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표용지 부족사태 후폭풍] 전문가들 "AI 사용했다면 이번 사태 막았다"...과학 대신 感 택한 선관위

  • AI 시뮬레이션 기본 시나리오도 60% 예측…선관위 기준은 50%

  • "실시간 투표 현황 연계했으면 당일 대응도 가능했다"

6·3 지방선거 투표용지 부족 사태를 규탄하며 재선거를 요구하는 잠실 개표소 봉쇄 시위가 계속되고 있는 8일 서울 송파구 올림픽공원 핸드볼경기장 출입구 앞에서 참가자들이 구호를 외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6·3 지방선거 투표용지 부족 사태를 규탄하며 재선거를 요구하는 '잠실 개표소 봉쇄 시위'가 계속되고 있는 지난 8일 서울 송파구 올림픽공원 핸드볼경기장 출입구 앞에서 참가자들이 구호를 외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투표용지 부족으로 유권자가 발길을 돌리는 사태가 선진 민주주의 국가에서 벌어졌다. 인공지능(AI)이 개표방송에서 1분 단위로 당선 확률을 예측하고, 수많은 AI 모델의 6·3 지방선거 투표율 수요예측 역시 60%에 육박한다는 결과가 나왔음에도 빚어진 참사다. 전문가들은 "AI가 가능한 범위의 기초적 수요 예측조차 하지 않은 것"이라며 선관위의 행정 실패를 정면으로 비판했다.
 
10일 아주경제가 앤트로픽의 페이블5를 통해 6월 2일 이후 정보를 차단한 채 선거 수요예측을 실시했다. 선관위가 투표용지를 준비할 수 있는 기간을 고려해 5월 27일을 기준으로 한 예측에서 '기본 시나리오'는 최종 투표율 58~61%로 나타났다. '비관 시나리오'는 54~56%, '낙관 시나리오'는 62~64%였다. 사전투표를 고려하고 오차범위를 감안해 권유된 투표용지 인쇄는 최소 60%였으며 고위험 지역은 75% 이상 준비할 것으로 권고됐다. 
 
페이블5는 △정치 동원 환경 △국회의원 보궐선거 14곳 동시 실시 △여야 결집 동기 등을 반영해 2022년 지방선거 투표율이 50.9%에 그쳤음에도 이번엔 60% 수준에 달할 것이라는 분석을 내놨다. 실제 3일 실시된 제9회 전국동시지방선거 최종 투표율은 61%로 AI 예측에 근접했다.
 
전문가들은 선관위가 기본적인 AI 시뮬레이션만 해봤어도 이번 사태는 막을 수 있었다고 입을 모은다. 여러 차례 선거를 치르며 확보한 데이터가 충분하기 때문에 AI를 통한 시뮬레이션을 통해 비교적 정확한 예측을 할 수 있었다는 얘기다. 이종호 서울대 교수(전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장관)는 "선진국에서는 일어날 수 없는 참담한 일"이라며 "그동안 축적된 데이터와 동향이 풍부한데 AI 예측은커녕 자체 시뮬레이션조차 하지 않은 것이 사고의 원인"이라고 지적했다.
 
이 교수는 "마치 허리가 아프니 비가 올 것 같다는 식으로 수요예측을 한 것"이라며 "얼마든지 예측 가능한 영역이고 기술도 있었는데 아마추어적 실수를 저질렀다"고 덧붙였다.
 
최병호 고려대 휴먼 인스파이어드 AI연구원 교수는 "AI가 가장 강점을 발휘하는 분야가 시뮬레이션과 예측인 만큼 투표용지 수요는 사전에 파악 가능한 범위"라며 "집단 지성만으로는 한계가 있기 때문에 AI를 활용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최 교수는 "이번 선거는 수요예측뿐 아니라 실시간 정보 공유에도 문제가 있었다"며 "실시간 투표 인원, 투표지 여분, 시간대별 투표 현황을 연계했다면 당일에도 충분히 대응할 수 있었다"고 강조했다.
 
AI와 결합한 비전(Vision) 기술 도입 필요성도 제기됐다. 실시간으로 유권자 수를 파악해 사전에 용지가 부족하다는 판단이 들 때는 투표에 문제가 없도록 추가 투표 용지 인쇄가 가능했다는 얘기다. 
 
최 교수는 "비전 기술을 활용하면 시간대별 대기 줄만 분석해도 용지 부족 여부를 사전에 판단할 수 있다"며 "복잡한 알고리즘도 아닌데 이런 고민이 없었다는 것 자체가 의문"이라고 했다.
 
최 교수는 또 "한국이 투표 쪽으로는 수출을 하고 있는 나라인데 여기다 이제 AI 시스템만 접목을 하면 세계적인 수준이 될 것"이라며 "어디서도 볼 수 없는 사건이지만 이번 일을 계기로 한국 선거 제도가 한층 발전하길 기대한다"고 말했다. 

전자투표 도입을 중장기 과제로 제시하는 목소리도 나왔다.
 
박춘식 아주대 사이버보안학과 교수는 "사전투표, 용지 부족, 재외 투표 등 반복되는 문제는 결국 수작업 방식에서 비롯된다"며 "전자투표 전면 도입은 국민 신뢰 문제로 아직 이르지만 방향성은 전자화에 두고 AI를 접목한 신뢰 있는 선거 제도 구축에 나서야 할 때"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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