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평양 연료난 겪는 피지, 11년 만에 서울서 장관회담

Fijis Minister for Foreign Affairs and External Trade Sakiasi Ditoka left shakes hands with South Korean Foreign Minister Cho Hyun during their meeting in Seoul on Aug 13 2026 Courtesy of the Ministry of Foreign Affairs
사키아시 디토카 피지 외교장관(왼쪽)이 13일 서울에서 조현 외교부 장관과 회담에 앞서 악수하고 있다. 사진=외교부

태평양 섬나라들이 올해 내내 기름을 아껴 쓰고 정전을 견디며 버텼다. 호르무즈 해협 봉쇄로 인한 심각한 에너지 공급 위기를 맞아서다. 태평양 섬나라 중 에너지 수송 허브 역할을 하는 피지가 13일 서울에서 그 문제를 꺼냈다. 조현 외교부 장관과 사키아시 디토카 피지 외교장관이 만난 이날 회담은 양국 외교장관이 마주 앉은 것으로는 11년 만이다.

디토카 장관은 핵심 에너지 수송을 호르무즈 해협에 의존하는 아시아태평양 지역이 중동 전쟁에 따른 공급망 교란에 특히 취약할 수밖에 없다고 강조하면서 높은 수준의 정유·비축 역량을 갖춘 한국과 에너지 분야 협력을 강화해 나가기를 희망한다고 밝혔다, 두 장관은 역내 국가 간 안정적이고 회복력 있는 에너지 공급망 구축이 그 어느 때보다 중요해졌다는 데 뜻을 같이하고 앞으로 더 긴밀히 소통하기로 했다고 외교부는 밝혔다.

11년 만에 이뤄진 외교장관 대화에서 피지가 에너지 공급망 구축에 대한 협력 이야기를 꺼낸 것은 우연이 아니다. 피지는 인근 소규모 도서국들로 연료를 다시 실어 보내는 태평양의 에너지 배분 거점이다. 수바 항에서 물량이 모자라면 몇 주 안에 열 개가 넘는 나라의 발전기가 함께 멈춘다.

이 사슬이 흔들리기 시작한 것은 2월 28일이다. 이란과 미국·이스라엘 사이에 전쟁이 터지면서 호르무즈 해협의 상업 선박 통항이 사실상 끊겼다. 유엔개발계획(UNDP)에 따르면 이후 몇 달 사이 태평양 지역의 등유 가격은 42% , 경유는 35% 올랐다. 투발루는 4월 국가비상사태를 선포하고 순환 단전에 들어갔고 마셜제도는 90일 경제비상사태를 선포했다. 유엔은 역내에서 사정이 나은 축에 드는 피지에서도 일부 지역이 매일 정전을 겪고 있다고 밝혔다.

디토카 장관이 협력을 제안한 대한민국은 원유를 사실상 전량 수입에 기대는 나라다. 한국 역시 호르무즈 해협을 통해 들여오는 원유에 대한 의존도가 아시아에서 가장 높은 축에 속하고, 이란 전쟁 이후 에너지 공급 루트를 다변화하는 등 다양한 대책을 세웠다. 한국석유공사 집계를 보면 4월 중동산 원유 비중은 53.1%로 1년 전 65.2%에서 내려갔다. 정유사들이 미국과 캐나다 물량을 늘린 결과다.

국내 정유 4사의 처리 능력은 하루 340만 배럴가량으로 세계 5위 규모이며, 정부와 민간 비축분을 합치면 국내 수요 200일분에 해당한다. 산업통상자원부는 3월 국제에너지기구(IEA) 공동 방출에 맞춰 전략비축유 2246만 배럴을 풀었다. 역대 최대 규모다.

조 장관은 수교 55주년을 맞은 해에 디토카 장관이 방한했다며 환영의 뜻을 밝히고, 피지를 대(對)태평양도서국 외교의 거점이라고 평가했다. 지난해 12월 태평양도서국포럼(PIF) 18개 회원국이 참석한 제6차 한-태평양도서국 외교장관회의 때, 피지는 외교부 부장관을 보냈고, 조 장관이 그날 따로 양자회담을 가진 상대는 솔로몬제도, 마셜제도, 팔라우, 파푸아뉴기니였다. 양국 외교장관 회담은 2015년 9월 14일 윤병세 당시 장관의 피지 공식 방문 이후 처음이다.

개발협력과 관련해 조 장관은 보건과 에너지 등 피지가 필요로 하는 분야를 중심으로 지원을 추진하고 있다며, 현지 진료 환경 개선과 신재생에너지 역량 강화에 기여하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피지는 태평양도서국 가운데 한국의 최대 개발협력 파트너다. 한국국제협력단(KOICA)은 1000만 달러 규모의 무상원조 사업으로 피지 국립재활센터를 짓고 있으며 사업은 2027년까지 이어진다.

디토카 장관은 그간의 한국 측 지원에 사의를 표하고 기후변화 대응 분야에 대한 지속적인 관심을 요청했다. 두 장관은 한반도와 태평양 등 역내 정세에 대해서도 의견을 나눴고, 피지 내 한국 국민 보호를 비롯한 영사 현안에서 협력해 나가기로 했다.

이번 회담에서 공급 계약이나 비축 협정 같은 구체적인 에너지 조치가 발표되지는 않았다. 외교부가 내놓은 결과 자료에 담긴 것은 인식의 공유와 소통 확대의 약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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