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25 전쟁의 원인은 스탈린이 마오쩌둥 제압하기 위해 일으킨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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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15-06-20 22: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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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세기 전 통일부 장관, 저서 '6·25전쟁과 중국'서 주장

아주경제 강정숙 기자 =20세기 가장 혹독한 전쟁이자 동족상잔의 비극인 6·25 전쟁은 미소 양 진영 간의 냉전적 대립구조가 아니라 중공혁명의 성공과 얄타체제의 붕괴 과정에서 불거진 중소 간의 갈등대립과 국가이익 충돌에서 비로됐다는 주장이 나왔다. 소련의 독재자 이오시프 스탈린이 마오쩌둥(毛澤東)을 제압하기 위해 일으킨 전쟁이라는 것이다.

11대 국토통일원(현 통일부) 장관을 역임한 이세기(79) 한중친선협회 회장은 최근 발간한 저서 '6·25 전쟁과 중국-스탈린의 마오쩌둥 제압전략'(나남)에서 6·25 전쟁 발발 주체(누가 총을 먼저 쏘았는가?)의 문제는 더 이상 의문의 여지가 없다고 보고, '처음부터 전쟁을 계획한 소련의 스탈린이 왜 한반도에서 전쟁을 일으켰는가', '마오쩌둥의 중국은 왜 참전했는가'에서  전쟁의 기원과 원인을 찾고 있다.

저자는 35년 전 자신의 학문적 추론을 1990년 이후 공개된 많은 비밀문서와 자료들을 종합·정리해 그 논거를 보다 새롭게 보완하고 보강해 6·25전쟁의 역사를 다시쓰려 한다.

저자는 이 책에서 1950년 1월을 전후한 스탈린과 마오쩌둥의 만주 지배권을 둘러싼 중소동맹조약 협상과정에서 6·25 전쟁의 '불씨'가 잉태했다고 주장한다.
 

[사진= 한중친선협회 제공]

미국과 중국의 협력 가능성을 의심한 스탈린은 중국과 미국을 동시에 제압하는 방법으로 김일성이 가져온 남침계획을 이용했다는 것이다.

한반도에서 미중 전쟁을 유도해 양국이 힘을 소진하도록 하고, 상호 협력 가능성도 차단해 중국을 서방으로부터 고립시키고 자국의 종주권 체계 속에 묶어 두려고 전쟁을 계획했다는 설명이다.

이 책에 따르면 스탈린은 이러한 전쟁의도를 성공적으로 달성하기 위해 북한군이 빨리 승리하지 못하도록 '이적행위'를 했다.

소련은 북한군에 도하장비를 제때 제공하지 않아 북한군은 서울을 점령하고도 사흘 동안 우왕좌왕하게 했다.

또 북한과 중국은 전쟁승리 최적기를 1950년 7~8월로 보고 중국군의 조기 투입을 희망했지만, 스탈린은 묵묵부답으로 일관하다가 8월 말 전세가 북한군에 불리하게 돌아갈 때 거부의사를 밝혔다고 한다.

스탈린은 북한군이 너무 빨리 부산을 점령하거나 완전히 승리하면 곤란하다고 판단한 것이라고 저자는 추정했다.

특히 1950년 6월 27일 유엔 주재 소련대표가 유엔군의 참전을 결의한 유엔 안보리 회의에 불참한 것은 미국의 한국전 개입이 쉽도록 카펫을 깔아주는 행위였다고 평가했다. 안보리 상임이사국인 소련이 거부권을 행사했으면 미국은 유엔군의 이름으로 참전할 수 없었다.

스탈린이 당시 체코슬로바키아 대통령에게 보낸 비밀전문을 보면 안보리 거부권 행사 포기가 실수가 아니라 스탈린의 지시에 의한 것임을 알 수 있다고 저자는 전했다. '미군이 한국전쟁에 묶여 유럽에 신경을 쓸 여유가 없도록 한 것'이라는 취지의 당시 비밀전문은 2005년에 공개됐다.

유엔군이 38선을 넘어 압록강까지 진격하자 중국군의 참전이 이뤄졌고, 중국과 미국은 장기간 소모전을 벌이며 원수지간이 됐다.

실제 6·25 전쟁을 거치면서 서방세계의 중국 접근 가능성이 차단됐고 소련에 대한 중국의 의존도가 커졌다는 것이 저자의 평가다.

이 책은 6·25전쟁에서 스탈린의 전쟁의도와 함께 중국의 역할을 설명하는데 주안 점을 두고 있다. 그 이유는 한반도 문제와 관련한 중국변수의 중요성 때문이다.

21세기 초 한국이 모든 역량을 동원해 추구하고 있는 남북통일 또한 사실상 중국이 결정적인 열쇠를 쥐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런 점에서 저자는 ' 6·25 전쟁과 중국'에 대한 연구는 곧 '한반도 통일과 중국'을 연구하는 것이라고 강조한다.

◆<저자 이세기 회장, 그는 누구?>

고려대 정치외교학교를 나와 동 대학원에서 정치학 석·박사 학위를 받았다. 일본 도쿄대 대학원을 수료하고 고려대 정경대 조교수와 교수를 역임했다. 그 후 국제경제연구소 책임연구원을 거쳐 중국사회과학원에서 연수하고 베이징대학교에서 객원연구원을 했다.
제11, 12, 14, 15대 국회위원을 거쳐 제11개 국토통일원 장관과 제5대 체육부 장관을 역임했다. 현재 한중친선협회 회장이다.

△학력

부산 동아고등학교 졸업
고려대 정치외교학과 졸업
고려대 대학원 정치학 (석·박사)
일본 도쿄대 대학원원 수료
고려대 정경대 대학원 수료
국제경제연구소 책임연구원
중국사회과학원 연수, 베이징대 객원연구원

△주요 경력

제 11, 12, 14, 15대 국회의원(서울 성동/성동 갑) 
국회: 외무통일위 위원, 올림픽지워특별위 위원장, 운영위원회 위원장, 문화체유공보위 위원장
 당  : 민주정의당 원내총무, 평화통일특별위 위원장, 민주자유당 정책위원장 의장, 서울시당 위원장 등
정부: 제 11대 국토통일원 장관, 제 5대 체육부 장관
현재 한중친선협회회장

△ 저서
<올림픽과 국가발전> 1984
<통일조국의 미래> 1992
<李世基의 중국 관계 20년> 2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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