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용우의 공정경제] 라인야후 사태, '데이터 주권'을 묻다

  • AI 주권, 데이터 전략, 그리고 정부의 존재 이유

이용우 전 국회의원
[이용우 전 국회의원]


AI는 이제 경제 발전은 물론 국가 안보와 직결되는 핵심 전략 자산이다. 미국의 빅테크 기업들은 최고 수준의 연구개발 능력과 인재를 보유하고 있으며, 중국은 정부 차원의 전폭적 지원 아래 AI 혁신을 가속화하고 있다. 이 가운데 한국은 어떤 전략을 선택해야 하는가. 일부에서는 특정 분야에 집중하는 수직 AI(vertical AI), 즉 문제 해결형 AI에 주력해야 한다는 주장을 펼친다. 그러나 AI 생태계 전반을 포괄하는 거대 AI 역시 궁극적으로 특정 문제 해결을 목표로 하며, 피드백을 통해 자기 학습을 수행한다. 결국 거대 AI의 작동 원리를 이해하지 못한 채 수직 AI에만 의존한다면 문제 해결도 한계에 부딪히게 된다. 수직 AI와 거대 AI는 상호 보완적이며 불가분의 관계에 놓여 있는 것이다. 이러한 맥락에서 소버린 AI의 필요성이 제기된다.
AI 경쟁의 핵심은 데이터의 확보와 처리 능력에 있다. AI는 방대한 데이터를 기반으로 학습하기 때문에, 데이터에 대한 접근과 통제 권한이 곧 경쟁력으로 이어진다. 이에 따라 주요 국가들은 이른바 '소버린 AI(주권형 AI)' 전략을 수립해 자국민의 데이터, 인공지능 인프라, 알고리즘의 훈련과 활용 전반에 대한 통제권을 확보하려 하고 있다. 미국은 자국민 데이터의 해외 유출을 막기 위해 틱톡(TikTok)의 강제 매각법, '적성국으로부터의 미국인 데이터 보호법' 등을 추진했으며, 행정명령을 통해 해외 AI 클라우드 사용 금지까지 검토하고 있다. 중국 기업이 보유한 틱톡을 미국 기업에 강제로 매각하라는 압박 역시 같은 맥락이다.
이런 흐름 속에서 일본 총무성이 2024년 라인야후(LY Corp)에 대해 지분 구조 변경을 요구한 사건은 중요한 시사점을 던진다. 사건의 시작은 2023년 11월 라인야후의 서버가 해킹되어 약 52만건의 개인정보가 유출된 사고였다. 이를 계기로 일본 총무성은 2024년 3월과 4월 두 차례에 걸쳐 행정지도를 통해 "한국 기업 네이버로부터의 자본 지배 관계를 수정하라"고 요구했다. 표면적 명분은 보안 우려였다. 그러나 이 조치는 문제의 본질인 기술적 보안 취약점과는 동떨어진 대응이다. 이는 틱톡 사례처럼, 공식적으로는 “데이터 보호”를 내걸고 있지만 실상은 해외 자본을 배제하려는 의도가 깔린 조치로 해석할 수 있다.
보안 강화는 네이버클라우드와 라인야후 간 시스템 분리와 관리 체계 개선으로 충분히 가능했음에도, 일본 정부는 느닷없이 지분 구조를 문제 삼았다. 한국 네이버 계열사인 네이버클라우드가 라인야후 데이터 처리에 관여했기 때문에 보안 취약점이 발생했고, 따라서 아예 한국 기업인 네이버와의 연결고리를 끊어야 개인정보를 보호할 수 있다는 논리다. 그러나 이 조치는 문제의 본질인 기술적 보안 취약점과는 동떨어진 대응이다. 표면적으로는 데이터 보호를 내세우면서 실제로는 외국 자본을 배제하려는 경제 안보적 조치로 해석할 수 있다. 일본 총무성은 "한국 본사가 LY 시스템에 접근할 수 있다면, 일본의 정보 주권이 침해된다"는 인식을 바탕으로 라인야후의 완전한 일본 내 독립 운영을 요구했다.
라인야후의 최대주주는 한국 네이버와 일본 소프트뱅크가 각각 50%씩 지분을 보유한 A홀딩스다. 이 A홀딩스가 라인야후의 지분 64.4%를 보유하고 있다. 결국 일본 정부는 소프트뱅크가 단독 경영을 하도록 유도하며, 네이버의 지분 축소를 요구한 셈이다. 이는 한국 기업이 해외에서 축적한 데이터 자산과 플랫폼 운영 역량을 실질적으로 이양하라는 요구이며, 디지털 시대의 새로운 경제 안보 갈등으로 볼 수 있다. 2024년 4월 초, 네이버는 이에 대해 일본 측 요구를 수용하겠다는 방향을 밝혔고, 지분 매각 여부를 포함한 협의가 진행되었지만 아직 지분 매각은 이루어지지 않았다.  
이와 함께 일본은 'Society 5.0' 전략과 'AI 전략 2023' 등을 통해 자국 중심의 디지털 주권 체계를 강화해 왔다. AI 모델 개발을 넘어 플랫폼과 데이터, 인프라의 내재화를 통해 경제와 안보의 통합을 지향하고 있다. 그 핵심에 라인야후가 있다. 2023년 10월, 네이버의 일본 자회사인 라인과 소프트뱅크 산하 야후재팬 등 5개사가 통합해 LY컴퍼니가 출범했다. 출범 직후 LY는 일본 최대 규모의 AI 생태계 구축을 선언했으며, 2025년까지 전 서비스에 AI 에이전트를 적용하고, 2026년부터 본격적인 수익화에 돌입하겠다는 로드맵을 제시했다.
6월 도쿄 '테크버스 2025' 콘퍼런스에서 라인야후 경영진은 플랫폼 통합과 AI 기반 서비스 재정의를 강조하며, 통합 데이터 플랫폼 'Catalyst One'을 미래 성장동력으로 제시했다. 라인의 글로벌 월간 활성 사용자(MAU)는 1억9400만명에 이르며, 그중 49%가 일본 외 지역 이용자다. 특히 대만 국민의 94%, 태국 국민의 82%가 매월 라인을 사용할 정도로 아시아권에서 막대한 사용자 기반을 확보하고 있다. 이 방대한 데이터 풀은 AI 시대의 전략 자산이다. 손정의 회장이 네이버와 손잡고 라인과 야후를 통합한 배경 역시 이 데이터를 기반으로 일본 주도의 AI 생태계를 구축하려는 전략적 판단으로 해석할 수 있다. 5년간 5조3000억원 투자, AI 인재 5000명 충원이라는 대규모 계획도 이러한 전략에 기반한다.
그럼에도 한국 정부의 대응은 미흡했다. 2024년 4월 1일 개인정보보호위원회는 유감 표명에 그쳤고, 외교부나 산업부 등은 공식 입장을 내지 않았다. 일본 총무성의 조치는 사전 협의 없이 일방적으로 이뤄졌으며, 이는 명백히 한·일 투자보장협정 위반 소지가 있음에도 정부는 이를 적극 제기하지 않았다. 대통령실은 "네이버가 라인야후 지분과 사업을 유지하려 한다면 정부는 보안 대책 마련을 지원하겠다"고 밝혔으나, 이는 실질적으로 기업의 결정을 정부가 수동적으로 따르겠다는 의미에 가깝다. 네이버가 어떤 입장을 취하든 불이익을 받지 않도록 정부가 선제적으로 보호 의지를 밝히는 것이 우선이었다.
국제 통상 질서상, 자국 기업이 외국에서 부당한 차별이나 소유권 침해 위협을 받으면 정부는 기업의 권익 보호에 나서야 한다. 한·일 양국은 투자보장협정과 무역협정을 맺고 있으며, ISDS(투자자-국가 간 분쟁해결제도)도 활용할 수 있다. 그러나 한국 정부는 마찰 회피를 이유로 사실상 방관했고, 그 결과 네이버는 지분 가치 방어에 실패했으며, 해외 규제 리스크에 무방비로 노출되었다.
한편 네이버는 2024년 3월 말까지 네이버와 라인야후 간 시스템 분리를 완료하고, 서버 통신 차단 등 일본 측이 문제 삼은 보안 이슈를 해소했다. 라인플러스를 통한 일부 협력은 유지되지만, 데이터 시스템의 연결고리는 모두 제거됐다. 이에 따라 일본 총무성은 7월 제출된 라인야후의 개선 보고서를 수용하며 지분 매각 압박을 일단 철회한 상태다. 그러나 이 사안은 언제든 재점화될 수 있다.
이제 우리가 자문해야 할 질문은 분명하다. 일본이 라인야후를 국가 AI 전략 자산으로 간주한다면, 한국에게 라인야후는 어떤 의미인가? 라인은 한국 네이버가 만든 글로벌 성공 사례다. 일본과 동남아에서의 성공이 더 두드러졌지만, 그 출발점은 한국의 기술과 서비스 문화였다. 네이버는 라인을 통해 수억명의 해외 이용자를 확보했고, 뉴스·검색·금융·커머스 등 다양한 인터넷 서비스를 현지화하며 축적한 데이터와 운영 경험은 한국 IT 기업의 소중한 자산이다.
AI 시대에 이 데이터는 AI 알고리즘 학습의 핵심 자원이다. 실제로 네이버는 하이퍼클로바(HyperCLOVA) 개발 과정에서 일본어 등 다언어 학습에서 강점을 보여왔는데, 이는 라인을 통해 축적한 일본 시장 데이터 덕분이었다. 라인야후의 AI 에이전트 서비스는 챗봇, 추천 시스템, 생성형 AI 등 첨단 기술의 실험장이 될 것이며, 네이버가 계속 참여한다면 그만큼 축적된 경험이 한국 AI 기술의 자산으로 이어질 수 있다.
소버린 AI 전략을 핵심 과제로 삼고 있는 이재명 정부는 이제 라인야후의 의미를 다시 평가해야 한다. 일본이 방대한 데이터 확보, AI 기술 내재화, 글로벌 플랫폼 장악이라는 전략을 라인야후에 투영하고 있다면, 한국 역시 이를 지켜보고만 있을 수는 없다. 국내 데이터를 움켜쥐는 것만으로는 AI 주권을 확보할 수 없다. 이런 의미에서 라인야후가 우리의 소버린 AI전략에서 갖는 의미를 찾고 이를 전략적으로 활용하는 방안을 강구해야 한다. AI펀드의 지분 인수 및 한·일 AI협력 등 다양한 방안을 생각해 볼 수 있다. 해외에서 일군 우리 기업의 데이터 거점을 어떻게 지킬 것인가, 이것이 진정한 AI 주권 전략의 시작점이다.
라인야후 사태는 우리에게 데이터 주권의 경계가 국경에 있지 않다는 사실을 일깨운다. 이제는 플랫폼과 데이터, 기술을 중심으로 한 디지털 주권이 경제 안보의 핵심이 되었다. 정부는 디지털 통상 주권 수호를 위한 원칙을 세우고, 법적·외교적 수단을 정비해야 한다. 궁극적으로 중요한 것은 우리의 AI 경쟁력을 지키고 키우는 일이다. 이를 위해선 국내적으로는 데이터 생태계를 건강하게 조성하고, 해외에서는 우리 기업이 쌓은 글로벌 데이터 자산을 전략적으로 보존하고 활용하는 전략이 필요하다.

이용우 필자 주요 이력

▷서울대 경제학 박사 ▷제21대 국회의원 ▷카카오뱅크 공동대표 ▷한국투자신탁운용 총괄 최고투자책임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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