었을 때 대부분의 참모들은 이를 진지한 제안으로 받아들이지 않았다. 화장품 재벌이자 그린란드 북극 지역 투자자인 로널드 로더(Ronald Lauder)가 이 아이디어를 제안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8년이 지난 지금, 그린란드 획득은 트럼프 행정부의 핵심 외교 목표로 자리 잡았다. 베네수엘라 마두로 대통령 체포 작전의 성공은 트럼프에게 결정적 확신을 심어주었다. 서반구 전체에 대한 미국의 패권, 즉 '돈로 독트린(Donroe Doctrine)'이 실현 가능하다는 믿음이다.

트럼프의 집착은 전략적 논리와 개인적 욕망이 뒤섞여 있다. 그린란드는 북극 지역의 전략 요충지이자 희토류 등 광물 자원의 보고다. 기후변화로 얼음이 녹으면서 자원 접근성은 더욱 높아지고 있다. 트럼프는 최근 뉴욕타임스 인터뷰에서 그린란드라는 세계 최대의 섬을 소유하는 것은 "나에게 심리적으로 중요하다"고 말했다. 또 노르웨이 총리에게 보낸 문자 메시지에서는 노벨평화상을 받지 못한 보상으로 그린란드를 받아야 한다고 암시하기까지 했다.

트럼프의 집무실에는 19세기 중반 미국 역사상 최대 영토 확장을 이룬 제임스 포크 대통령의 초상화가 걸려 있다. 백악관 대변인 애나 켈리는 "많은 전임자들이 그린란드 획득의 전략적 논리를 인식했지만 트럼프 대통령만이 이를 진지하게 추구할 용기를 가졌다"고 말했다. 19세기 제국주의 시대의 영토 확장 논리가 21세기에 부활한 것이다.

관세 폭탄, 말폭탄

지난 18일 트럼프가 소셜미디어를 통해 유럽 8개국에 관세 폭탄을 예고했을 때 이는 거의 즉흥적인 결정이었다. 불과 하루 전 헬스케어 행사에서 "그린란드에 동의하지 않는 국가들에 관세를 부과할 수 있다"고 말했을 때만 해도 구체적 계획은 없어 보였다. 그러나 24시간 만에 구체적 기한과 세율을 명시한 전면적 위협으로 구체화됐다.

이 과정에서 트럼프는 동맹국 지도자들에게 모욕을 퍼부었다. 영국 총리 키어 스타머, 프랑스 대통령 에마뉘엘 마크롱을 맹비난했고, 캐나다 총리 마크 카니에게는 "캐나다는 미국 덕분에 존재한다. 마크, 다음에 발언할 때 기억하라"는 암울한 경고를 보내기도 했다. 다보스 연설에서는 NATO 제5조 상호방위 조약 준수 여부를 그린란드와 연계시키며 "예스라고 하면 감사하겠지만 노라고 하면 우리는 기억할 것"이라고 협박했다.

더 당혹스러운 것은 트럼프가 그린란드와 아이슬란드를 혼동하는 모습을 보이는 등 며칠간 혼란스럽고 횡설수설하는 공개 발언을 이어갔다는 점이다. 79세 대통령의 정신 상태와 이것이 미국의 국익에 미칠 장기적 피해에 대한 우려가 커지고 있다.

유럽 단결의 힘

그동안 트럼프의 분노를 피하기 위해 아첨하고 굽신거렸던 유럽 지도자들은 이번엔 달랐다. 덴마크는 그린란드의 주권은 협상 대상이 될 수 없다며 단호한 입장을 견지했고, 유럽 국가들은 NATO 차원에서 그린란드에 병력을 증강 배치하며 결연한 의지를 보였다. EU는 2023년 채택한 '반강압 대응 수단(ACI)'이라는 '무역 바주카포'를 꺼내 들었다. 5억명의 소비자를 가진 단일시장 접근을 차단할 수 있는 이 강력한 도구는 단순 보복 관세를 넘어 서비스, 투자, 공공조달 접근 제한, 지식재산권 보호 중단까지 가능하다.

관세 위협 이후 미국 증시가 급락하자 퇴직연금 401k 계좌를 경제 성과의 바로미터로 삼는 트럼프는 당황했다. 그가 관세 위협을 철회하자 글로벌 증시는 즉각 반등했다. 유럽은 이런 과정에서 자신들의 무역 역량을 무기화하면 미국의 괴롭힘을 진정시킬 수 있다는 것을 확인했다. 11월 미국 중간선거를 앞둔 해에 유권자들이 경제 불안에 극도로 민감한 상황에서 이는 더욱 효과적인 지렛대가 될 것으로 보인다. 

캐나다 총리 마크 카니가 다보스에서 '중간 강국들'이 단결해야 한다고 촉구한 연설은 서방의 탈미국 시대를 위한 첫 번째 신뢰할 만한 청사진으로 기억될 것이다.

美-유럽 무역전쟁은 모두에게 재앙

하지만 미국과 유럽의 전면적 무역 전쟁은 양측 모두에게 재앙이다. 미국과 유럽 경제가 긴밀하게 얽혀 있기 때문이다.  EU는 미국의 최대 교역 상대이며, 2024년 기준 3조6000억 달러를 투자한 최대 외국인 직접투자 원천이다. 마이크로소프트, 아마존, 구글 같은 미국 기술 기업들에 EU는 2947억 달러에 달하는 서비스 수출의 최대 목적지다.

가장 치명적 시나리오는 유럽이 미국 서비스와 투자를 표적으로 삼는 것이다. 아일랜드를 통해 세금을 회피하며 막대한 수익을 계상하는 미국 제약사와 애플 같은 기술 기업들이 타격을 받을 것이다.

세계 질서의 대전환   

트럼프의 그린란드 소동은 이미 진행 중이던 역사적 전환을 가속화하고 있다. 바로 미국 중심 세계 경제 질서의 종언이다. 오랫동안 미국은 불확실성 속에서 안전한 피난처였다. 깊고 유동적인 금융 시장, 국제 거래의 공통어인 달러화를 보유한 자본의 최고 목적지였다.

그러나 트럼프의 일방통행식 정책으로 국제 금융거래의 중심축인 미국의 위상이 흔들리고 있다. 전 세계 투자자들이 다른 곳에서 안전한 피난처를 찾는다면 미국은 외국인 투자 감소, 인플레이션 압력 증가, 부채 조달 능력 감소의 미래에 직면할 것이다. 이는 결국 미국 경제에 엄청난 부담을 줄 것이다.

더욱이 미국이 더 이상 세계의 경제 중심으로 기능하지 않는다면 중국, 러시아, 미국이 각자 영역을 통제하는 다극 세계가 그 자리를 대신할 것이고, 이는 더 큰 혼란을 부채질할 수 있다. 

트럼프가 다보스에서 공개한 '평화위원회(Board of Peace)' 구상도 이런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 영구 회원국 가입비 10억 달러를 요구하는 이 기구는 그의 사설 클럽 회비를 연상시키며 유엔을 대체하겠다는 야심을 드러낸다.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러시아의 푸틴 대통령을 초대하고, 트럼프가 백악관을 떠난 후에도 이 기구를 계속 운영하겠다는 구상의 세부 사항은 이 아이디어의 허황됨을 드러낸다.

트럼프는 결국 후퇴했지만 이번 사태가 남긴 상처는 깊다. NATO 내부 충돌 가능성은 일단 후퇴했지만 서방 동맹의 근간은 이미 흔들렸다. 트럼프의 변덕스러운 정서가 향후 미국과 세계를 어디로 이끌지에 대한 우려는 깊어졌다.

이번 사태는 트럼프 외교 정책의 본질을 드러냈다. 그것은 점점 더 자기도취적이고 비논리적이며, 대통령의 개인적 집착에 의해 좌우된다는 것이다. 그의 동맹국 지도자들에 대한 적의는 NATO를 더욱 약화시켰고, 불안정한 미국 리더십 때문에 서방 동맹이 쇠퇴하고 있다는 인식을 정당화했다.

하지만 동시에 유럽은 단결과 저항의 힘을 발견했다. 이전에는 중국만이 희토류 카드로 트럼프의 무역 전쟁을 저지할 수 있었다. 이제 유럽도 그 방법을 알게 되었다.

트럼프의 그린란드 집착이 실제 군사 행동으로 이어질지, 협상 테이블에서 타협으로 끝날지, 본격적인 무역 전쟁으로 비화할지는 아직 알 수 없다. 그러나 한 가지는 분명하다. 전후 80년 가까이 유지되어온 미국 중심의 세계 질서는 근본적으로 재편되고 있으며, 그 파장은 무역과 경제를 넘어 글로벌 안보 질서 전체를 뒤흔들 것이라는 점이다. 그린란드를 둘러싼 일주일간의 혼란은 끝났지만 새로운 세계 질서를 향한 격변은 이제 막 시작되었다.

이수완 필자 주요 이력 

▷코리아타임스 기자 ▷로이터통신 선임특파원 ▷로이터통신 편집장 ▷서울외신기자클럽 회장 ▷아주경제 글로벌본부장 ▷아주경제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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