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리장성 못넘은 5대그룹]‘지피지기’ 실패한 삼성, 패착은 무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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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14-12-08 1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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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픽=김효곤 기자 hyogoncap@]

아주경제 이재영 기자 = PC 시장 초기에 마이크로소프트(MS)의 빌 게이츠는 시장의 룰을 바꾸는 경영전략을 시도했다. 하드웨어는 무엇을 쓰든 소비자들이 MS의 운영체제(OS)만 쓰게 하면 된다는 전략이었다. 초기 PC 시장을 압도했던 애플은 소프트웨어와 하드웨어를 일체로 파는 전략을 고수하다 MS에 시장을 내줬다.

2008년 세계 스마트폰 1위 노키아는 아이폰이 최초 출시될 때 위협요인이 얼마나 큰지 제대로 예측하지 못했다. 당시 노키아의 엔지니어들은 아이폰이 시장에서 살아남을 수 없는 이유를 분석했다. 예상을 뒤엎고 아이폰은 엄청난 인기를 끌었으며 노키아가 고전하는 계기가 됐다.

샤오미는 고사양 스마트폰에 가격은 제조비용만 받고 액세서리 등 부가상품으로 수익을 확보, 기존 틀을 깨는 비즈니스 모델로 급성장했다. 이 과정에 삼성은 애플이나 노키아처럼 관행에 집착하는 대기업의 경영함정에 빠져 패착을 드러냈다는 분석이다.

◆ 대기업의 경영함정 노출

8일 업계 및 경제연구소 등에 따르면 대기업은 사업 규모에 필적하는 큰 시장을 찾으려 하기 때문에 특정 고객에게만 집중하는 것을 꺼려한다. 가능한 많은 고객을 만족시키는 제품을 만들고 싶은 게 대기업의 생리다. 그러다 누구의 니즈에도 맞지 않는 어정쩡한 제품이 나오기도 한다.

성공하는 후발기업은 고객을 정한 후 고객에게 가장 적합한 가치를 제공하기 위해 가치사슬을 구성하지만 실패하는 대기업은 이미 가지고 있는 디자인 관행, 유통 채널에 집착하다가 고객이 진정으로 원하는 가치를 제공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업계 최고 수준의 스펙인 삼성전자의 갤럭시S5가 전작에 비해 부진했던 이유도 이와 무관하지 않아 보인다. 상대적으로 샤오미는 비용대비 효용이 떨어지는 부가기능을 과감히 제거하는 데 능숙했다.

국제무역연구원에 따르면 신제품이 시장에서 실패하는 가장 큰 이유는 소비자 니즈와 공급제품간의 미스매칭이다. 세계적 인증기관 UL이 시행한 설문조사에서는 기업이 시장에서 원하는 것보다 더 빨리 제품을 출시한다는 소비자 의견(전자제품, IT제품 등)이 2011년 48%에서 2013년 63%로 증가했다.

이에 기업엔 최적의 기능만 조합한 ‘다운그레이드’가 요구되지만 △개도국 추격에 의한 고가 제품 정책 △최초 출시 집착 △기술자의 다운그레이드 심리적 저항 등 조직문화가 전략 수정을 방해한다. 즉, 소비자를 만족시키는 기능 조합을 사전에 예측하기가 어려워 기업은 가급적 많은 기능을 추가하는 오랜 관성이 존재한다는 지적이다.

◆ 샤오미의 최고 가성비 비결

하지만 샤오미는 소비자와 적극적인 쌍방향 소통으로 최적의 조합을 찾았다. 자체 운영체제인 ‘MIUI’를 통한 생태계 확보가 바탕이 됐다. MIUI 사용자는 최근 7000만명을 넘어섰다. 샤오미는 MIUI 이용자로부터 문제점을 듣고 개선작업을 실시했다. 샤오미가 홍미의 40만대 선제작에 들어갔다가 소비자 체험테스트 결과가 나빠 40만대를 포기하고 새로 만들었다는 사례도 전해진다.

일례로 샤오미는 중국의 셀카족을 겨냥해 전면카메라 사양을 최초 800만 화소까지 높였다. 이에 비해 갤럭시S5나 아이폰5S는 200만 화소에 불과했다. 삼성전자는 최근에서야 500만 화소의 갤럭시A시리즈를 중국 시장에 내놨다.

샤오미는 또 오프라인 매장 없이 온라인을 통해 제품을 조금씩 판매하는 ‘헝거마케팅’을 구사해왔다. 이는 소량생산된 제품을 짧은 시간 내 완판시켜 광고효과를 높이고 선주문을 통해 미리 수요를 예측함으로써 안정적인 판매를 가능케 했다. 더욱이 샤오미는 애플을 제외한 다른 기업과 달리 기종이 다양하지 않다. 적은 기종을 출시할 때 더 기억되기 쉽고 완벽한 제품을 만들 수 있다는 판단에서다. 이와 관련 삼성전자도 내년 모델 수를 축소하기로 해 모델 운영 효율에 대한 고민을 드러냈다.

샤오미는 이미 지난해 두각을 나타냈고, 삼성전자는 지난해 4분기 모바일 실적이 감소했지만 연간 사상최대실적에 안주해 조직개편은 소폭에 그치며 선제대응이 늦었다. 결과적으로 올해 모바일 실적이 대폭 하락해 모바일사업부 사장 4명이 감축되는 인사조치로 이어졌다.

◆ 예측 실패, 대응속도 떨어져

예측과 대응에 실패한 패착은 화학 사업에서도 나타난다. 삼성종합화학에 합병된 삼성석유화학은 화학섬유 중간제품인 TPA(테레프탈산)의 국내 최대 기업이다. TPA는 중국내 대규모 신증설에 따른 수입대체가 가속화돼 삼성석유화학의 적자 국면을 초래했다. 이 문제는 이미 수년전부터 제기돼왔지만 그 사이 삼성석유화학은 바이오 신사업을 타진하다가 탄소섬유사업에 진출하더니 끝내 돌파구를 찾지 못했다.

삼성은 삼성토탈과 제일모직, 삼성석유화학을 연결하는 화학부문 수직계열화를 구축하고 있었음에도 시너지가 부족했다. 삼성토탈은 TPA의 원료인 파라자일렌(PX)를 만들면서 전방 계열사와 함께 연쇄부진을 겪었다.

삼성SDI에 합병된 제일모직 화학사업부문은 석유화학 제품인 ABS를 주력 생산하는데 이 또한 중국 내 공급증가 및 수요부진으로 한때 영업적자를 보기도 했다. 삼성토탈은 또 여기에 원료인 SM을 제공하며 덩달아 부진했다.

삼성은 결국 삼성종합화학과 삼성토탈 등 화학 계열사를 한화그룹에 매각하는 등 정밀화학 사업만 남기고 철수하게 됐다.

시장 전문가는 “기존 사업을 중심으로 형성된 사고의 틀에 변화하는 고객과 시장을 끼워 맞추지 않도록 주의해야 한다”며 “대기업이 다양한 사업과 큰 조직을 운영하기 위해서 일관된 원칙을 고수하고 조직을 관리하는 것은 필요악”이라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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