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온 세상이 캔버스다
푸르게 번진 물감 한 자락이 깊은 바다가 되고, 두껍게 칠해진 초록색은 테니스 코트나 골프장으로 보인다. 그 위를 가로지르는 작은 인간 피규어들은 우리의 시선을 새로운 차원으로 이끈다. 워너 브롱크호스트(werner bronkhorst)에게 세상은 그저 존재하는 공간이 아니라, 언제든 예술이 될 수 있는 무한한 캔버스다.
남아프리카공화국에서 태어나 매일이 모험 같았던 어린 시절, 호주로 이주해 가구를 만들던 그는 다시 붓을 잡고, 세상의 풍경을 자신만의 언어로 재창조하는 작가가 됐다. ‘온 세상이 캔버스’라는 그의 말을, 이번 인터뷰에서 더 깊이 이해하게 됐다.

“세상을 예술로 바라보는 새로운 시각을 보여주고 싶었다”
“세상 전체가 캔버스라고 말하면 조금 이상하게 들릴 수 있겠지만, 이번 전시를 보면 왜 그렇게 말하는지 알게 될 거예요. 평소라면 그냥 지나쳤을 일상적인 장면과 순간들이 아름다운 예술 작품으로 탄생합니다.”
워너 브롱크호스트의 전시 ‘온 세상이 캔버스’에서는 두껍게 칠해진 초록색 물감이 테니스 코트나 골프장처럼, 푸른색의 번짐은 광활한 바다나 깊은 수영장으로 변신한다. 흰색의 붓질은 눈 덮인 산을 떠오르게 하고, 그 위를 가로지르는 작은 인물 피규어들은 요트, 골프, 스키를 즐기는 모습으로 등장한다. 우리의 일상을 축소해 놓은 듯하면서도, 동시에 전혀 다른 상상의 세계를 펼쳐 보인다.


그림을 그리기 시작한 소년, 세상의 캔버스를 그리는 작가로
“모든 아이들이 학교에서 붓이나 연필을 쥐어보지만, 저는 그걸 놓지 않았어요.”
13살 때 동전 크기의 작은 캔버스에 미니어처 명화를 그리기 시작한 그는, 목탄, 파스텔, 아크릴, 유화 등 모든 재료로 실험하며 추상화, 초상화, 벽화를 그렸다. 가구 사업에 집중하느라 한동안 붓을 내려놨지만, 2022년 첫 아이를 임신한 파트너 Charli와의 새로운 시작은 다시 그의 예술혼을 깨웠다.
남은 건축 자재를 활용해 만든 하이퍼 텍스처 회화에 작은 피규어를 결합한 작품이 SNS에서 폭발적 인기를 끌며, 결국 그는 꿈꾸던 예술가의 길로 돌아왔다.
“아이디어가 예상처럼 되지 않아도 괜찮다”
그는 일상적인 공간과 순간을 작품으로 재탄생시킨다. 어떤 것을 그리고 어떻게 표현할지는, 하나의 단어에서 출발한다.
“‘하얀 선(White Lines)’이나 ‘금단의 잔디(Forbidden Grass)’ 같은 간단한 단어가 색을 떠올리게 하고, 색은 풍경과 계절을 생각나게 해요. 그리고 그 풍경 속의 사람들을 그리고 싶어집니다.”
작품은 늘 하나의 실험이다. 아이디어가 예상처럼 되지 않거나 작업 중 크게 바뀌어도 괜찮다고 그는 말한다. 중요한 것은 컬렉션의 기준 안에 있는지 여부다.

독창적 스타일의 탄생
지금의 독창적 스타일은 가구 제작과 예술 실험의 결합에서 태어났다. 남은 자재로 만든 두껍고 질감 있는 캔버스 위에 미니어처 피규어를 올리면서, 그의 작품 세계는 본격적으로 자리 잡았다.
“반복할수록 더 나아져요. 작품 하나하나가 새로운 시도이고, 더 잘 그리고, 더 아름답게 창조할 기회가 됩니다.”그의 작품이 완성되는 기준은 단순하다. “제가 작품을 보고 좋다고 느끼면 그건 좋은 작품이에요. 마음에 들지 않으면 처음부터 다시 시작하죠.”
가구 제작의 경험이 예술 세계로
“가구 디자인을 시작했을 때, 기술도 도구도 재료도 부족했어요. 그런 제약 덕분에 오히려 아이디어를 단순하게 만들어야 했고, 창의적으로 접근했죠.”
가구 제작에서 석고를 바르던 방식이 회화의 구도 영감이 됐고, 목재 자투리는 캔버스로 재탄생했다. 자재 낭비를 줄이려던 실험은 그의 생계가 되었다.

자연에서 배운 공존의 감각
남아프리카공화국에서 자라면서 그는 자연과 하나 되어 살았다.
“인간과 자연은 늘 공존한다고 생각해요. 우리가 숨 쉬는 공기, 마시는 물, 모든 것이 자연과 연결돼 있죠. 제 작품은 그저 우리 주변의 아름다운 세상을 확장한 것뿐입니다.”
작품을 완성하는 순간
완벽주의자인 그는 붓을 내려놓는 것이 쉽지 않다고 했다.
“영원히 완벽해질 수는 없지만, 이제는 ‘이제 그만해야겠다’고 느껴지는 순간을 구분할 수 있게 됐어요.”
“해라. 그리고 또 해라.”
마지막으로, 세상을 캔버스로 삼아 자유롭게 표현하고 싶은 사람들에게 그는 이렇게 말했다.
“해라. 그려라. 그리고 또 그려라. 이상하게 느껴지고, 뭔가 잘못된 것 같아도, 아마 그게 가장 옳은 일일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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