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눈] "연봉 반토막도 OK"…왜 일본은 되고 한국은 안 되나

지난해 12월 3일 서울 여의도 국회 앞 계단에서 한국노동조합총연맹 조합원들이 65세 정년연장 법제화 국회입법촉구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지난해 12월 3일 서울 여의도 국회 앞 계단에서 한국노동조합총연맹 조합원들이 65세 정년연장 법제화 국회입법촉구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연봉은 줄겠지만, 일은 계속하라."

일본 최고재판소의 판결은 일본 사회 한복판에 '정년 연장의 대가로 감봉을 수용하라'는 화두를 던졌다. 한국이었다면 댓글창이 불탔을 법한 이야기다. 정작 일본 사회는 고요했다. 잃어버린 30년을 지나오면서 오랜 진통 끝에 사회적 합의가 이뤄진 결과였다.

일본의 국가 재정은 세계 최악 수준이다. 국내총생산(GDP) 대비 국가 부채 비율은 250%를 넘고 정부 예산의 25% 가량이 국채 이자와 상환에 쓰인다. 특히 고령화로 사회보장 지출이 30년 새 3배 이상 증가하며 연금·건강보험료 부담이 눈덩이처럼 불어났다.

재정 압박 속에서 일본은 돌파구를 찾았다. 바로 고령층의 노동시장 참여 확대다. 2004년에는 65세까지 고용을 의무화했고, 기업이 정년연장·정년폐지·재고용 중 하나를 택할 수 있게 했다. 최근에는 70세까지 취업 기회를 넓혔다. 평균 55세를 전후로 임금을 단계적으로 삭감하고 60세 이후에는 재고용 방식으로 절반 수준의 임금을 지급하고 있다. 초반엔 노동계의 반발이 컸지만 고용을 유지하기 위해 누군가는 양보해야 한다는 공감대가 형성됐기에 가능했다.

한국도 일본과 같은 인구 구조를 따라가고 있다. 다만 아직 재정 압박도, 고령화 충격도 피부로 와닿지 않는다. 한국에서 정년 연장이나 임금피크제를 둘러싼 논의는 제도 설계 없이 세대 간 갈등만 반복되고 있다. 취업난에 지친 청년은 불안을 키우고, 생계를 걱정하는 고령층은 벼랑 끝에서 다시 일자리를 찾는다.

문제는 이 갈등의 뿌리가 구조적 미스매치에 있다는 점이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60세 이상 자영업자 수는 2015년 142만명에서 2032년 248만명으로 급증할 것으로 예상된다. 이들 중 절반 가까이가 연금은 부족하지만 계속 일하고 싶어서 자영업을 택한 것으로 분석됐다. 일할 의지는 있지만 일할 자리가 없어 자영업으로 내몰렸다는 말이다.

정부는 '정년 연장'을 정치 구호로 소비하면서 정작 세대 간 조율 장치는 내놓지 못하고 있다. 이번 대선에서도 여야는 정년 연장에 대한 시각 차이 및 원론적 입장만 드러냈을 뿐 △인건비 부담 △청년 고용 위축 △연금과의 연계 등 핵심 쟁점에 대한 구체적 해법은 없다.

정년 연장 논의가 세대 간 갈등에 갇히는 것은 고령층과 청년층의 불안이 제대로 해소되지 않은 채 세대 간 제로섬 구도로만 접근되고 있기 때문이다. 이런 방식으로는 사회적 합의와 세대 연대가 아닌 상호 불신과 갈등만이 반복될 위험이 크다.

같은 고령화 문제 앞에서 일본은 사회적 합의로 나아갔고, 우리는 여전히 갈등의 원인만 되묻고 있다. 이웃나라의 시행착오가 분명한 길잡이가 되어주고 있음에도 우리는 여전히 같은 자리만 맴돈다. 일본의 경험은 한 사회의 통념을 바꾸려면 갈등을 넘는 합의와 세대 간 연대가 필수적임을 보여준다. 정년을 늘리는 일보다 더 중요한 건 '모두가 오래 일할 수 있는 사회'를 어떻게 설계할 것인가에 대한 공감대다.
 
사진장선아 기자
[사진=장선아 기자]

©'5개국어 글로벌 경제신문' 아주경제. 무단전재·재배포 금지

컴패션_PC
댓글0
0 / 300

댓글을 삭제 하시겠습니까?

닫기

로그인 후 댓글작성이 가능합니다.
로그인 하시겠습니까?

닫기

이미 참여하셨습니다.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